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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살곰살곰 Oct 30. 2022

버리면 쓰레기 다시 사용하면 자원

버려진 싱크대에 새 생명 불어넣기

셀프 집수리 과정에서 급한 곳 중 하나가 부엌이었는데 이사 후 1년이 넘도록 싱크대가 없이 살았다. 여러 이유가 있지만 그중 하나는 남편이 생각할 때 비싼 싱크대 가격이 그중 하나였다. 우리 부엌 사이즈로 견적을 받아보니 최소 200부터 시작해 환풍기며 이런저런 옵션이 붙으면 가격은 더 올라갔다. 나무를 사서 직접 만들 경우의 자재비를 생각하는 남편에게는 납득이 가지 않는 금액이었다. 


그래서 남편은 만들기로 마음을 먹었다. 시간이 걸려서 그렇지 싱크대를 멋지게 만들어줄 거라 생각했지만, 문제는 시간이었다. 기다리는 시간 속 불편함을 넘어 수리 기간이 길어지면서 시간은 생활비로도 연결이 되고 있기에 중고거래로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 이전부터 키워드로 등록해놓고 보고 있었지만, 소식이 없었기에 큰 기대는 하지 않았다. 1층 거실과 부엌에 장판이 깔린 날 밤, 잠들기 전 남편이 한 마디 했다. 


"자기야, 내일은 싱크대가 매물로 올라올 거예요"


다음날 이른 아침, 알림소리가 들려왔다. 전날 늦은 시간까지의 작업으로 평소라면 일어나지 못했을 작은 소리 었는데, 나도 모르게 알림소리에 잠을 깨 핸드폰을 확인해 보는데 싱크대가 올라와있었다. 아직 잠에서 깨어나지 않은 남편을 깨워서 보여준 후 바로 구매의사를 전달하고 싱크대 해체를 위한 공구를 챙겨 이동했다. 철거 현장이기에 바로 방문을 하지 않으면 폐기물이 되어버린다. 

철거를 하고 하나씩 1층으로 내린 후 화물차를 불러 집으로 돌아오니 점심때가 다 되었다. 급하게 밥을 먹은 후 다시 공구를 챙겼다. 오전 싱크대 철거 현장에서 만났던 사장님이 오후에도 다른 아파트를 철거할 예정이니 더 필요한 물건이 있으면 와보라고 이야기를 하셨기에 또다시 집을 나섰다. 


오후 철거 현장에서는 붙박이장의 문을 분리했다. 신발장도 만들어야 하고 부엌에도 장을 만들어야 하는데 그때 활용할 수 있는 자재들이다. 그렇게 하나씩 분리를 해서 집으로 가져온 후 시계를 보니 저녁 7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아침 7시부터 움직였으니 한나절이 꼬박 걸린 셈이다. 

다른 집 부엌에 맞게 설치되어있던 싱크대이기에 우리 집 구조에 맞아떨어지지 않기에 썰고 붙이는 바쁜 시간으로 싱크대 설치가 시작되었다. 

일단 개수대가 있는 싱크장을 창문을 중심으로 배치해 본다. 기존에는 설거지 개수대 부분이 창문 없는 벽 쪽에 있었는데 남편은 창문 쪽에 개수대가 있는 것이 햇볕에 물기도 빨리 마르고 밝을 것 같다며 배수관 작업을 미리 해놓았었다. 

ㅡ자형 싱크대를 ㄱ자형 싱크대로 설치하려고 하니 약간의 개조가 필요했다. ㄱ자로 맞붙는 부분이 완전 막혀서 사용할 수  없는 공간이 되어 버린다.  자주 사용하지 않는 물건이라도 넣어두기 위해서는 출입구가 필요하기에 싱크장 한쪽 벽면에 타공을 했다. 

그리고 한쪽 벽이 타공 된 싱크장과 맞붙는 싱크장의 도어를 탈거한다. 

그러면 조금은 불편하겠지만 사진과 같이 타공 된 부분을 통해서 물건의 수납이 가능해진다. 

가져온 싱크대를 ㄱ자로 배치하고 보니 우리 집 구조에 따악 맞아떨어지지는 않아 위쪽 가로로 놓인 싱크장 3개의 사이즈를 조정해야 했다. 상판이 놓인 싱크장과 도어 그리고 상판이 없는 가운데 싱크장은 뒤쪽 부분을 60mm(6cm) 잘라서 축소했다. 마주 보고 있는 반대편에 아일랜드 식탁장이 설치되는데 원래 계획했던 부분에서 6cm 정도 더 튀어나와 타일 마감과 어긋나 시각적으로 조금 불편했기에 싱크장을 축소하는 번거로움을 선택했다. 


그리고 가장 오른편의 싱크대는 기둥 벽이 있어 깊이 6cm뿐만 아니라 폭도 많이 줄여야 했다. 

일단 잘라야 할 부분을 체크한 후 싱크장을 돌려가면서 절단해야 될 부분 전체를 표시했다. 싱크대를 분리해서 각 판재를 절단한 후 다시 조립할 수 있지만 남편의 선택은 박스 형태를 유지한 채로 절단해서 조립하는 것이다. 눈으로 보이는 부분이 아니고 정밀한 작업이 필요하지 않으므로 작업 시간을 줄이는 방법을 선택한 것이라고 한다.

톱날이 지나갈 부분에 잘리지 말아야 할 보강목이 자리 잡고 있어 위치를 이동했고,  싱크장 뒷부분의 얇은 합판도 작업에 방해가 될까 봐 미리 탈거해 주었다. 

이제 굉음을 내는 원형톱으로 조심스럽게 재단을 해 준다. 고속 전동공구는 항상 위험하다고 꼭 필요한 경우에만 옆에 오는 것을 허락하다 보니 제대로 된 작업 사진이 없다. 어쨌든 이리저리 잘라 준 다음 다시 나사못을 이용해서 잘 고정해 주면 된다. 

원래 싱크장 뒤쪽 합판의 고정은 벽면의 두꺼운 판재(PB : 파티클보드)를 합판의 두께만큼 홈을 내서 끼워 맞추는 방식으로 조립하는 것인데 사이즈를 축소하면서 이 홈이 잘려 나갔기에 남편은 위 사진처럼 잘린 판재를 지지대로 대어서 합판을 고정했다. 

사이즈를 줄인 싱크장 3개를 수평을 맞추어서 서로 붙이고 있다. 저기에다가 이제 인조대리석을 잘라서 올려놓으면 싱크대 조립이 1차로 완성된다. 


싱크대의 배치가 일단락되었으니 이제 싱크볼 부분이다. 처음에는 싱크대를 직접 만들려고 계획했기에 싱크볼을 인터넷에서 구매했었다. 싱크볼 + 배수구 +  수전 등 여러 가지를 구매했었는데 중고 싱크대를 가져오면서 계획이 어긋났다. 싱크대를 조립하면서 유독 악취가 많이 나는 배수구를 분해해 보았는데, 주름관 안에까지 음식물 찌꺼기가 가득하여 간단히 청소가 될 상황이 아니었다. 그래서 구매해 놓았던 싱크볼 세트에서 배수구 부품을 빼내어 장착하기로 하였다. 

싱크볼은 회사와 제품마다 각각이지만 배수구 사이즈는 일반과 점보 2가지 크기로 규격화되어 있어서 맞았다. 

배수구의 위쪽 캡을 잡고 배수구의 몸통을 돌려서 결합하면 된다. 배수구 몸통에 있는 물 넘침 방지 호수의 연결구 방향을 계산하여 조여주어야 한다. 

배수구와 연결되는 물 넘침 방지 호수는 기본 길이 그대로 사용하지 말고 싱크볼 사이즈에 맞게 잘라서 쓰는 게 좋다. 물 넘침 방지 호수가 배수구 몸통 아랫부분에 위치하고 있기 때문에 음식물 찌꺼기가 들어갈 수 있는데 호수의 경사가 완만하거나 S자로 꺾여 있으면 음식물이 고여 악취가 심하게 날 수 있으니 사진처럼 L자형으로 경사가 급격하게 되도록 잘라주는 것이 좋다고 한다. 

배관과 연결되는 배수 호수도 경사를 감안해서 길이를 맞게 조절해 준다. 청소하기가 어려우므로 비닐에 구멍을 내서 받친 다음 톱으로 잘라 주었다. 

배수 호수의 경사도를 체크하고 사이즈를 맞춰 잘라준 후에 냄새방지 캡을 연결한 후 장착해 주면 싱크대 배수구 연결 작업이 완료된다. 

싱크대 수전을 구매할 때 오랫동안 검색하던 남편이었는데 물이 미세하게 나오는 일명 '레이저 수전' 헤드가 장착된 제품을 구입했다. 일반 수전만 사용하다가 미세 물줄기가 나오는 수전 헤드를 처음 사용했는데 1단으로만 틀어도 물이 세게 나와서 절수 효과도 있는 것 같고 여러모로 좋은 것 같다. 


이제 가스레인지를 연결해야 한다. 

미리 구매해 놓은 쿡탑 가스레인지 사이즈에 맞추어 타공 크기를 표시한다. 제품을 검색하면 판매 페이지나 회사 홈페이지에 가면 정확한 치수가 공개되어 있어 위치를 잡고 표시해 주고 자를 준비를 한다. 

가스레인지가 놓이는 부분의 싱크장은 깊이를 6cm 줄였기 때문에 일단 인조대리석 뒷부분을 잘라 주었다. 

드디어 가스레인지 타공이 완료되었다. 

인조 대리석을 뚫고 가스레인지를 앉히고 나니 아직 가스 연결이 되지 않아 사용할 수 없는 가스레인지이지만 존재만으로도 흐뭇해졌다. 흐뭇함을 안겨주는 가스레인지도 싱크대처럼 5개월 전 중고마켓에서 구입해놓았었다. 조금이라도 아끼기 위해 불편해도 더 알아보며 시간과 정성을 들인 후에 들여놓는 물건들이라 볼 때마다 그 물건과 관련된 추억이 떠오른다. 


이제 상부장만 설치하면 된다. 

상부장 설치를 위해 각 상부장 사이즈를 측정해 보고 설치할 길이에 맞춰 필요한 상부장만을 구성해 본다. 이런 남편의 고민이 담긴 벽면의 흔적도 내게는 멋지게 보인다. 


상부장 고정을 위해서는 5cm 정도의 폭을 가진 고정목을 벽에 단단하게 고정해야 한다. 그런데 추운 것을 참기 힘들어하는 나 때문에 우리 집은 방마다 단열재가 아이스박스처럼 바닥, 천장, 벽면이 모두 들어가 있다. 상부장을 설치해야 하는 벽면도 당연히 단열재가 들어가 있고, 벽부터 석고보드 마감까지 목재 프레임 없이 접착제로 고정되어 있기에 단열재 50mm와 석고보드 9.8mm 총 60mm 정도가 무거운 하중을 견딜 수 있는 재질이 아니라는데 고민이 생겼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외벽이 아닌 내벽이었기에 100mm가 아닌 50mm 단열재가 들어가 있다는 것이었다. 단단한 벽부터 피고정물까지의 60mm 정도의 간격을 커버할 수 있는 고정물로 '프레임앙카'를 선택했다.

고정부가 스틸로 된 프레임 앙카는 플라스틱으로 된 일반 WRS앙카보다 고하중 허용으로 우리 집처럼 고정부와 피고정물에 이격이 있는 경우 많이 사용한다고 한다. 

상부장 고정목은 12mm 합판 2개를 본드를 고루 도포하여 붙여서 24mm 두께로 만들었다. 고정목의 위쪽에 상부장이 걸리므로 위쪽은 반듯해야 한다. 그리고 프레임 앙카의 두께만큼 10mm 크기의 구멍을 타공해 둔다. 

상부장이 수평으로 설치되는 게 중요하므로 굴러다니는 몰딩을 임시로 고정해서 기준을 잡아 준 후 고정목을 대고 타공점을 표시했다. 

표시 한 타공 부분을 #10*215mm 콘크리트 해머드릴 비트를 장착하여 뚫어 준 후 프레임 앙카를 이용해 고정목을 고정해 준다. 

처음 계획했던 고하중용 스텐 웨지앙카를 미리 구매해놓지 못해 프레임 앙카를 이용해서 살짝 걱정이지만 흔들어보니 단단한 것 같아 일단은 안심이다. 

상부장 고정목이 설치되었으니 상부장을 걸어 본다. 상부장을 살짝 걸어놓고 상부장 안에서 나사못으로 고정하면 된다. 

렌지후드가 장착될 상부장은 배기 주름관이 빠져나갈 구멍을 타공해야 한다. 가스레인지가 외벽 쪽이 아닌 안쪽으로 조금 들어와 있어서 상부장 여러 군데를 타공 했다. 배기 주름관을 대고 타공 지점 표시를 한 후 10mm 드릴로 직소기 날이 들어갈 구멍을 뚫어준다. 

그리고 직소기를 이용해서 타공해 준다. 

상부장을 마저 설치한다. 왼쪽의 20cm 정도 빈 부분은 나중에 상부장을 만들어 넣기로 했다. 중고로 가져와서 설치하므로 사이즈가 딱 떨어지지 않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설치하려는 렌지 후드는 침니형 후드로 일반 후드보다 풍량이 커서 배기 능력이 좋다고 한다. 

렌지 후드를 걸기 위한 브라켓을 고정하기 위해 또다시 벽을 타공 하는 것이 간단한 일이 아니므로 상부장을 약간 개조했다. 다른 상부장에서 떼어 낸 측면 벽을 사이즈에 맞게 잘라내어 후드용 상부장의 벽면 프레임과 고정하여 무거운 하중을 받을 수 있도록 하여 그곳에 렌지 후드 브라켓을 설치하였다. 

브라켓에 렌지 후드를 걸어 본다. 임시로 전원을 연결하여 작동 테스트를 해 본 후 문제없음을 확인하고 배기 커버를 씌웠다.

남편의 기술과 꼼꼼함으로 인해 싱크대 설치가 완료되었다. 

창문 몰딩과 벽지 등 남아 있는 작업이 있지만 싱크대 설치만으로도 삶의 질이 높아진 느낌이다. 남편은 아직 미완성 상태라며 추가할 작업을 이야기해 왔다. 


하부장 오른쪽 도어가 없는 싱크대 서랍형으로 만들기

밥솥이 놓여 있는 아일랜드 식탁은 전부 개조하여 싱크대와 높이 맞추기 & 전자레인지 넣는 위치 바꾸기

하부장과 상부장 모두 페인트 칠 하기


다 마무리되면 더욱 멋지긴 하겠지만, 사용에 큰 문제가 없는 지금 이 상태도 내겐 충분하다.

(상) 원래 설치되어있던 집에서의 싱크대 (하) 남편의 손끝에서 우리 집에 맞추어 개조된 싱크대

 오래 기다렸던 만큼 더욱 큰 감동을 주는 싱크대 셀프 설치는 남편의 금손과 더불어 적절한 타이밍의 중고 싱크대 매물 그리고 그 순간을 놓치지 않은 나의 스피드가 잘 어우러진 결과물이다.




남편의 따뜻함은 어디에서든 빛을 발했다. 돈을 주고 사 오는 물건임에도 현장에서 일하시는 분들 생각해서 간식거리를 사가는 사람, 판매를 위해 내놓은 물건이 아니기에 현장에 계시는 분도 이렇게 주실 필요 없다고 손사래를 치니 자신의 생각을 전하던 남편의 모습이 떠오른다. 


"파는 분 입장에서는 버리면 쓰레기이지만, 사용하는 제 입장에서는 가서 또 여러모로 잘 사용하니 그 기준으로 보면 충분히 감사한 일이지요"


사실 두 번째 현장의 물건은 비용을 지불하지 않아도 되지 않을까 생각했던 나였는데 남편의 이야기에 고개가 끄덕여졌다. 철거현장에서 물건을 가져온다는 이야기에 큰 기대를 하지 않았던 딸아이가 가져온 싱크대를 보고 한마디 했다. 


"전 아예 못 쓸 정도의 싱크대일 줄 알았는데 디자인도 그냥 써도 될 정도인데요."


"그렇지? 엄마도 그렇게 생각해. 이렇게 멀쩡한데 집안을 다 뜯어서 수리하나 봐."


"자신의 취향으로 다 바꾸고 싶었나 보죠"


"그래. 그건 알겠는데...

환경문제도 생각해봐야지. 쓸만한 물건이지만 그렇게 뜯어내고 나면 다 버려지는 거거든.

디자인이 마음에 안 들면 필름지 작업이나 페인트 칠 등으로도 충분히 바꿀 수 있고..."


이렇게 또 생활 속에서 우리 부부의 모습으로 아이에게 알려주고 싶었던 이야기를 전할 수 있었던 하루가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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