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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살곰살곰 Nov 22. 2020

철거는 리모델링의 나침반이다.

등산화 대신 작업화, 산 대신 철거현장을 누비다.

리모델링에서 철거공사는 아무것도 그려지지 않은 
하얀 스케치북처럼 공간을 깨끗하게 만들어 놓는 작업이다.
철거는 리모델링의 시작이자 가장 중요한 작업 중 하나이다.

『단독주택 리모델링 무조건 따라 하기』中



40년 된 단독주택 셀프 수리의 첫 시작은 철거


2018년 5월 30일, 업체에 맡기려던 철거를 직접 시작한 남편을 보면서 그리 어려운 작업은 아닌가 보다 했다. 

2층 거실에서 방과 계단

합판으로 마감되어 있던 1,2층 거실 벽, 요즘처럼 타카로 고정하지 않고 못으로 하나하나 못질을 한 오래된 집이라 데코 빠루(인테리어 빠루)라는 장비로 쉽게 분리가 되는 거라고 남편이 알려왔다. 

남편의 손길 한 번에 벽돌벽이 드러나는 모습을 보며 이 정도면 직접 할 수 있겠다 싶었다. 


이런 나의 생각은 천장을 뜯으며 산산이 무너졌다. 

하나의 천장을 힘겹게 뜯어내면 또 나오는 오래된 천장은 누수로 인해 보기에도 심란한 상태였다. 뜯어내고 공사를 했어야 하는데 그대로 두고 천장을 덧댄 것이다.


비단 집뿐만 아닌 살면서 우리가 이처럼 덮고 지내는 것들이 얼마나 많을까.
힘들고 바쁘다고 대충 덮고 지내는 우리의 상처, 지나온 시간도 언젠가는 이처럼 다 뜯어내고 민낯을 마주해야만 온전하게 다시 시작할 수 있다. 

부엌 천장 또한 하나의 벽을 철거하니 누수로 물을 먹어 합판의 수명이 이미 끝나버린 원래의 위쪽 천장이 모습을 드러냈다. 이런 광경을 보는 건 처음이라 아무래도 업체에 맡기는 게 좋았겠다 싶어 지는 나와는 달리 이러니 공사를 맡길 수 없는 거라고 직접 해야 마음이 편하다던 남편, 이렇게 다른 우리가 집을 짓는 것과 같은 리모델링의 시간 속에서 한 번도 다투지 않았다는 건 그만큼 서로를 이해하는 마음과 사랑이 컸음을 의미할 것이다. 


어쩌면 나는 살아오면서 힘든 순간마다 한 걸음 물러설 때가 많았는지도 모르겠다. 익숙지 않거나 힘들 것 같다는 생각에 미루거나 타인의 손에 맡기는 게 편했다. 이런 나와는 달리 그러니 더 직접 해야 마음이 편하다는 남편의 말에 내 삶의 태도를 돌아본다.

부엌 앞 새시를 없애고 부엌과 옆 방 사이의 벽까지 철거한 후 넓어진 부엌에 철거의 고단함을 잠시 잊기도 했다. 

역시나 거실 천장도 우리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2중으로 되어 있어 일이 두배가 되면서 작업량이 늘어났다.

원래 있던 천장 각재 상은 컷소가 도착하면 마디마디 잘라서 좀 더 쉽게 철거하기로 결정하고 4일간의 철거작업이 마무리되었다. 철거하는 모습을 보니 집을 예쁘게 꾸며달라고 했던 이야기는 더 이상 할 수 없을 것 같았다. 뜯어 낼수록 생각보다 작업이 많아지는 집 상태와 혼자서 고생하는 남편을 보니 정말 셀프로 할 수 있는 건가 하는 생각에 걱정과 미안한 마음이 앞섰다. 


내가 하는 일이라곤 철거된 폐자재를 마당으로 옮기고 종류별로 마대자루에 담으며 정리하는 일이 다인데 그런 정리가 얼마나 큰 일인 줄 아냐며 오히려 나에게 고생한다던 남편은 다칠 수 있으니 조심하라며 물가에 내놓은 아이를 바라보듯 나를 대하고 있었다.

폐자재를 마당으로 빼놓는 나를 보던 남편은 거실 창이 높아 오르내리는 게 불편해 보였던지 철거한 싱크대를 이용해 계단을 만들기 시작했다. 이 남자의 다정함과 꼼꼼함의 끝은 어디일까.


철거는 생각보다 위험한 작업이라며 근처에 못 오게 하고, 폐자재에 튀어나온 못에 찔리기라도 할까 하나하나 다 정리하던 남편이 조심히 피해 다니면 된다고 괜찮다는 나를 위해 작업화를 구입했다. 

(좌) 2017년 우리 부부의 커플 등산화 (우) 2018년 6월, 우리의 작업화

등산화를 신고 시간이 날 때면 산에 다녔던 우리가 등산화 대신 작업화를 신고 있는 모습을 보니 미소가 지어졌다. 어떤 시간을 보내든 사랑하는 이와 한 마음으로 함께 한다는 건 행복한 일이다. 등산화 대신 작업화를 등산이 아닌 폐자재가 가득한 우리 집을 씩씩하게 다니며 남편이 떨어트려놓은 폐자재를 열심히 정리했던 시간, 흘리는 땀의 종류는 다르지만 여전히 즐거웠던 추억의 한 조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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