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이렇게 잘 해 주는걸까요?

by 살곰살곰

단독주택으로 이사한 지 2년, 셀프 수리는 3년째에 접어들었다. 모든 작업을 남편과 직접 하다 보니 기존의 허술한 구조물을 철거한 후 새로 만들기까지 많은 시간이 걸린다. 철거 후 뚫린 공간을 통해 비와 바람이 들어오기도 하고 때론 생각지 못한 시간이 그 틈을 비집고 들어오기도 한다.




옆집과 붙어 있는 담 안쪽, 석면 슬레이트로 덮어져 있던 세탁실 겸 보일러실을 판넬로 바꾸기로 했다. 석면 슬레이트를 철거하고 나니 그동안 인사 한번 나누지 못했던 옆집의 3층이 눈에 들어온다. 오픈된 공간에서 작업을 하고 있으면 옆집 가족이 나가고 들어오는 모습을 마주하게 된다. 아무리 조심한다고 해도 공사 중 발생하는 소음과 먼지는 불편함일 것이다. 처음 나눈 인사는 미안함이었다.


"안녕하세요. 직접 고치다 보니 시간이 길어지고 있습니다. 불편하신 점 있으시면 언제든 말씀해주세요. 그리고 작업하다 보면 조심하다고 해도 이물질이 넘어가기도 하는데 제가 건너가서 치워도 될까요?"


양해를 구한 후 옆 집으로 넘어가 떨어진 이물질 등 먼지를 청소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몰랐다. 그 작은 인사가 어떤 시간으로 되돌아올지...


"더운데 힘드시지 않으세요? 오늘은 어제보다 더 많이 작업하신 것 같아요."


퇴근 후 집에 들어가셨던 아주머님이 얼마 후 유리컵 두 개를 가지고 나오셨다.


"사과로만 짜낸 주스예요. 드셔 보세요. 오늘 날씨 너무 덥네요"


생각지도 못한 따뜻함에 어리둥절했던 기억이 난다. 그 따뜻함이 기억 속에 고스란히 남아있던 며칠 후 또다시 토마토 주스를 건네 오셨다. 그런데 이번에는 컵이 아닌 일회용 용기였다. 주스를 마신 후 컵을 씻어 다시 가져다 드렸던 상황이 번거로울지도 모르겠다 생각하셨던 것 같다. 그 후로도 아주머님의 따뜻한 마음은 이어졌다.


"아이들 갈아주면서 생각보다 양이 많이 졌네요"

"바나나가 선물로 많이 들어왔어요"


뜨거운 여름 시원한 과일 주스는 이마 위 땀을 식혀주었고, 함께 건네시는 이야기는 힘겨운 셀프 수리에 지친 우리의 마음을 어루만져주었다.


이사 오기 전 아파트에 살 때는 명절 때마다 작은 선물을 준비 해 아래층에 인사를 하곤 했다. 어린아이를 키우는 건 아니지만, 작은 소음이나 일상 속 발걸음도 아래층에는 예민하게 느껴질 수 있음을 잘 알기에 그 마음을 미리 잠재우기 위함이었다. 아파트에 이사 후 인사를 드린 지 얼마 되지 않아 아래층에서 벨을 눌렀다. 아들이 은행에 입사했는데 주택청약통장을 만들어달라는 부탁이었다. 아이를 키우며 윗 층에 사는 입장에서 거절하기란 쉽지 않았기에 통장을 만들었다.


시간이 흘러 리모델링을 한 아래층에서 또 벨을 눌러왔다. 베란다에서 물청소를 자주 하냐며 그로 인해 새로 칠한 베란다 천장 페인트가 벗겨진다고 하셨다. 이야기를 들은 남편이 여러 가지 상황을 살펴보더니 우리가 베란다에서 물을 쓰는 일과 무관하다 결론을 내렸지만, 그 후로는 베란다에서 물을 쓸 수가 없었다. 화분에 물을 줄 때도 하나하나 화장실로 옮겨 물을 줘야 했다. 그 뒤로도 몇 번 베란다에서 물을 쓰는 일에 대해 이야기하러 올라오신 기억이 난다. 그 후로는 베란다에서 물을 전혀 쓰지 않았기에 우리 집이 원인 일리 없었지만 여전히 의심을 하시는 것 같았다. 오래된 아파트라 비가 많이 오면 외벽을 타고 창틀로 물이 들어가는 경우가 생기기도 하고 결로 등 여러 이유로 페인트는 떨어질 수 있다. 우리 역시 이사 올 때 베란다 페인트 칠을 했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 부스러져 떨어지는 현상을 경험하기도 했기에 반박할 수 있었지만 아래층에 산다는 사실 하나 만으로도 늘 조심스러웠다.


아마 그때보다 셀프 수리하는 지금의 상황이 더 조심스럽고 인사를 드려야 할 상황일 것이다. 그런데 반대로 따뜻함을 선물 받고 있자니 익숙지 않은 상황이 낯설기도 했다. 그 후, 옆 집 1층에 사는 할머님을 만나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다. 그때 3층에 사는 분이 우리 이야기를 했다며 전해오신 말씀에 감사함이 커졌다.


"우리 집 3층에 사는 분이 부부가 둘이서 사이좋게 집을 고치는 모습이 너무 보기 좋다고 이야기하더라고요"


갑자기 없어진 벽과 천장에 오며 가며 마주치는 상황과 소음과 먼지의 불편함이 아닌 우리 부부가 땀 흘리며 보내는 시간을 더 크게 보셨나 보다. 감사함을 넘어 뭉클함이 차올랐다. 뭐라도 인사를 해야 되겠다 싶어 일찍 일을 마무리하고 아이들 먹일 간식거리도 살 겸 집을 나섰다. 우리가 먹을 수박은 할인하고 있는 저렴한 과일로 고르고 다른 한 켠 '당도 보장'이라고 쓰인 큰 수박은 이웃집에 인사를 드리기 위해 집어 들었다.


언제 가져다 드려야 하나 고민하고 있을 무렵 마침 번호를 누르고 대문을 여는 이웃집 소리가 들렸다. 서둘러 수박을 들고 세탁실 쪽으로 향했다. 수박을 보고 놀라시며 못 받겠다고 하시던 아주머님은 그냥 집에 많이 있어서 나눈 것뿐인데 이렇게 사서 주시면 어떡하냐며 뒷걸음질 치셨다. 그렇게 한동안 아니다. 괜찮다를 주고받다 수박이 담장을 넘어가던 순간, 내 맘 속 벽 위로 따뜻한 무언가가 들어옴을 느꼈다.


정 (情) : 느끼어 일어나는 생각이나 마음, 사랑을 느끼는 마음


따뜻함을 주고받은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늦게까지 작업하는 우리를 보고는 저녁은 먹었냐고 물어오시더니 이번에는 비닐을 건네 오셨다.

아이들이 엄마가 한 반찬을 잘 안 먹는다고 그러다 보니 늘 반찬이 많이 남는다고 하시며 건네신 비닐에는 반찬이 담겨있었다. 더위에 흐르던 땀 보다 더 뜨거운 눈물이 볼을 타고 흘러내렸다.


이사 후 부엌이 만들어지지 않았던 시기라 간단한 반 찬 몇 가지를 하기도 쉽지 않은 상황이었기에 감사한 것도 있었지만 격하게 감정이 요동쳤던 이유는 친정엄마에 대한 기억 때문이었을 것이다. 시장에 가실 때면 늘 우리가 먹을 반찬까지 해서 가져다 주시곤 했던 친정엄마가 몇 년 전 뇌출혈로 쓰러지셨다. 다행히 수술은 잘 되었지만 내가 알던 엄마와는 많이 달라지셨기에 기억 속에 남아있는 엄마가 떠오르는 반찬에 한 참을 울었다.


그리움과 고마움이 뒤섞인 반찬으로 차려낸 식탁 위에서 이웃집의 따뜻함을 건네 들은 아이가 물어왔다.


"그분은 왜 이렇게 우리한테 잘해주시는 걸까요?"


이유 없이 주고받는 정을 경험해 본 일이 많지 않은 15살 아이에게는 이해하기 힘든 시간이던 것이다. 누군가를 이기고 따라잡아야 살아남는 세상, 내가 받은 것 얻게 될 이익을 생각하고 주고받는 현실에 익숙한 아이에게 당연한 질문일지도 모른다.


이사 후 동네에서 만나는 사람마다 인사하는 아빠를 보며 얼마 전 딸아이가 잔소리를 한 적이 있다.


"아빠, 제발 아빠보다 어린 사람한테는 인사 좀 하지 마세요. 존댓말 쓰면서 그러시는 거 진짜 이상해요"


"딸, 인사처럼 가장 쉽게 따뜻함을 주고받는 일은 없어.

엄마가 너한테 인사를 강요하지 않는 것처럼 아빠의 시간 또한 네가 판단하고 막지 않았으면 좋겠다.

엄마는 나이가 어린 사람한테도 항상 존댓말 쓰며 존중하는 모습을 보이는 아빠가 멋져 보여"


당시 아이와 대화를 나누며 머지않아 '이웃과의 정'은 책 속에서나 나오는 과거의 감정으로 기억되는 건 아닐까 싶었다. 그때의 기억을 돌아보며 젊은 청년에게 먼저 고개 숙여 인사하는 아빠를 이해할 수 없었던 딸아이에게 이웃 아주머님이 보여주신 따뜻함이 답이 되었길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