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하기 전 7살 때 처음으로 아이들 책을 구입했다. 초등학교 들어가기 전까지의 아이들은 열심히 뛰어노는 게 최고라고 생각했기에 시간이 나면 같이 놀아주려 했다. 함께 신문지를 찢고, 그림을 그리고, 만들기를 했다. 요즘은 놀이조차도 다양한 기관이 존재하는 것 같지만 조금 부족하더라도 아이와 교감하는 게 우선이라 생각했기에 그냥 열. 심. 히 놀았다.
그러다 큰 아이가 7살이 되던 해 처음으로 전집을 구입했다. 어떤 이는 전집은 부모들이 책장을 장식하고 싶은 욕심의 결과물이라며 반대하기도 하지만 60권 정도의 책을 저렴하게는 사서 읽힐 수 있는 책은 전집뿐이었다. 한 번 앉으면 몇십 권씩 읽는 아이들의 욕구를 충족시켜주며 가정경제에 무리가 가지 않는 선택은 중고 전집을 구입하고 다 읽으면 다시 되파는 일은 반복하는 것이었다.
아이가 좋아하지 않는 책이라고 해서 오래 가지고 있다가는 원하는 가격으로 되팔 수 없기에 중고시장에 형성된 가격을 살펴 가며 읽혔다. 요즘 아이들에 비하면 책 읽기에 늦은 시작일 수도 있지만 오히려 아이들은 책에 더 푹 빠져 구입한 전집이 오면 하루에 그 책을 다 읽곤 했다. 그렇게 여러 번 반복해서 읽고 나면 아이들에게 다른 책을 구입하기 위해서 책장도 비워야 하니 읽고 있는 책은 팔아도 되겠냐고 물었다.
당시 주위에 수업이 포함된 고가의 전집 구입을 두고 남편과 의견이 맞지 않는 지인들도 있었다. 아이들에게 독서가 중요한 건 알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건 남편의 공감이었기에 가정경제규모에 맞춰 조금 더 부지런해지기로 한 선택이었다. 그런 노력 덕분이었는지 퇴근 후 피곤해도 아이들에게 늘 책을 읽어주는 남편의 모습이 흐뭇하게 떠오른다. 아무리 좋은 시간이고 아이들에게 필요한 것일지라도 부부간에 합의가 되어 있지 않다면 시작하지 않는 게 옳다고 본다. 아이들에게 중요한 것 중 가장 일 순위는 화목한 가정이고 서로 존중하는 부모의 모습이다. 다른 부분은 부족하면 아이가 나중에라도 스스로 채울 수 있지만 화목한 가정과 사랑하는 부모의 모습은 지금 이 순간이 아니면 절대 만들 수 없다.
사실 남편의 공감과 그로 인한 동참을 내심 기대하며 시작한 우리 집만의 책 순환법이었는데 시간이 흐르면서 의외의 장점이 덧붙여졌다. 아이들은 늘 엄마를 칭찬하는 아빠의 모습을 보게 되었고 차즘 소비에 대해서 고민해 보는 경제 교육의 시작이 된 것이다.
그렇게 10년을 책 육아를 했다. 책 육아라는 말을 좋아하지도 않고, 책 육아라고 할 정도로 열심히 읽히지도 않았기에 쓰고 싶지 않은 말이지만 설명할 마땅한 단어가 떠오르지 않으니 오늘만 '책 육아'라는 말을 빌려보려 한다. 큰 아이가 7살 되던 해 시작한 책 육아는 고등학교 입학 전 16살 때까지 이어졌다. 그 사이 책은 아이들에게 최고의 사교육이 되어주었다. 두 아이 모두 글쓰기나 독서와 관련해 여러 상을 받아왔고 말하기와 발표에 있어서도 두려움 없는 청소년이 되었다. 아이들에게 책을 준비해 주며 신경 쓴 게 또 하나 있다면 심심할 시간의 확보였다. 해야 할 공부가 많고 집에 있는 시간도 없는데 책을 읽으라는 건 괴로운 일이다. 학원을 다니지 않으니 집에 오면 시간이 많았던 아이들은 심심해서, 할 일이 없어서 책을 읽었다.
큰 아이가 17살이 되고 고등학생이 되면서 기숙사 생활이 시작되었다. 집에 있는 시간이 없을뿐더러 집에 와도 해야 할 공부가 많았기에 책에 눈을 돌릴 틈이 없었다. 이제 진짜 스스로가 정한 진로에 집중할 시간이 된 것이다. 요즘은 아이들도 경쟁과 입시 위주의 환경에서 번아웃 증후군을 겪는다는데 그동안 충분히 여유로운 시간을 가진 내 아이는 정말 필요할 때 스스로 집중하며 힘을 냈다.
올해는 작은 아이가 17살이 되면서 오빠와 같은 길에 첫 발을 내디뎠기에 최근까지 가지고 있던 마지막 전집을 정리했다.
아이들 책으로 차 있던 책장은 이제 남편과 내가 좋아하는 책들로 채워졌다. 이제 아이들도 부모가 읽는 책을 읽을 나이가 되어 자연스레 같이 읽고 있지만 강요하지는 않는다. 아이들에게 책을 읽혔던 건 더 높은 단계로 가기 위함이거나 지식을 위해서가 아니었다. 직접 경험해보지 못하는 시간과 감정을 책으로 느껴보길 바랐고, 나와 다른 생각도 배척하기보다는 입장을 바꿔 생각하는 아이로 자랐으면 했다. 혼자만의 세상이 아닌 세상과 소통하는 사람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에 책을 읽혔다.
고등학교 공부와 취업 준비에 지친 큰 아이는 요즘은 책만 보면 토할 것 같다고 한다. 그만큼 자신에게 주어진 환경이 너무 힘들다는 뜻일 것이다. 그렇게 말은 해놓고도 시간이 나면 신문을 읽고 필요한 책을 빌려서 읽는 모습을 보며 '읽기의 수단'이 달라진 것뿐이지 소통의 끈을 놓지 않았음을 느낀다.
여전히 다양한 소설을 좋아하는 17살 둘째는 엄마가 읽는 책을 궁금해하고 엄마, 아빠가 책이나 여러 분야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것에 귀 기울이곤 한다. 직접 읽지 않아도 그렇게 옆에서 지켜보는 시간 또한 아이들에게 큰 배움이 됨을 경험했다. 엄마가 읽는 책은 다 어렵다고 하면서도 내가 빌려와 읽지 못하고 다시 반납하는 여러 고전 등의 책을 작은 아이는 읽곤 한다.
아이들을 위해 구입했던 마지막 전집을 정리했던 오늘, 그동안 아이들과 함께 했던 읽기의 시간이 떠올라 남편에게 이야기를 꺼냈더니 따뜻함이 되돌아왔다.
"당신처럼 현명한 엄마는 없을 거예요"
아이들 입장에서는 현명한 엄마가 아닌 독한 엄마라는 생각이 더 강하겠지만 10년 책 육아는 아이들에게도 또 나에게도 성공적인 시간이었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아이들에게 책을 읽히기 시작하면서 나 또한 독서모임에 가입해 책을 읽기 시작했다. 7년 전 참여자였던 나는 이제 독서모임의 리더가 되었고 문집 발간 및 다양한 경험을 쌓아가고 있다. 그리고 이런 나를 지켜보는 아이들이 던지는 이야기가 있다.
"엄마, 책 읽으시더니 정말 많이 변하셨어요"
남편과 아이들이 공감해 주고 아이들만의 변화가 아닌 나와 내 가정의 성장으로 이어온 시간, 엄마 이야기라면 칭찬보다는 무시무시한 엄마라는 말을 먼저 꺼내는 아들조차도 책과 함께 한 시간의 힘이 지금의 자신을 만들었음을 부정하지 못하는 걸 보면 스스로 뿌듯해하며 토닥거려도 될만한 10년 책 육아라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