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살 17살 내 아이들은 스마트폰이 없다. 엄밀히 말하자면 스마트 폴더폰이긴 하지만 4년 전에 중고로 사 준 기기이다 보니 스마트폰으로서의 기능이 거의 없고 남편 또한 스마트폰이라고 하면 안 된다고 하니 그냥 폴더폰이라 부르겠다. 학교에서 스마트폰이 아닌 학생은 우리 아이들뿐이다. 이런 상황 속 우연히 큰 아이의 핸드폰을 본 선생님이 한 마디 하셨다고 한다.
너희 부모님도 징하다
그렇게 난 독한 부모를 넘어 징한 엄마가 되었다.
아이들이 어릴 때부터 가족회의를 하며 전자기기와 관련된 규칙을 정했다지만 커가면서 그 규칙은 엄마의 억압으로 다가갔을 것이다. 말해봐야 통하지 않으니 아이들이 말을 꺼내지도 않지만 표현을 안 해서 그렇지 아무렇지 않은 건 아니다. 코로나 이후로 원격 수업을 하고 반 전체 카톡으로 공지를 하다 보니 작년부터는 집에 있는 탭에 아이들 각자의 카톡을 설치해 사용하고 있다. 그전까지는 그마저도 없었기에 카톡 전체 공지를 아이 친구들이 따로 전달해 주는 상황이었고, 예쁜 음식 등 친구들과의 시간에 사진 찍는 걸 좋아하는 둘째는 친구 핸드폰으로 사진을 찍어 전송을 받곤 했다. 좋은 것에 눈이 가고 비교 속 다름을 견디기가 쉽지 않은 나이이기에 속상하고 부끄러웠을 것이다.
아이 친구 중에는 성적이 잘 나오거나 원하는 학교에 합격할 경우 최신 폰으로 바꾼 경우가 많다. 내 아이의 성적이나 상황을 보며 친구들이 너도 이제 좋은 스마트폰 생기는 거냐고 묻기도 한다. 그런 이야기에 바꿔 줄 엄마가 아니라는 건 알지만 그래도 이야기를 전하는 아이들의 마음을 모르는 게 아니다. 모르는 척 독한 척할 뿐이다.
"1등을 하고 원하는 학교에 가는 게 왜 당연하게 선물을 요구할 일인지 모르겠다. 공부는 자신을 위해서 하는 거야. 엄마는 1등을 했다고 축하해 주기보다는 성적이 잘 나오지 않아도 응원해 주고 도와주는 게 진짜 부모의 역할이라고 생각해"
예상했던 대답이었다는 듯한 아이들 표정 속에서 많은 감정을 읽지만 그 역시 모르는 척해야 했다.
누군가는 묻는다.
다들 가지고 있는데 내 아이만 어떻게 안 사줄 수 있냐고 묻는다.
요즘 부모들의 기준은 내 가정이나 내 아이가 아닌 주위의 다른 가정이나 아이들인 것 같다. 고등학교에서 기숙사 생활을 하는 큰 아이의 학교 전체 상담 때 나왔던 이야기가 기억난다.
"학교에서 노트북을 사용해도 되나요? 아무리 인터넷이 안된다지만 집에서 학습에 불필요한 자료나 게임 등을 저장해 갈 수도 있잖아요. 친구들은 노트북을 가져온다고 이야기하니 안 사줄 수도 없고...
그냥 학교에서 전체 학생에게 노트북을 가져오지 못하도록 하면 안 되나요?"
아이를 생각하면 노트북을 사주지 않는 게 맞지만 다른 친구들이 다 있을 때 내 아이만 없는 건 견디기 힘든 것이다.
누군가는 묻는다.
아이들의 소통이 스마트폰으로 이루어지는데 친구관계에도 문제가 생기는 거 아니냐고 걱정을 해온다. 스마트폰이 없을 뿐이지 컴퓨터로 아이들은 충분히 sns를 활용해 소통을 한다. 컴퓨터를 이용하게 하면서 자판 익히기부터 기본 OA 자격증 그리고 검색 등 올바른 전자기기 사용법을 아이들에게 가르쳐왔다. 쉽고 즐거운 것에 빠지면 익히고 배워야 하는 것들이 귀찮아지기 마련이다. 스마트폰의 장단점을 떠나 자극적인 즐거움보다는 귀찮고 하기 싫지만 먼저 익혀야 하는 것들을 만나는 경험을 하게 해주고 싶었다. 언제나 손에 들려 있어 터치 한 번이면 지루할 틈이 없는 것보다는 심심하고 지루한 시간 속에서 온전히 자신이 주인인 시간을 만들기를 바랐다.
어쩌면 아이 손에 전자기기를 들려주는 게 부모가 편할지도 모른다. 초등학교에 다닐 때까지만 해도 아이의 지루함과 심심함을 채워 줄 여러 경험을 위해 많은 시간을 함께 했고, 컴퓨터를 활용해야 할 때 기본이 되어 줄 교육을 직접 해왔다. 엄마의 노력을 알기라도 하는 듯 그 시간을 즐거워하고 그로 인한 빛나는 결과를 보여주던 아이가 고등학교 입학 후 변하기 시작했다. 아니 당연한 성장이라고 보는 게 좋을 것이다. 청소년기에 부모의 말에 순응하는 아이가 오히려 이상한 거라는 남편의 말을 빌려보자면 내 아이는 건강하게 자라고 있는 것이다. 알면서도 격하고 거친 아이의 반응에 속상할 때가 있다. 가족보다는 좋아하는 시간이 더 좋을 나이이고, 자신을 위하는 시간이라 할지라도 제어한다는 생각이 들면 화가 날 수도 있지만 지켜야 하는 선은 있다고 생각하기에 엄하게 꾸짖곤 한다. 물론 그런 엄마를 무서워하는 나이의 아이가 이제는 아니다.
서로 넘어서는 안 되는 선을 바로 앞에 두고 아슬아슬하게 지내고 있는 듯한 요즘, 남편과 함께 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선물을 준비했다.
아이들의 폰이 오래되다 보니 충전도 기본적인 기능도 잘되지 않는다. 바꿔야겠다고 생각을 하던 중 이제는 스마트폰을 해주기로 했다. 내가 쓰는 것과 같은 모델의 저렴한 스마트폰이면 될 거라 생각했지만 남편의 생각은 달랐다. 남편은 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사양의 스마트폰을 검색해서 구입했다. (물론 약정기간과 요금제의 노예가 되어야 하는 새 폰이 아닌 중고폰이다) 이제 내일이면 케이스와 액정에 붙일 필름이 도착할 것이다. 전혀 기대도 생각도 하지 않고 있을 아이들이 스마트폰을 보면 어떤 반응을 보일까.
중요한 건 스마트폰이 있고 없고의 문제가 아니다. 전자기기를 얼마나 사용하는가의 문제도 아니다.
나이가 들었다고 해서 어른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누릴 수 있는 자유만큼의 책임을 떠올릴 수 있고 소중한 이의 감정을 이해하며 자신의 생각을 전하려는 노력을 할 수 있어야 한다. 전자기기뿐 아닌 그 어떤 것도 사람보다 우선 될 수 없다. 그로 인해 자신의 감정을 조절할 수 없고 소중한 이들에게 상처 주는 말을 내뱉게 된다면 그건 이미 자신이 좋아하는 물건이나 상황에 지배당하고 있는 것이다.
동사무소에 신청했던 아이의 주민등록증이 도착해다는 연락이 왔다. 나이로는 성인이 되어가는 내 아이가 진정한 어른이 되길 바라기에 첫 스마트폰을 보여주며 어떤 이야기를 전해야 할지 많은 생각이 드는 오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