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살 딸아이와의 첫 독서모임
딸아이에게 책은 심심할 때 옆에 있어주는 친구입니다. 책을 얼마나 어떻게 읽어야 하는지에 대해서 이야기해 본 적은 없습니다. 단지 늘 가까이할 수 있게 아이가 좋아할 만한 책을 책장에 채워주었고 심심할 틈을 만들어주려 노력했습니다. 어릴 때부터 꾸준히 책을 읽어오며 이제는 엄마가 읽는 고전 등의 책까지 펼치는 독서력을 가진 아이에게 물었습니다.
"요즘 아이들은 독서가 즐겁지 만은 않다던데 넌 힘들지 않니?"
"그런 아이들은 학습과 연결해서 책을 읽거나 강요받은 기억이 있어서겠죠. 아니면 책 읽을 틈 없이 바쁘던지요. 전 아무 생각 없이 그냥 편하게 읽는 거라서 좋아요"
교과서에 나오는 도서 목록이나 연령별 추천도서 등을 챙길 필요는 없습니다. '그냥' '편하게' '아무 생각 없이' 책과 만나게 도와준다면 부모가 그토록 바라는 '책'을 좋아하는 아이가 될 수 있습니다.
고등학생이 된 후 새로운 환경과 잘해야 한다는 압박감에 힘들어하는 딸아이와 독서모임을 하기로 했습니다. 내 아이를 학습적으로 지도해 본 기억은 많지 않습니다. 문제집 채점도 초등학생 때부터 스스로 하게 지도해왔습니다. 공부는 스스로 해야 한다는 생각도 있었지만 내가 잘하지 못하는 부분을 아이에게 잘 전달할 자신이 없었습니다. 잘하지도 좋아하지도 않는 시간을 어설프게 만들며 힘들기보다는 내가 좋아하고 잘할 수 있는 시간으로 아이를 도와주는 게 가장 좋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아이가 원하고 그 시간을 즐거워해야 함은 필수 조건입니다.
내 아이는 책을 가까이하고 이야기하는 걸 좋아합니다. 7년 동안 독서모임을 해온 나 또한 책을 좋아하고 관련해 나누는 시간도 많이 쌓아왔으니 '독서모임'을 통해 아이와 즐거운 시간을 만들 자신이 있었습니다.
엄마랑 독서모임 할래?
그렇게 17살 아이와의 독서모임이 시작되었습니다. 독서모임을 시작하기로 하면서 생각했던 게 있습니다.
부담이 아닌 편안함으로!
많은 시간 준비하지 않아도 나눌 수 있는 시간으로!
아이가 말을 많이 할 수 있게!
무조건 즐겁게!
첫 책 선정은 아이에게 부탁했습니다. 중2 때 재미있게 읽었던 책이라며 '파리대왕'을 추천한 아이...
많이 알려진 책이다 보니 읽지 않아도 왠지 다 아는 것 같았던 '파리대왕'을 그렇게 읽어보게 되었습니다.
우리 독서모임 하러 나가자
딸과 함께 하는 독서모임 제1회
선정 도서 : 파리대왕
추 천 인 : 17살 딸아이
일 자 : 2021년 4월 4일 오후 8시부터
누리 : 대충 읽어서 대답 못하면 어쩌죠?
카페에 앉자마자 걱정부터 하는 딸아이를 보며 무조건 편안하고 즐겁게 모임을 끌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엄마 : 이 책을 추천한 이유가 뭘까?
누리 : 중2 도덕 시간에 인간의 도덕성에 대해 배우며 영화 요약 편을 봤어요. 그때 관심이 생겨 책을 빌려서 읽어보니 나름 괜찮았던 것 같아 엄마가 독서모임 하자는 이야기에 떠올려봤어요. 평소 읽는 가벼운 책보다는 이 책이 나을 것 같아 선택했어요.
평점과 총평을 시장으로 본격적인 독서모임이 시작되었습니다.
누리 : 4.5를 주고 싶어요. 인간의 감정선에 대한 묘사보다는 상황에 대한 잔인한 묘사가 더 자주 나와서 0.5를 깎았어요.
엄마 : 엄마는 4점, 노벨문학상 작가라 기대가 컸는 데 묘사 부분에서 걸리는 게 있었어. 누리 이야기를 듣고 보니 감정 묘사에 대한 부분이 부족해서 그런 게 아닐까라는 생각이 드는걸.
뭐든지 처음이 중요합니다. 첫 독서모임을 즐겁게 느끼게 하기 위해 아이의 말속 공감 지점을 찾아 언급해 주었고 그런 노력은 계속 이어졌습니다.
누리 : 저와 비슷하다 느낀 인물은 쌍둥이예요. 비겁해 보이지만 그런 상황이라면 나 또한 정의보다는 당장의 생존에 따라 행동할 것 같아요.
엄마 : 엄마는 주요 인물로 나오는 랠프나 잭 그리고 돼지 같은 인물만 주로 보다 보니 그중 돼지를 떠올렸었는데 누리 이야기 듣고 보니 엄마도 쌍둥이로 바꾸고 싶어 지네. 흠... 그럼 엄마는 우리 딸 옆에 있는 쌍둥이 형제 할래^^
누리 : 돼지는 가장 이성적인 인물로 보였어요.
엄마 : 그래? 이 책을 읽은 많은 사람들이 랠프를 이성적인 인물로 보는데 엄마도 이해가 안 가는 부분이 있었어.
엄마도 돼지가 인상 깊었어. 돼지가 안경이 없어진 후 죽게 되잖아. 어쩌면 그 부분이 돼지의 죽음에 대한 복선이 아닐까 싶더라. 우리 누리는 어떤 이유에서 돼지를 이성적인 인물로 봤을까?
아이의 생각에 공감하고 나오는 이야기에 꼬리에 꼬리를 무는 질문을 던져봅니다.
엄마 : 엄마가 하는 독서모임에는 논제를 가지고 하는 모임도 있고 그냥 편안하게 하는 시간도 있어. 논제 등의 자료가 없는 모임에서는 책을 읽은 후 떠오르는 키워드를 나누기도 하는데 읽으며 생각난 키워드가 있을까?
누리 : 15소년 표류기가 떠올랐어요. 이 책과는 전혀 다른 분위기로 흘러가고 엄마한테는 너무 쉬운 책이겠지만요. 이런 것도 키워드가 될지 모르겠어요.
엄마 : 엄마는 읽지도 못했는걸^^;; 역시 우리 딸은 정말 책을 많이 있었구나. 책을 읽고 다른 책을 떠올리는 것도 너무 좋은 것 같아. 엄마는 그냥 단순하게 '인간다움'을 떠올렸었거든. '15소년 표류기' 멋진 키워드야!
딸아이는 책을 읽을 때 작품 해설이나 저자의 말 등 본문 내용 이외의 것은 잘 보지 않는 편입니다. 꼭 읽고 받아들여야 할 필요는 없지만 그런 부분에서 담고 있는 내용도 언급하며 관심을 유도해보고 싶어 졌습니다.
엄마 : 작품 해설을 보면 왜 여자아이들은 등장하지 않을까라는 이야기가 나오는데 그 부분은 어떻게 생각해?
누리 : 전 작품 해설은 못 읽었어요^^;; 등장인물이 여자아이들이었다면 여러 가지 사건사고 속에서 더 심각한 문제들이 만들어지지 않았을까요?
편견일 수도 있고 어쩔 수 없는 부분일 수도 있는 남녀에 관한 이야기를 이어가며 만약 여자아이들이 등장했다면 어땠을까 하는 상황도 나눠보며 독서모임은 더 깊어져 갑니다.
엄마 : 어린아이들을 주인공으로 잔인한 상황을 그린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누리 : 더 충격적으로 다가가길 바란 상황 설정이었을 것 같아요. 어른들이었다면 눈에 보이는 부분은 더 잔인했을지도 모르겠어요. 이미 많은 걸 경험한 어른들이기에 규칙을 내세우며 더 철저하게 준비하는 것처럼 하면서 자신의 생각과 다른 이들을 완벽히 배제했을 테니까요. 하지만 그런 것보다 인간 내면에 더 끔찍하게 받아들여지는 건 순수하게 보이는 어린아이들의 모습에서 자신들의 잔인함을 보는 것일 거예요.
어른이 된 후 등장인물의 삶은 어땠을지, 책 속의 등장인물이나 상황을 보며 현실과 겹쳐지는 부분은 없었는지... 이어지는 엄마의 질문에 준비한 듯 자신의 생각을 차분하게 말하던 아이가 어찌나 기특하고 예쁘던지요. 독서모임 소감 발표에서는 엄마를 칭찬해 주는 센스까지 보여주던 딸아이입니다.
누리 : 역시 엄마는 학교에서 자주 언급하는 인문학적 소양 레벨이 어마어마함을 느꼈어요. 그리고 말을 많이 해서 좋았고요^^
엄마 : 친구들이 우리 누리한테 TV에서 나올법한 단어들을 사용한다고 했다고 했지? 그 말이 무슨 말인 줄 알 것 같아. 자칫 길어질 수 있는 이야기도 상황에 맞는 적절한 단어를 사용해 깔끔하게 정리하는 모습에 엄마 감동했잖아.
누리 : 아~~ 뿌듯하다~~
엄마 : 평소 독서모임에서 주어진 논제에 대한 생각이 아니라 그 이외의 이야기를 하는 분들이 많아서 힘들 때가 있어. 그런데 우리 누리는 질문에 핵심을 알고 대답하는 부분도 인상 깊었어.
아이에게 편안한 시간을 만들기 위해 첫 책 선정을 부탁했었는데 생각보다 어려운 책을 선택한 딸아이에게 이런 고전이 어렵지는 않은지 물었습니다.
누리 : 전 책을 공부를 위해 읽은 적이 없어서 어떤 책이든 부담은 없는 것 같아요. 평소 편하게 읽는 소설은 사실 읽으면서 어떤 스토리가 나올지 짐작이 가는데 동물농장, 1984 등은 뻔한 결말로 가지 않아서 또 다른 재미로 다가오더라고요.
엄마 : 오호... 그 어려움에서 재미를 찾는 경지에 이른 거야?
누리 : 두 도시 이야기는 읽다가 포기했어요^^;;;
두 도시 이야기는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작품이기에 하고 싶은 이야기가 떠오르기도 했지만 딸아이가 중심이 되어야 하는 독서모임이기에 나중을 위해 아껴두기로 하고 마지막으로 한 마디만 하고 첫 모임을 마무리했습니다.
책을 읽을 때는 작가의 의도나 하나의 답을 찾으려 하지 말고
지금처럼 네 생각대로 읽으렴
시간이 흘러 성인이 되었을 때는 작가의 의도를 찾아보고 숨어 있는 답을 찾으려는 노력이 필요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아직은 아닙니다. 다행히 책을 쉼으로 받아들이는 아이이니 학창 시절에는 그 시간을 계속 이어갔으면 합니다.
평소 독서모임 후 소감 외 오늘의 한 마디를 말할 때도 있습니다. 딸아이와 나눈 건 아니지만 개인적으로 기억에 남는 오늘의 한 마디를 남겨봅니다.
아, 뿌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