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 첫 시험이 끝난 후 기대에 못 미치는 결과에 실망했던 아이는 여러 가지로 힘든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 시간 속 친구의 거친 장난은 여린 아이에게 더 큰 상처로 다가왔습니다.
눈물을 글썽이며 힘겨움을 털어놓는 아이가 스스로의 감정을 돌아봅니다.
"이상하게 다 짜증 나고 힘들어요"
적극적으로 도와주고 싶은 시간도 보였지만, 어떤 판단이나 도움보다는 들어주기와 위로의 시간이 필요한 듯했습니다.
입학 후 첫 두 달 동안은 모든 게 즐겁기만 한 아이였습니다.
기숙사 생활도 학교 공부도 친구관계도 에너지 넘치던 아이는 반 대표로 대회 참가나 발표를 나가기도 했고 자신의 별명이 인싸라며 자랑해오기도 했습니다.
그러던 아이가 첫 시험 후 달라졌습니다.
오랫동안 아이의 힘겨움을 들어주었습니다.
한 시간이 넘게 울먹거리며 그 시간을 털어놓은 후에는 언제 그랬냐는 듯 표정이 밝아졌습니다.
상황을 전해 들은 남편이 생각을 전해옵니다.
"중학교 때까지는 매일 집에만 오면 학교에서 있었던 일을 당신한테 다 털어놓으며 스트레스를 풀던 아이였는데, 그 시간이 필요했나 보네요.
내가 볼 때는 다음 시험에 자신이 목표로 하는 성적을 받게 되면 좋아질 문제 같아요."
학교 측과 이야기해 볼 수도 있고 네가 다른 방법을 바란다면 그 방향으로 엄마, 아빠가 도와줄 수 있다고 이야기했지만 아이는 조금 더 생각해보겠다는 대답을 하고 기숙사로 갔습니다.
며칠 지나 밝아진 목소리로 전화를 걸어온 아이...
"엄마, 선생님이 제가 평소와 다르게 보였는지 저를 불러서 무슨 일 있냐고 물어보셨어요.
그래서 이야기를 나눴는데 역시 경력도 많고 좋은 선생님이라서 그런지 다 잘 이야기되었어요"
그렇게 아이의 힘겨움을 알게 된 선생님께 얼마 후 전화가 왔습니다.
다른 일을 하느라 전화를 받을 수 없는 상황 속 남편이 통화를 하게 되었고 옆에서 듣던 중 다른 이야기보다 더 크게 들리던 목소리가 있었습니다.
저희는 아이가 잘 되길 바라지 않습니다.
아이가 행복했으면 좋겠습니다.
성적에 대해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아이를 느끼고 혹시 집에서 그런 부분에서 부담을 주는 건 아닌지 물으신 모양입니다.
아이의 행복을 바라지 않는 부모는 없겠지만, 당당히 아이가 잘 되길 바라는 건 아니라고 이야기할 수 있는 부모는 흔치 않을 것입니다.
나 역시 좋은 결과를 내주고 있는 아이를 보면서 나도 모르게 잘 될 거라는 기대와 욕심을 내고 있었나 봅니다.
남편의 이야기에 머리를 한 대 맞은 듯했습니다.
얼마 전 읽었던 책이 떠올랐습니다.
평소 남편과 나누었던 이야기를 여러 가지 사례와 연구결과를 들어가며 정리한 듯 한 책 『정서적 흙수저와 정서적 금수저』
어릴 때 부모와의 사이에 애착 관계가 안정적으로 형성되었는지 아니면 애착이 손상되었는지가 정서적 수저의 색을 결정하는 주요 변수이며 그로 인한 개인과 가족 차원의 불행은 여러 사회적 영역과 다차원적인 인관관계에서의 문제로 발생하므로 공동체 문제로 바라보며 노력해야 함을 이야기하는 책입니다.
저자는 이야기합니다.
애착의 핵심은 내가 도움이 필요할 때 달려와주고 내 편이 되어줄 거라는 믿음과 기대입니다.
애착의 2차 방어선인 학교 또한 적극적으로 나서야 함을 이야기합니다.
교사는 단순히 지식의 전달자가 아니라 지혜의 전달자로 거듭나야 합니다.
그냥 교사가 아니라 인생의 멘토인 스승이 되어야 합니다. 부모 같은 스승이 되어야 합니다.
중간고사 후 아이의 담임선생님과 문자를 주고받을 일이 있었습니다.
문자 마지막에 남겨주신 선생님의 따뜻함이 떠올랐습니다.
욕심 없이 있는 그대로의 아이를 믿어주고 사랑해주는 아빠...
부모의 마음으로 학생을 바라보며 진심으로 아이를 도와주고자 하는 선생님...
내 아이는 정서적 금수저입니다.
물질적, 정서적 흙수저였던 내가 나의 애착 손상을 아이에게 대물림하지 않기 위해서는 많은 노력이 필요합니다. 그중 하나가 나와 다른 교육관을 이야기하는 남편의 말에도 귀 기울이고 함께 하려는 자세입니다.
그 시간은 아이뿐 아닌 부모인 나의 트라우마를 벗게 해주는 시간이기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