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부모가 되는 일보다 더 중요한 직업은 없다 - 오프라 윈프리
학교에서 보는 시험이나 자격증 하나를 취득하기 위해서도 준비를 하는데 정작 부모가 되는 일에는 얼마나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지 돌아보게 됩니다. 미리 준비하지는 못했지만 아이를 키우며 내 맘과 같지 않고 힘겨움이 밀려올 때면 육아서나 다양한 자녀 관련 강의를 찾아보게 됩니다. 그렇게 접하게 된 정보는 힘겨운 마음을 위로해주며 달라질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을 갖게 해 줍니다. 바로 아이들에게 적용해보고 싶어 집니다.
공감과 아이의 마음을 읽어주는 게 중요하다는 것은 대부분의 육아서와 강의에서 듣는 말입니다. 그런 문화가 확산된 후 아이들 눈에 비친 새롭게 생긴 엄마의 병이 있다고 합니다. 감정코칭이 아이의 지능과 부모와의 관계에 긍정적 영향을 준다는 이야기에 엄마들이 따라 하며 시작된 '구나병(힘들었구나. 화났구나. 그랬구나 등의 ~구나체)' 입니다. 하지만, 엄마의 모습이 가식적인 순간의 모습인지 노력하는 시간 속 모습인지 아이들도 잘 압니다. 무분별한 구나체나 아이들을 혼란스럽게 하는 일시적인 변화가 아닌 생활 속 꾸준하고 자연스러운 노력이 필요합니다.
그 노력의 하나로 5년 동안 이어왔던 우리 가족의 시간이 있습니다.
저녁식사시간 3가지 말하기
2014년 초 한 학부모 강좌를 듣게 되었습니다. 여러 가지 좋은 내용이 많았지만 그중 꼭 실행에 옮기고 싶은 내용이 있었습니다.
가족회의 시간에 이러한 내용을 이야기하고 한번 해보면 좋겠다는 제안을 시작으로 '저녁식사시간 3가지 말하기'가 시작되었습니다. 말하기를 좋아하는 딸아이는 흔쾌히 수락했지만 당시 자기주장이 강해지기 시작하던 12살 아들은 왜 그런 걸 해야 하냐고 불만을 보이면서도 못 이기는 척 동의했습니다.
처음에는 쉽지 않았습니다. 저녁에 말하려고 학교 계단에 적혀있는 좋은 글귀를 일부러 외워왔다며 말하던 딸과는 달리 늘 같은 하루이고 말할 것도 없다며 불편함을 표현하는 아들의 모습도 기억납니다. 이럴 때 필요한 건 부모의 모범입니다. 평소 꼼꼼하게 보지 않던 신문까지 구석구석 읽기도 하며 이야깃거리를 만들었습니다.
그렇게 시작된 '저녁식사시간 3가지 말하기'에 1년이 넘어가면서 변화가 찾아왔습니다.
오늘은 누구부터 말할까?라고 먼저 묻지 않아도 "오늘은 제가 먼저 할게요~", "오늘은 누가 먼저 할까요?" 라며 아이들이 먼저 입을 열었습니다. 특별한 이야기는 아닙니다. 학교에서 있었던 일을 말하고 그날 저녁 반찬이 맛있어서 엄마한테 고맙다고 전해옵니다. 알게 된 일은 생각이 안 나면 학교에서 새롭게 배우거나 알게 된 부분을 말하기도 합니다. 늘 아이들과 많은 이야기를 나누는 엄마 입장에서는 일상적인 이야기이지만 남편에게는 의미 있는 시간으로 채워져 갔습니다.
평소 회사일에 바쁘고 피곤한 아빠와 아이들이 따로 시간을 내어 하루의 생각을 말하는 시간을 만들기란 쉽지 않습니다. 주로 아이들이 자고 난 이후 중요한 일이라 생각되는 부분만을 전하곤 했는데 저녁식사 시간 말하기로 인해 자연스레 아이들의 생각을 아빠와 공유할 시간이 생긴 것입니다. 그리고, 더 좋았던 건 아빠의 이야기를 아이들이 듣는 시간이었습니다. 아빠가 말하는 부분에서 회사에서 힘들었던 일이나 일상을 말하고 있자면 자연스레 아이들이 아빠를 이해하고 알아가는 시간이 되어가는 게 눈에 보였습니다.
다들 자연스럽게 그날 있었던 일을 이야기하는 반면 엄마인 나는 아이들에게 하고 싶은 말인데 그냥 말하면 잔소리가 될 이야기들을 돌려서 말하곤 했습니다. 책을 읽자 라는 말 대신 '엄마가 책에서 봤는데 어떤 생각이 들어 참 좋은 거 같다' 식의 이야기를 전했습니다.
이야기해오면서 가장 내용이 바뀌지 않았던 건 감사한 일 말하기였습니다. 주로 그날 저녁을 차려준 엄마에게 고맙다. 이렇게 회사일이 힘든데 함께 해주는 아빠에게 감사하다 등 즉흥적인 느낌이나 또는 사람들에게만 감사를 표하는 아이들을 위해 다른 접근이 필요했습니다. 아이들에게 가르치려 하기보다는 나의 행동으로 보여주기로 했습니다.
날씨가 너무 좋아 빨래를 잘 말릴 수 있어 감사하다며 당연하게 여기던 것들에 대한 감사부터 계획 세웠던 부분을 오늘도 잘 실천한 나 스스로에게 감사한다는 식의 다양함을 가지고 내 생각을 전했습니다. 또한 아이들에게 고맙다는 말을 많이 했습니다. 잘한 일이 있을 때에만 해주던 칭찬 대신 오늘 아침 엄마가 좋게 이야기하지 못했는데 화내지 않고 잘 받아주어서 고맙고 미안하다거나 즐겁게 하루를 잘 보내고 와주어서 고맙다는 말을 전했습니다. 별말이 아닌데도 아이들은 그 말을 너무나 좋아했고 엄마의 감사에 대한 말을 더 지키려고 노력을 하는 모습들도 보였습니다.
우리 가족만의 고유한 저녁 모습이 되었던 '저녁 식사 시간 3가지 말하기'가 5년을 채우고 2019년 끝이 났습니다. 큰 아이가 고등학교 입학 후 기숙사 생활을 하면서 자연스레 멈춘 시간이지만 어쩌면 더 확장되어 이어지는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주말에 집에 온 아이는 내내 학교에서 있었던 일이나 감정을 쉴 틈 없이 털어놓습니다. 친구들과의 추억이 많았던 나의 고등학교 시절과 달리 모든 게 경쟁인 내 아이의 고등학교 생활은 듣기만 해도 숨이 막힙니다.
이런 아이에게 필요한 건 함께 나누는 시간이 아닌 들어주기의 시간입니다. 아이는 이야기합니다.
"저처럼 집에서 학교 생활 이야기 많이 하는 친구들은 없어요. 우리 집 분위기가 좀 특이하기도 하고요"
내 아이의 특별함과 우리 집의 특이함, 이 시간의 시작은 '저녁 식사 시간 3가지 말하기' 였을지도 모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