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2 진로상담] 당신의 이야기에 동의할 수 없습니다.

by 살곰살곰

공부나 미래에 대한 불안보다는 다시는 오지 않을 지금을 더 누렸으면 좋겠습니다.

하지만 아이에게는 자식을 향한 엄마의 무한한 사랑으로 비춰지나봅니다.

나에게는 "충분한" 노력으로 비춰지는 시간이 아이에게는 불안으로 다가가나 봅니다.

학기 초 시교육청에서 진행하는 진로상담과 관련된 안내장을 가져온 딸아이가 묻습니다.

"엄마, 신청하셨어요? 언제예요?"

중학교 2학년 겨울 방학이나 3학년 때 해도 충분할 것 같다는 나의 이야기에도 아이는 계속해서 재촉을 해왔습니다. 결국 여름방학이 끝나갈 무렵으로 진로상담을 예약했고 아이가 그토록 기다리던 상담을 받게 되었습니다.

학습상담은 필요 없다 생각했기에 진로상담으로만 신청을 했었는데, 검사지를 파악하고 이해하는 능력이 빠르다며 상담실에서 할 수 있는 검사를 다 하게 되었습니다.

검사를 하기 전 아이에게 던져진 첫 번째 질문은 1학기 성적이었습니다.

"수학만 B고 다른 과목은 다 A예요."


"몇 점인데?"

아이의 수학 점수에 놀란 상담자는 그 이후로 계속 수학과 관련된 이야기만을 이어갔습니다.

아이 또한 중간고사와 달리 기말고사 때 수학에서 낮은 점수를 받은 후 우울해하고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시험 한 번으로 아이를 판단하지는 않습니다.

아이는 '충분히' 수업 시간에 집중하고 있고, '충분히' 부족한 부분을 채우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해왔습니다.

하지만, 상담자의 눈에는 다른 무엇보다 수학 점수만 보였나 봅니다.

"지금이 마지막 기회야. 고등학교 가면 수학이 얼마나 어려워지는 줄 아니?

지금 다른 과목을 다 잘하니 우쭐할지 모르지만, 고등학교 가면 심화반도 국영수의 과목을 가지고 평가해.

적어도 3학년부터는 1년 정도의 선행이 되어있어야 해.

학교에서 배우는 것 가지고는 부족해.

네가 워낙 잘하니까 또 더 잘할 것 같으니까 하는 소리야"

중간중간 학원을 다니는 친구들에 비해 너무 노력을 안 하고 있는 거라는 이야기와 집에서 혼자 공부하는 게 자기주도학습은 아니라는 비판에 아이의 눈빛에서 하고자 하는 말이 읽혔습니다.

'아니에요. 저 열심히 하고 있어요.

기말고사 때 수학 시험이 어려워서 다른 친구들 점수도 높지 않았다고요.

그래도... 나름 열심히 했고...

전교 10등이라고요'

하지만, 아이에게 말할 기회는 주어지지 않았습니다.

어떤 말을 해봐야 변명으로 차단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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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가 이날 받았던 다양한 검사 결과는 그동안 보아왔던 아이의 모습을 그대로 담고 있었습니다.

예술 시각능력과 손재능, 대인관계 능력이 높음.

컴퓨터 응용분야, 언론직, 소비자 경제분야의 직업군에 대한 흥미가 높음.

굳이 이번 상담이 아니라도 학교 등에서 받아왔던 검사와 다를 바 없었던 결과지...

내가 생각했던 상담은 아이가 가지고 있는 이런 재능과 연관되어 있는 고등학교에는 어떤 학과가 있는지, 관련 분야에 전문가인만큼 더 깊은 상담이 이뤄질 거라 예상했었습니다.

"나는 네가 명문대학에 가서 그에 걸맞은 직업을 가졌으면 좋겠어"

내 귀를 의심했습니다.

자신의 진로에 대해 고민하고 있는 아이에게 명문대는 뭐고, 그에 걸맞은 직업이라는 건 무슨 의미일까...

"저는 지금처럼 아이가 집에 와서 책도 읽고 좋아하는 그림을 그리는 그런 시간이 너무 멋지다고 생각합니다."

"아니에요. 어머님. 이제는 중요한 일에 집중해야 할 시기죠.

책 읽고 그림을 그리는 시간을 줄여야 합니다.

제가 어머님이라면 지금 당장 수학학원부터 알아보겠어요.

동네 학원이 아닌 00동에 있는 1:1 수업이 가능한 학원으로 하루에 2~3시간씩 학원을 다니고 집에서도 복습하면서 5시간씩 공부를 했으면 합니다. 그렇게 수학을 끌어올려놓은 후에 겨울방학부터는 영어 학원도 보내세요"

나는 분명 진로상담 신청을 했건만 어떻게 하면 아이의 점수를 올릴 수 있는지에 대한 코치가 이어졌습니다.

그러던 중 나와 아이를 경악하게 만든 한 마디...

"큰 아이가 마이스터고에 가서 대학 학비에 대한 부담이 없으니 얼마나 좋으세요.

그러니 둘째에게 투자하세요.

요즘은 딸들이 효도한다쟎아요. 아들은 취업해도 결혼하고 나면 가정을 책임져야 하니 부모님을 챙길 여유가 없지만 딸들은 안 그러거든요"

더 이상 귀담아들을 필요가 없었습니다.

모든 이들이 나와 같은 교육관을 가져야 한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적어도...

진로 상담가라면...

좋은 대학을 목표로 설정해두고 점수를 높이는 코치가 아닌 아이의 관심사와 재능을 파악한 후 그와 관련된 조언을 들려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게 현실이라는 무책임한 말로 아이를 더 겁주며 몰아부쳐서는 안 됩니다.

정말 그 이야기가 현실이라고 생각한다면 이런 환경을 만든 우리 어른이 부끄러워야 합니다.

상담이 끝나고 나오는 길 나라도 사과해야겠다 싶어 졌습니다.

"딸, 미안하다. 힘들었지?"

"저 정말 억울했어요.

많이 노력했고, 그래서 스스로 이런 검사도 받아보고 싶다고 한 건데...

학원을 다니지 않는다는 이유로 기말고사 수학 점수 하나로 아무 노력도 하지 않는 아이가 되어버린 상황이 너무 억울했어요. 그게 아니라고 말하고 싶었는데, 말할 기회를 주지 않았어요..."

"응, 엄마도 네 눈동자에서 충분히 읽을 수 있었어.

진정한 상담자라면 내담자의 말에 귀 기울여야 하는데 그분은 하고 싶은 말이 너무 많았나 봐.

말씀하셨던 것처럼 욕심날 정도로 충분히 잘하고 있는 아이로 보였기에 그런 이야기를 하신 건지도 모르지만

오늘 받은 검사 결과지 외 하나의 기준을 가지고 주장하던 그분의 이야기는 귀담아들을 필요 없는 것 같다"

"그 선생님은 뭐든지 나누는 걸 좋아하시나 봐요.

좋은 대학을 나온 사람과 아닌 사람...

대졸자와 고졸자...

여자와 남자...

아들은 결혼하면 가정을 책임져야 하고 딸은 아니라는 식의 이야기에 저 정말 화났어요.

어떻게 같은 여자인데 그렇게 이야기할 수 있죠?"

"그러니 여전히 세상이 안 바뀐 거겠지.

익숙해진 관습을 깬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거든.

나이가 들면서 그 벽은 더 단단해지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만난 남편도 무슨 그런 진로상담이 다 있냐며 누군가 이야기하지 않으면 다른 이들도 피해받을 수 있다며 교육청에 올리라는 이야기를 해옵니다.

정말 그럴까? 의문이 생깁니다.

어쩌면 나 같은 이들보다는 지금 더 참고 노력해서 좋은 대학을 보내고 그에 걸맞는 직업을 갖게 하는 게 목표인 부모들이 많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런 현실이 무겁고 씁쓸하게 다가옵니다.

어두운 표정의 아이의 기분을 풀어주기 위해 지나던 길 옆에 있던 놀이터에 아이를 데려간 남편...

아이의 축 처진 어깨가 시소와 함께 올라갑니다.

생각지 못한 높이에 무섭다는 아이에게 괜찮다며 아빠가 있으니 다리를 올려보라고 합니다.

불안해하는 아이에게 현실이라며 재촉하고 꾸짖는 부모는 되지 않을 생각입니다.

현실이 그렇다 하더라도 나는 아이에게 쉼이 되는 부모가 되고 싶습니다.

높은 곳에 있다고 우쭐해하지 않게...

낮은 곳에 있다고 힘겨워하지 않게...

시소에서 중심을 잡아 아이를 웃게 해 준 남편과 같은 그런 부모가 되고 싶습니다.

난 계속해서 아이가 책을 많이 읽었으면 좋겠습니다.

지금처럼 좋아하는 그림을 그리며 스트레스를 풀길 바랍니다.

그 시간을 아이에게 뺏을 생각이 결코 없습니다.

그 길이 아이에게 더 많은 부와 명예를 가져다준다 할지라도 난 그 길을 가지 않을 생각입니다.

과연 어떤 길이 행복한 것인지 아이와 더 이야기하겠습니다.

그 행복의 요소에 무엇을 대입시킬 것인지 나누겠습니다.


난 내 아이를 투자 대상으로 생각한 적이 없습니다.
내 아이가 명문대에 가길 바라지 않습니다.
하나의 기준을 두고 '그에 걸맞는'이라는 식으로 직업을 나누는 건 옳지 않습니다.우리가 만들어놓은 현실을 아이들에게 사과해야 합니다.
딸이니까 여자니까 어때야 한다라는 이야기를 단 한 번도 한적 없고
앞으로도 입에 담지 않을 생각입니다.
난 당신의 이야기에 동의할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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