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사 같은 부모가 되려고 하지 마라

by 살곰살곰

아이의 기억 속 나는 누구보다 고맙고 사랑하는 존재이기도 하고, 때론 자신을 아프고 힘들게 한 존재이기도 합니다. 늘 좋은 부모로 남고 싶다는 건 나의 욕심임을 잘 알면서도 잊고 싶은 나의 부족한 모습을 기억해내는 아이를 마주할 때면 미안함을 넘어 속상할 때도 있습니다.

이미 지나온 시간을 되돌릴 수는 없습니다.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건 그때와는 다른 긍정적 기억을 심어주는 것뿐입니다.


다행히 '뒤늦게라도 아이의 좌절된 욕구와 위로받지 못한 감정을 이해해주는 대화가 이루어진다면 아이의 애착 손상은 충분히 회복된다.(관계를 읽는 시간 中)' 고 하니 이제라도 아이의 마음을 궁금해하고 물어봐주는 부모가 되려 노력하는 중입니다.


큰 아이를 키우며 갈등이 많았던 부분 중 하나가 전자기기입니다.

아이와 많은 대화를 하고, 가족회의를 통해 규칙을 정해 지켜왔지만 아이의 욕구는 선을 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아이가 규칙을 어길 때 내가 보인 행동은 참거나 혼을 내거나 또는 참다 더 크게 터지거나입니다.

다 아이를 위하는 일이라 생각했고, 규칙을 어겼으니 당연한 결과라 여기며 나의 행동을 합리화시키기도 했습니다.


물론 그 시간으로 인해 전자기기 속 가상의 세계보다는 책과 발로 뛰는 살아있는 경험의 시간을 쌓아올 수 있었습니다. 그 시간이 내 아이의 가장 큰 힘 중 하나라는 건 아이 또한 인정하는 부분입니다.

하지만, 이제는 그 시간을 강요해서는 안 되는 나이가 되었음을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할 때임을 느낍니다.

바로 지금이 아이의 좌절된 욕구를 회복시켜 줄 순간이라 생각하며 이전의 나와는 다른 내가 되려 합니다.


큰 아이는 고등학생이 된 후 1학기 기말고사가 끝난 후부터 집에 오는 주말이면 PC방에 갔습니다.

집에 와서 잠도 푹 자고 쉬다 가면 좋으련만 아이에게는 게임이 가장 큰 휴식처인가 봅니다.

2학기 중간고사를 앞두고도 게임을 하러 가던 아이를 보며 이번 시험에 결과가 안 좋으면 자극을 받고 그 시간을 정리할지도 모르겠다 싶었지만, 2학기 중간고사에서 스스로 만족할 만한 성적을 받았습니다.


아이의 말처럼 학교에서는 정말 쉴틈 없이 최선을 다하고 있나 봅니다.

그랬기에 주말 동안 아무 생각 없이 쉴 수 있는 게임과 같은 자극이 더 끌리는 것일 수도 있겠지만, 여전히 안타까운 마음이 듭니다. 남편 또한 일어나자마자 밥을 먹고 PC방에 가는 아이가 답답해 보였던지 아이가 간 후 한 마디 합니다.


"다음 주부터는 주말에 PC방에 가지 말라고 해야겠네요"


사실 내 마음속에도 떠다녔던 말이지만, 그게 답이 아님을 잘 압니다.


"집에 들어와야 하는 시간 등의 규칙만 어기지 않으면 되죠. PC방에 가지 말라는 건 심한 것 같아요.

속상해도 아이에게 그런 이야기는 하지 말게요. 내가 상황 봐서 이야기할게요"


남편에게 한 이야기였지만, 흔들리는 나 스스로에게 던진 말이기도 합니다.


엄마, 아빠의 고민은 모른 채 약속한 시간이 넘어서 들어온 큰 아이...


"네가 원하는 시간을 보내며 휴식을 취하는 건 좋지만, 약속한 시간은 지키도록 하자"


평소라면 퉁명스럽게 대답했을 텐데 스스로도 잘못을 뉘우치고 있다는 듯 한 부드러운 말투로 대답을 하던 아이가 다음 날 PC방에 가면서는 나름의 각오를 던집니다.


"엄마, 제가 오늘은 4시까지 들어오려고요. 와서 도서관에도 가구요"


"4시? 가능하겠어? 무리하게 잡지 말고 좀 넉넉하게 잡지 그러니?"


"흠... 그럼... 4시 20분... 아니 4시 30분이요~"


아이가 나간 후 남편에게 아이와 나눈 대화를 전달하니 믿지 못하겠다는 반응을 보입니다.


"집에 4시 30분에 왔다가 다시 PC방에 가겠군요^^;"


"그래도 상관없죠. 아이 스스로 정한 규칙이니 다시 PC방에 가건 도서관에 가건 그건 아이의 선택인 것 같아요. 저녁 통금시간만 지키면 된다고 봐요^^"


"자기는 정말 현명한 엄마네요. 적절한 규제와 적절한 자유... 그 선을 잘 지켜가는 엄마네요"


아마 과거의 나였다면 약속한 시간에 들어오지 않을 경우 어떻게 제재를 할지 고민했을 테지만, 그 시간을 바꿔보기로 했습니다. 혹 아이 스스로가 정한 시간에 들어오지 않더라도 불편한 감정을 내비치지 않을 준비와 남편 말대로 다시 PC방에 간다 하더라도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지 않을 감정 연습이 우선이었습니다.


4시 28분이 되자 현관문이 열리고 환한 얼굴의 아이가 들어옵니다.


"엄마, 친구들은 이제 슬슬 게임하러 접속했는데 시간 지키려고 끄고 나왔어요.

다른 때 같았으면 한 판 더하고 뛰어왔을 텐데 15분에 일찍 나와서 천~천~히 걸어왔다니까요"


평소의 패턴을 바꾼다는 게 쉽지 않을 텐데, 스스로의 다짐을 지키려 노력한 부분이 멋지다는 칭찬을 해주며 밥을 차려줍니다. 좋아하는 반찬이 가득한 밥상을 보며 아이가 한 마디 합니다.


"내가 이 맛에 집에 온다니까요^^"


집은 어떤 경우에도 쉴 수 있는 공간이어야 하고, 힘들 때 기댈 수 있는 곳이어야 합니다.

아이를 위한다는 변명과 욕심으로 가장 중요한 가정의 기능을 잊어서는 안 됨을 다시 한번 느끼게 해 준 아이의 한 마디...

순식간에 한 그릇을 비운 아이가 집을 나섭니다.


"엄마, 이따 제가 올 시간에 맞춰 나오시는 거죠?^^"


아이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기 위해 도서관이 문을 닫는 시간에 맞춰 옷을 입고 있으니 늦은 시간 혼자 어디를 가냐며 남편도 일어납니다. 나갈 준비를 하는 엄마, 아빠를 보던 딸아이도 따라가겠다며 옷을 입으면서 온 가족이 큰 아이를 마중 나가게 되었습니다.

신호등 건너편에 서있는 엄마, 아빠 그리고 동생을 본 큰아이가 눈이 동그래집니다.


"다 나온 거예요?"


"ㅎㅎㅎ 오빠 고맙지? 온 가족이 마중 나와주니까?"


즐거워하는 아이들을 데리고 멋지게 한턱 쏘기 위해 편의점으로 향했습니다.

큰 아이에게 먹고 싶은 걸 고르라고 이야기하는 순간 작은 아이가 옆으로 다가옵니다.


"엄마, 오빠한테 라면은 안된다고 이야기하신 거죠?"


라면이 먹고 싶은 자신과 오빠의 마음 그리고 분명히 늦은 시간에 안된다고 할 엄마를 떠올렸을 아이를 보며 그 예상을 깨보기로 합니다.


"아닌데, 먹고 싶은 거 고르라고 한 건데... 라면 먹고 싶으면 사렴^^"


생각지도 못한 엄마의 이야기에 아이들이 컵라면에 밥까지 말아먹으며 즐거운 야식의 시간을 보냈습니다.

11시가 다 되어가는 시계를 보며 잠자리에 들려는데 수행평가 준비를 해야 한다며 책상에 앉는 큰 아이가 보입니다.


그러길래 PC방에만 가려고 하지 말고 할 일이 있으면 해야지 늦은 시간에서야 무슨 공부냐고...

다다다다닥~~ 익숙한 잔소리가 4절까지 떠올랐지만, 전하고 싶은 이야기만 간단하게 전하기로 합니다.


"기숙사에 가면 또 일주일 내내 공부하느라 피곤할 텐데 일찍 해놓고 일요일에는 푹 자면 좋을 텐데...

스트레스도 풀고 휴식의 시간을 갖는 것도 좋지만, 그 시간이 다음 일정에 무리가 가지 않게 조절을 해보자"


자신을 탓하지 않고 생각만을 전하는 엄마의 이야기가 받아들이기 편했던지 또 다른 다짐을 이야기해옵니다.


"그래서 다음 주부터는 PC방에 안 가고 늦잠도 좀 자고 일어나서 기말고사 준비도 좀 하고 그러려고요"


정말 이번 주에는 PC방에 가나 안 가나 감시하는 엄마가 아닌 다짐이 흔들려 PC방에 가더라도 아이의 욕구를 존중해줄 수 있는 엄마가 되어야겠다 다짐해봅니다.


아쉬운 점이 있더라도 아이를 탓하기보다는 상황에 대한 내 생각만을 부드럽게 전할 수 있기를...

큰 규칙은 지키되 그 안에서 자유롭게 자신을 만들어갈 수 있게 기다려줄 수 있는 엄마가 되기를...

과거의 나로 인해 상처 받았을 아이의 기억이 오늘의 믿음과 사랑으로 조금이라도 회복되기를 바라며...


수많은 잔소리와 아이를 탓하는 말보다는 아이를 믿고 기다려주는 시간이 아이를 변하게 함을 잘 알면서도 실천이 쉽지 않았던 시간...

다행히 엄마의 작은 변화에 아이는 스스로 성장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뒤늦게라도 아이의 좌절된 욕구와 위로받지 못한 감정을 이해해주는 대화가 이루어진다면 아이의 애착 손상은 충분히 회복된다. 그렇다고 항상 이렇게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열에 한두 번 정도라 해도 이런 회복 경험은 아이에게 인간관계의 좌절을 영구적 좌절이 아니라 일시적 좌절로 받아들이도록 돕는다.

부모와의 관계에서 애착 손상을 회복한 경험이 없는 아이는 어른이 되어서도 금이 간 관계를 회복시키기가 어렵다. 안정적 애착이란 끝없는 '단절-회복'의 경험으로 만들어지는 동아줄이지, 부모의 초인적 인내와 정성으로 한 번도 금가지 않고 빚어낸 도자기가 아니다.

그러니 제발 천사 같은 부모가 되려고 하지 마라. 일시적인 단절을 받아들이되 다시 연결을 회복시켜주는 부모가 돼라.

- 관계를 읽는 시간 中 -




2년이 흐른 지금와서 생각하면 모두 미소 지어지는 순간이지만 그때는 어렵고 고민되는 시간들이었습니다.

치열한 학창시절의 공부 전쟁을 1차 마무리하고 내년이면 군대에 가고 사회에 나갈 큰 아이지만 일상속 크고 작은 갈등은 지금도 존재합니다.


좋은 부모가 되려 노력하지만 완벽한 부모일 수는 없습니다. 여전히 아이에게 큰 소리를 내기도 하고 후회하기도 합니다. 예전과 달라진게 있다면 어렵게 느껴지던 그 시간 속 부모인 '나'만 보이던 것에서 이제는 '아이'를 함께 볼 수 있게 되었다는 점입니다. 그리고 아이 역시 달라졌음을 느낍니다.


아이나 나나 천사 같은 아이나 천사 같은 부모가 되려고 하지는 않습니다. 일상을 살아내며 서운할 때도 있고 후회할 때도 있지만 그 시간도 껴안으며 더 단단한 '가족'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완벽하지 못한 부모였던 내가 실패하고 조금씩 노력하며 변해가는 모습을 아이 역시 느꼈기에 가능한 시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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