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 대 마지막 생일을 보내는 아들에게 건네는 편지

by 살곰살곰

고등학교 졸업을 앞둔 아들의 등교 준비 모습 속 가방과 필통에 시선이 갑니다.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고등학교 때까지 써온 책가방과 중학교 때부터 고등학교 때까지 쓴 필통...


또래 아이들이 사고 싶어 하는 메이커 옷 한 번 사달라고 한 적 없고 옷이든 학용품이든 사주는 데로 가지고 다니던 아들입니다. 학년이 바뀌면서 새로 사주겠다는 말을 해도 쓸만한데 뭐 하러 사냐던 아들입니다.

고등학생이 되었으니 가방을 바꾸자 하니 기숙사 생활을 하는데 새 가방이 무슨 필요가 있냐던 아이는 그렇게 10년 가까이 책가방을 사용했습니다. 나도 참 독한 엄마지만 내 아들도 참... 독한 녀석입니다. 아니 내 아들이지만 정말 바르고 멋진 청년으로 성장했습니다.


얼마 전 멋진 청년으로 성장한 내 아이의 십 대 마지막 생일이 있었습니다.

늘 그렇듯 무슨 날이라고 해서 특별한 이벤트가 없는 우리 집이지만 그동안 바르고 건강하게 자라 준 아들에게 십 대의 마지막 생일에는 고맙고 사랑한다는 말을 꼭 전해주고 싶었습니다.


아이 이름의 이니셜을 새겨 넣은 지갑을 준비하고 십만 원을 넣었습니다. 그리고 남편과 함께 편지를 썼습니다.

엄마 삶의 첫 번째 보물인 우리 00가 엄마에게 온 지 19년이 되었구나
안기도 조심스러웠던 네가 내년이면 스무 살이 된다는 사실이 놀랍기도 하면서 지나온 시간을 돌아보게 만드는 것 같아.

주위의 어른들과는 다른 엄마로 인해 힘들 때도 많았지?
모든 것을 내주어도 아깝지 않은 사랑스러운 아들인 00에게 엄마가 꼭 알려주고 느끼게 해주고 싶었던 건 너 '자신'으로 살아가는 시간과 방법이었단다.

좋은 성적을 받아오는 너에게 큰 칭찬이나 선물을 안겨주기보다는 실망스러운 결과를 받았을 때 기댈 수 있는 엄마가 되고 싶었고, 무슨 날을 기념하며 떠들썩하게 보내는 것보다 매일이 특별한 날인 것처럼 사랑을 주는 부모이고 싶었어. 이런 엄마의 고집스러움으로 서운하기도 했을 거야.

과거에는 해줄 수 있지만 엄마의 교육관으로 중심을 잡는다는 생각에 흔들리지 않았는데 요즘처럼 해줄 수 없는 상황에는 미안한 마음이 들 때가 있단다. 주변의 바람에 휩쓸리기보다는 너'자신'으로 멋지게 자라준 우리 아들의 십 대 마지막 생일을 멋지게 축하해 주고 싶었던 지금도 그런 순간이 아닌가 싶어.

크고 화려하지는 않지만 엄마, 아빠의 마음을 담아 작은 선물을 준비했단다. 앞으로도 함께하며 축하할 시간이 많을 테니 혹 아쉬움이 있다 해도 하나씩 쌓아 가보자. 부모라는 이름으로 자식을 키운다 생각했는데 그 시간을 보내고 나니 그 반대라는 생각도 들어. 우리 00 덕분에 엄마가 진짜 어름이 될 수 있었단다.

항상 고맙고 사랑한다.

엄마가...

세상 살아가면서...
깨끗한 흰색을 가까이하려 노력하며
자신의 삶에 티끌 쌓지 않는 자세를 유지하길 바란다.
어두운 검은색을 멀리하는 경계도 결코 가볍지 않기를 바란다.
그럼에도 잊지 않았으면 하는 것은
흰색이 절대적 옮음도 아니고
검은색이 절대적 틀림도 아님을
기억했으면 한다.
모두가 뒤섞여 살아가는 우리는
각각 자신만의 색깔을 가질 수밖에 없고.
그중 흰색과 검은색의 중간인 회색이
가장 많음을 알았으면 한다.
자신의 색깔이 분명하면서도
타인의 다름을 인정하고 수용할 줄 아는
높고 넓은 시야를 가진 아들이 되길 바란다.

아빠가...

지갑을 보더니 어떻게 자신이 원하는 스타일을 잘 알았냐며 놀랍니다.

돈을 보더니 이렇게 많은 돈을 뭐 하러 넣었냐고 합니다.

녀석...

이 지갑은 또 몇 년이나 가지고 다닐지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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