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 끊어내야 하는, 끊고 싶은 그런 줄이 있니?

17살 딸과 함께한 독서모임 4회

by 살곰살곰

중간고사 시험 준비로 바빴던 딸아이와 오랜만에 독서모임을 했습니다.

중간고사는 끝났지만 여전히 또 다른 시험과 교내 프로젝트로 쉴 틈 없는 딸아이에게 시간을 내어 책을 읽으라고 할 수는 없어 모임 하는 날 그 자리에서 편하게 읽을 수 있는 그림책으로 독서모임을 진행했습니다.



사자 독서모임 제4회

선정도서 : 몽당, 봄날의 개, 사자가 작아졌어
추 천 인 : 엄마
일 자 : 2021년 11월 6일 오후 7시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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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 우리 누리는 그림책을 읽은 게 언제가 마지막이었을까?


누리 : 초등학교 1학년? 그즈음인 것 같은데요. 아무래도 내용이 간단하니까 더 많은 이야기가 있는 동화책을 읽은 후로는 그림책은 자연스레 멀어진 것 같아요.


엄마 : 그랬구나. 엄마가 독서임 할 때 가끔 그림책이 선정도서가 되기도 하거든. 그런데 의외로 다양한 이야기가 나오더라구. 그리고 아무래도 독서모임 회원분들이 '엄마'가 많다 보니 그림책에 관심이 많아서 종종 어른이 읽어도 좋은 그림책 추천을 받기도 하는데, 요즘 바빴던 우리 딸이 편하게 나눌 수 있는 책이 뭘까 생각하던 중 추천받은 책이 생각나서 몇 권 골라와 봤어. 우리 같이 읽어볼까?


그렇게 우리는 카페에서 한 동안 말없이 그림책을 읽었고 책을 덮은 후 들린 아이의 첫마디는 의외였습니다.


누리 : 아... 책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모르겠어요.


그림이 예뻐서, 이야기가 재미있어서, 주인공이 마음에 들어서 등... 다양한 시선으로 책을 만날 수 있는데 아이는 정답을 찾고 있었습니다.


엄마 : 아니야. 책이 말하려고 하는 걸 찾지 말고 그냥 네 마음속에서 느껴지는 것을 그대로 받아들이면 되는 거야.


책 속에서 답을 찾으려 하지 말고 그냥 네 마음의 소리를 들어.


그림책이라 더 쉬울 거라 생각했던 모임이었는데 그렇기에 더 주제를 잘 찾아야 하고 정답을 말해야 한다고 생각한 것이었을까요? 이번 모임은 정말 끌어가는 역할이 중요하겠다 싶어 졌습니다.


엄마 : 3권의 책이 있는데 재미있었던 또는 가장 이야기할 것이 많은 책을 결정해보고 3위부터 한 권씩 나눠볼까?


누리 : 그러면 3위는 '몽당'이에요. 자신이 사라질 걸 알면서도 글을 쓰는 건 이해하지만 그 글이 책이 되는데 그 책에 자아가 들어가서 몽당이 된다는 건 너무 간 것 같다는 느낌이 들면서 억지스러웠어요. 왠지 희생을 강요하는 느낌도 받았어요.


엄마 : 엄마도 사실 이 책은 좀 아쉬웠어. 엄마 역시 글 쓰는 게 좋아서 몽당이의 심정은 이해가 가지만 꼭 모두가 몽당이와 같은 길을 걸어야 하나? 싶었거든.


공감으로 첫 번째 책을 가볍게 나눈 후 두 번째 책으로 넘어갔습니다.


누리 : 봄날의 개는 비슷한 이야기가 많아서 익숙했어요. 마지막에 줄을 끊고 갔다는 건지 생각하는 건지 모르겠지만 마음이 알려줘서 현실이 된 것 같다 싶기도 해요.


엄마 : 엄마가 웹디자이너 할 때 좋아했던 일러스트레이터라 고른 책인데 알아보니 드라마와 연관이 있는 책이었어. 드라마 속 주인공 스스로를 묶고 있는 보이지 않는 줄을 그려낸 것이라고 하더라. 그 줄은 누군가 대신 끊어줄 수 있는 것이 아닌 스스로 용기 내어 끊어내야 하는 그런 줄이라고 해.

혹시 우리 딸은 스스로 끊어내야 하는 또는 끊고 싶은 그런 줄이 있을까?


스스로 끊어내야 하는, 끊고 싶은 그런 줄이 있니?


누리 : 거창 한 건 아닌데 고등학교 입학 후 수행평가나 시험 전 잘할 수 있을까. 잘해야 해. 아냐한 게 없잖아... 등등의 생각으로 보내는 시간이 너무 길어요. 이런 생각 또한 시간 낭비라 안 하고 싶은데 잘 되지 않아요.


엄마 : 아... 그런 생각이 우리 누리를 힘들게 해서 끊어내고 싶다가 아니라 그 또한 시간 낭비라 안 하고 싶다는 말이 참 서글프네. 엄마가 볼 때 그 줄은 너의 마음이 만들어낸 것이 아니라 우리나라 교육시스템이 만들어낸 줄 같아.


누리 : 내가 뭘 해도 나보다 잘하거나 좋은 성적을 내는 친구들이 있어요. 중학교 때는 한 만큼 결과가 나와줬는데 지금은 아무리 노력해도 잘 되지 않아요. 내가 잘했다고 생각하는 것과 쌓아온 것들이 부정당하는 느낌도 받아요.


아이의 힘겨움에 어찌나 마음이 아프고 미안해지던지요. 해줄 수 있는 거라곤 들어주며 끄덕이는 게 다이지만 이렇게 감정을 언어화시키는 시간 또한 힘겨움을 조금이라도 덜어주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이해하고 공감한다는 신호를 보내며 아이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습니다.


작은 실수도 스스로 용납하지 못하는 아이의 힘겨움은 교내 프로젝트에서 조장으로 끌어가는 시간으로 이어졌습니다. 친구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해주지 않아 힘들다는 아이에게 힘이 되는 이야기를 해주려고 고민하던 차에 과거 아이의 경험이 떠올랐습니다.


엄마 : 우리 누리 기억하지? 학기 초에 수행평가 발표하는데 갑자기 말이 안 나와서 발표도 못 끝내고 들어왔던 시간... 엄마한테 울면서 전화했었잖아. 준비도 열심히 했는데 이야기하다 갑자기 말이 안 나오면서 머릿속이 하얗게 되었다고... 어떻게 보면 그 시간이 큰 트라우마가 될 수도 있을 텐데 지금 이렇게 프로젝트의 조장이 되어서 끌어간다는 건 그 자체로 대단한 거야.


공감과 칭찬 덕분인지 프로젝트 준비과정에서의 여러 가지 일을 한 참을 들려주던 딸아이의 목소리가 밝아지는 걸 느꼈습니다.


엄마 : 우리 딸 잘하고 있어! 엄마가 잘하고 있다는 건 1등이야, 최고야!라는 말이 아니야.

힘든데도 포기하지 않고 나아가고 있다는 것 자체가 멋진 거야. 엄마가 볼 때 넌 잘난 척해도 돼!!

더 잘하고 싶은 마음은 알겠지만 보이지 않는 그 줄을 스스로를 아프게 할 때까지 당기지는 말자.

엄마가 늘 지금처럼 그 중간에서 이렇게 딱!!! 버티고 있을게. 알았지?

우리 딸. 조별 프로젝트한다고 해서 남자 친구들 사이에서 조장 역할까지 하느라 대단하다고만 생각했는데 힘들었구나...


누리 : 아니에요. 친구들이 다 착하고 잘 도와줘요.


자신을 둘러싼 '힘겨움'이 중심이던 이야기가 함께 하는 이들에 대한 긍정적 평가로 이어지는 걸 보고 마음이 조금은 편안해졌구나 싶어 졌습니다.


엄마 : 그럼 우리 이제 1위로 남겨놓은 '사자가 작아졌어' 이야기해 볼까?


누리 : 이 이야기 너무 슬펐어요. 사자는 원한이 있어서가 아닌 자기의 생존을 위해서 가젤을 죽인 거잖아요. 우리가 매끼 밥을 먹듯 자연스러운 행위였고요. 우리가 쌀을 먹는다고 해서 모종이 와서 우리를 죽이려고 하지는 않잖아요. 어쩔 수 없는 건데 사자에게 심리적 죄책감을 심어준 가젤을 보고 화가 났어요.


엄마 : 그래도 가젤이 사자를 죽일 수 있었음에도 그러지 않았잖아.


누리 : 아니죠. 죽이지만 않았지 사자에게 죄책감을 심어주고 극단까지 몰아붙였죠. 가젤 같은 동물을 먹어야 살 수 있는 사자는 그 트라우마로 인해 다른 동물을 먹을 수 없을 거예요. 사자에게도 가젤 같은 자식이 있을 수 있고 동료가 있을 수 있는데 이제 이 사자는 어떻게 살아가야 해요? 전 마지막 모습 또한 사자에게 트라우마를 심어주고 도망가는 가젤로 보여서 슬펐어요.


전혀 생각지 못했던 방향의 아이 생각에 깜짝 놀랐습니다.


누리 : 인간의 관점이 아닌 동물의 시선으로 봐야 한다고 생각해요. 좀 격하게 말하면 자연스러운 것 가지고 트집을 잡아 가스라이팅을 하다 결국 트라우마를 심어주고 도망가는 가젤인 거죠.


엄마 : 엄마는 작아졌다 커졌으니 모두가 행복해졌다고 생각했고, 동물의 쫓고 쫓기는 모습에 이런 이야기를 상상해냈구나 하는 감탄만 했었는데, 우리 딸 이야기를 듣고 보니 내 생각이 짧았구나 싶은걸.


이때다 싶어 아이가 들려주었던 힘겨움에 접목시킬 만한 칭찬을 던져봅니다.


엄마 : 우리 딸은 정말 다양한 부분으로까지 생각을 하는구나. 전혀 생각지도 못한 부분에 대해서도 고민해보고 그 입장에서 바라보는 시선, 그게 바로 리더십이라고 생각해!


다른 이들은 생각하지 못하는 부분까지 들여다볼 줄 아는 시선,
그게 바로 리더십이야!


그때 마침 아이의 핸드폰이 울리기 시작했습니다.


누리 : 프로젝트 작품에 디자인할 부분이 있는데 그림은 못 그려도 상관없으니 생각하는 바를 대충이라도 그려서 보내라고 공지를 했는데 하나씩 올라오네요.


엄마 : 오호! 아이들을 움직이게 하는 그 능력~! 역시!!!


아이의 힘겨움을 들어주는 일에서 보여지는 결과를 떠나 그 시간을 나아가고 있다는 것 자체가 멋지다는 인정과 격려가 함께 했던 그림책과 함께 한 독서모임, 내 아이에게 따뜻한 토닥임이 되어주었길 바라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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