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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살곰살곰 Oct 20. 2022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한마디

폐기물 정리

셀프리모델링 중 남편이 가장 신경 쓰고 있는 것은 난방이다. 추위를 힘들어하는 아내 걱정에 바닥 보일러 배관을 새로 놓기 위해서 바닥 철거를 시작했다. 기존에 2번의 배관작업이 2층으로 쌓여 있어서 철거하지 않고  또다시 그 위에 보일러 배관을 놓기에는 무리가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상) 1층 장판 제거 중 (하) 마당에 쌓인 장판

바닥 철거 전 장판을 걷고 보니 그 아래에 또 깔려 있는 장판, 이 집은 천장도 2중 장판도 2중이다. 바닥 철거는 2층부터 시작하기로 했다. 장판을 걷어낸 후 바닥을 조심스레 깨보니 보일러 배관이 드러났다. 파괴함마로 바닥을 부순 후 배관을 걷어낸다. 보일러 방통 미장은 두껍지 않으므로 처음에만 포인트치즐(노미)로 깨고, 이어서 플랫치즐(다가네)로 부수면 쉽게 부서진다. 

살구색 배관이 나중에 설치된 보일러 배관이고, 남편이 잡고 있는 노란색 배관은 온수배관으로 화장실로 향하고 있다고 알려준다. 아무리 들어도 뭐가 뭔지 이렇게 마구 잘라도 되는 건지 의문이 들지만, 남편은 과감히 배관을 잘라 1층 화장실의 임시 수도 배관으로 연결했다. 작업할 때마다 설명 해주곤 하지만 들어도 모르겠던 시간을 지나 지금은 직접 할 줄은 몰라도 대충은 안다.


위에 설치된 보일러 배관을 걷어낸 다음 깨진 시멘트를 모두 포대에 담아 밖으로 빼낸 후 또다시 바닥을 부수기 시작했다. 그런데 바닥을 깨면서 보일러 배관이 나와야 하는데 나오지 않는다며 이상해 하던 남편이 나중에 한숨을 내쉰다. 

2층 작은 방 보일러 배관

"어떻게 보일러 배관을 이렇게 설치할 수 있지?"


남편은 쓴웃음을 지으며 조심스레 모양을 유지해 배관을 올려놓고 나를 불렀다. 배관의 간격도 위 사진처럼 들쭉날쭉 일정하지 않고(들어 올리면서 틀어진 게 아님), 설치하다가 배관이 부족해서 인지 사진 위쪽에는 전혀 배관이 놓이지 않았다. 잘 모르는 내가 봐도 부실시공으로 보이니 꼼꼼한 남편이 보기에는 얼마나 답답해 보였을까.  

   

남편이 바닥을 부수고 있는 동안 나는 벽지를 제거하기로 했다. 

(상) 2층 안방 벽지 제거 전 (하) 2층 안방 벽지 제거 후

스크래퍼를 이용해 1차로 벽지를 제거했다. 남아 있는 작은 벽지들은 압축 분무기로 물을 뿌려서 제거할 예정이다. 작은 벽지들을 뜯어내 보려고 안간힘을 쓰는 나에게 남편은 물을 뿌려서 제거하면 쉽게 제거된다고 그냥 놔두라고 알려왔다. 역시 사람은 알아야 몸이 덜 힘들다.  

2층 작은 방바닥 철거가 끝난 후 거실 바닥 철거를 시작했다. 2층 거실은 보일러 배관이 설치되어있지 않아 사진에 보이는 깨진 시멘트만 철거하면 되어서 그저 감사할 따름이었다. 그런데 보일러가 설치되지 않았다면 이곳에 살던 이들은 겨울을 어찌 보냈을까?

     

2중 바닥 철거도 힘들지만, 부순 폐콘크리트를 마대자루에 담아 옮기는 일도 만만치 않았다. 우선 부쉈던 2층 작은 방과 거실 폐콘트리트의 마대자루에 담아 차곡차곡 한쪽에 쌓아놓아야 했다. 먼저 부수었던 바닥의 폐콘크리트를 마대자루에 담아 밖으로 모두 옮긴 후 2차로 부순 폐콘크리트를 옮겨 담아야 하니 작업이 더디고 힘들다. 해도 해도 끝이 없는 바닥 철거였지만 '사랑'과 '함께'의 힘으로 버티다 보니 드디어 2층은 안방 바닥 철거만 남았다.          


힘을 내 1차 벽지를 제거한 2층 안방 바닥 철거를 시작했다. 2층 안방 바닥 1차 제거 후 드러난 배관은 나중에 시공한 배관이라 그래도 꼼꼼하게 작업해놓은 것 같다고 남편이 알려주었다. 

위의 사진이 나중에 설치된 보일러 배관으로 구석까지 빈틈없이 일정한 간격으로 잘 설치되어 있었다. 이제 저 배관을 걷어내고 다시 한번 폐콘크리트를 치운 후 2차로 부숴야 한다. 모든 것이 2중인 우리 집 철거의 길은 끝이 없음에 힘겨워질 무렵 남편의 재치 있는 상황 표현에 미소를 짓기도 했다.

     

"아무래도 건축 당시에 보일러 설치팀이 건축주랑 싸웠나 봐요. 그렇지 않고서야 보일러를 이렇게 설치할 수 있을까요?"     


앞서 작은 방처럼 안방도 보일러 배관을 1/3은 안 하고 만 이상한 보일러 시공이다. 겨울에 보일러를 틀어도 전혀 따뜻하지 않았을 저 왼쪽 부분에 남편의 유머가 더해지니 당황스러움이 웃음이 되었다. 이제 부숴놓은 콘크리트를 정리할 차례이다. 사실 깨부수는 것보다 마대자루에 넣어서 옮기는 게 더 힘들지만, 정리만 하면 된다고 자기 최면을 걸어본다.

      

주로 남편이 삽을 이용해 폐콘크리트를 담고 내가 마대자루를 잡아주곤 했지만, 남편이 거실 바닥을 정리하는 동안 나도 한번 삽을 들어보았다.    

태어나서 처음 해보는 삽질

집 공사에서 할 수 있는 일이 많지 않기에 할 수 있는 일이 생기면 힘들다기보다는 내가 도움 줄 수 있는 작업이 생겼다는 것에 반가웠다. 기술이 없어서, 지식이 없어서, 공구 사용법을 몰라서, 위험해서, 힘이 부족해서, 이런저런 이유로 많이 도와줄 수 없는 나인데도 부인 고생만 시킨다며 남편은 늘 미안해하고 안쓰러워했다.  

철거 못지않게 힘들었던 폐기물과의 전쟁, 치우면 채워지고 치우면 다시 채워진다. 정말이지 철거는 부수는 것보다 정리하는 것이 3배는 더 힘들다. 전화만 하면 마당에 종류별로 분류해놓은 폐자재를 가져갈 거라는 생각과는 달리 직접 철거까지 해야 수익이 많이 남아서 인지 폐자재 처리만을 하겠다는 업체를 찾기란 쉽지 않았다. 대부분의 업체가 2.5톤 암롤박스를 가져다 놓을 테니 직접 실어야 한다는 이야기만을 해왔고, 폐자재를 옮기는 일까지 가능하다는 업체의 견적은 170만 원이었다. 결국 우리는 2.5톤 암롤박스에 직접 싣기로 했다. 

암롤박스를 운반하시는 기사님께서 담아놓은 폐자재를 볼 때마다 인사처럼 건네 오는 말이 있었다.  

   

"예쁘게도 쌓았네요."    

 

차곡차곡 쌓지 않으면 많이 실을 수 없기에 어쩔 수 없는 선택이기도 했지만, 남편의 작업 스타일이기도 했다. 우리 부부가 직접 옮기는 과정을 거치니 170만 원의 견적이 42만 원으로 줄었다.  

    

암롤박스에 폐콘크리트가 채워질 무렵 할머님 한 분이 오셔서 버릴 물건이 없냐고 물어오셨다. 철거를 하며 철과 알루미늄 등은 차후에 고물상에 팔기 위해 하나하나 분리해서 모으고 있는 우리였기에 없다는 말이 나올 줄 알았는데 남편은 고민도 하지 않고 가져가시라는 이야기를 했다. 

     

그 모습도 놀라웠지만, 나중에 리어카를 가져와 실으시려는 할아버지에게 위험하다고 말리며 직접 하나하나 옮기는 남편의 모습에 하루의 피곤함이 사라지는 듯했다. 작업이 마무리될 즈음 할아버지가 주머니에서 만 원짜리 한 장을 꺼내셨다. 미안하고 고맙다며 돈을 건네시는 할아버지와 놀라며 그러시지 말라고 오히려 마당이 치워져 얼마나 고마운지 모른다고 이야기하던 남편, 장점이 많은 사람이지만 그중 사랑을 넘어 존경을 불러일으키는 남편의 모습이다.      

    



마당에 있는 폐기물을 정리해서 담고 있는 모습을 보는 사람들의 반응이 다양했다.

이 집에 살 사람이 아닌 일하는 사람이라고 생각되었던지 공사기간이나 견적을 물어오는 이부터 아무 말도 없이 집안으로 들어가는 사람도 있었다. 하루는 동네에서 리모델링을 시작한 집에서 철거를 하고 있던 아저씨가 와서는 직접 하고 있다는 이야기에 미소 지으시며 한 마디 하셨다.   

   

"이런 일이 다 인건비니 직접 할 수 있으면 좋죠. 그런데 정말 부럽네요. 우리 마누라 같으면 절대 못할걸요."     

암롤박스 기사님에게는 직접 하고 있는 우리의 모습보다는 담겨진 폐기물이 먼저 보였기에 "예쁘게도 쌓았네요"라고 하셨을 것이다.     


이렇듯 우리는 자신의 사고의 틀 안에서 상황을 해석하고 평가한다. 아무 말 없이 집에 들어와서 여기저기 둘러보고 담배꽁초를 버리고 간 이웃의 모습에 눈살이 찌푸려질 때도 있었지만 나 역시 내가 보고 싶은 데로 보고 생각하기로 했다. 그러자 암롤박스기사님의 "예쁘게도 쌓았네요"라는 말이 "예쁘게도 사시네요"로 들리기 시작했다.  

   

정말이지 철거는 부수는 것보다 정리하는 것이 3배는 더 힘들다. 손바닥에 굳은살이 생기기 시작했고, 주먹이 잘 쥐어지지 않던 시간, 뜨거운 날씨에 줄줄줄 흐르는 땀이 더욱 힘겹게 느껴졌지만 서로에게 자주 하는 말이 있었다. 

    

"당신 오늘 정말 수고했어요"   

  

어쩌면 우리가 잊고 지내는 아름다운 말 중 하나가 아닐까? 바쁘고 힘겨운 삶 속 '나'를 찾고 위로해주라는 이야기들이 넘쳐나는 세상이다. 가장 아끼고 사랑해야 할 이에게는 소홀하면서 다른 이들에게 에너지를 쏟고 자신을 포장하며 살아간다. 난 가정이 먼저라고 생각한다. 또한 그 가정의 중심은 아이들이 아닌 부부라고 믿기에 가장 소중한 남편에게 아름다운 말을 아끼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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