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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살곰살곰 Oct 19. 2022

폐기물 아래에서 피어난 꽃

철거

2018년 6월 11일 월요일, 셀프 집수리 셋째 주가 시작되었다. 도착하자마자 마당에 폐기물 각목을 박고 있는 남편을 보고 폐자재 정리를 위한 설치려니 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화단에 있던 호박을 둘러싸는 형태로 완성되어가던 설치물의 정체는 호박 보호대였다.

 

화단에 무성했던 잡초를 제거하면서 남겨둔 호박에 어느새 꽃이 피기 시작했는데 폐기물을 정리하면서 손상된 호박꽃이 안쓰러워 보여 보호대를 설치한다는 남편을 보고 있자니 미소가 지어졌다. 

남편의 관심으로 인해 이제 다치지 않고 자랄 수 있게 된 호박꽃을 뒤로하고 본격적으로 우리 집을 손 볼 차례이다. 천장과 벽 철거가 어느 정도 마무리되었으니 이제는 다락을 철거하기로 했다.

2층의 작은 방과 마주하고 있는 입식부엌과 다락은 아이들 방으로 사용할 예정이기에 필요 없는 부엌과 다락을 철거한 후 방을 확장하기로 결정했다. 벽에 고정되어있는 나무나 석고보드가 아닌 벽을 철거한다는 말에 위험한 건 아닌지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인지 걱정부터 앞섰다.

벽지를 제거하고 벽의 연결 구조를 확인한 남편이 천장과 완전하게 맞닿아 있지 않은 것으로 보아 내력벽이 아니라고 하여 구조 보강 없이 다락과 벽을 철거하기로 했다. 지금이야 문제가 없었던 작업이라는 것을 알지만 그때는 혹 집이 무너지는 건 아닌지 무섭기까지 했다. 작은 방에 연결되어 있는 부엌으로 들어가 계단 뒷면의 합판을 제거하면서 다락의 뼈대가 하나씩 드러나기 시작했다.

철거를 위해 구매한 소형 파괴함마를 이용해 다락 바닥을 뚫기 시작하니 엄청난 소음과 분진에 자연스레 뒤로 물러나게 된다. 저 작은 구멍을 보기까지 많은 시간과 남편의 땀이 필요했다. 40년 동안 똘똘 뭉친 시멘트의 강도는 너무나 막강했고, 잘 뚫어지지 않아 손에 힘을 주어 밀어대다 보니 남편의 손에는 물집이 잡혔다.    

집에 보관하기에 적당한 크기로 선택하여 구입한 38함마였지만, 생각보다 더딘 작업 속도에 공구 업체에서 65함마를 대여했다. 확실히 38함마와 파워 차이가 난다며 이전보다 빠르게 콘크리트 바닥을 부수던 남편과 다락 바닥 뚫다가 같이 떨어지는 건 아닌지 이런저런 걱정을 만들어서 하던 내 앞에 2층 다락 바닥의 철근이 드디어 모습을 드러냈다. 다 끝났다고 생각하고 한 숨을 돌리려는 순간 1층 다락도 깨야 한다며 쉬지도 않고 내려가던 남편에게 힘드니 쉬었다 하자는 말을 차마 꺼낼 수 없었다. 1층 서재로 쓰일 방으로 공구를 옮기고 다락으로 올라갔다.    

(좌) 1층 다락 (우) 1층 다락의 천장

1층 상하방 다락은 천장 상태가 심각한 걸로 봐서 바로 위 2층 화장실 누수가 있었던 것 같다는 남편은 누수도 누수지만, 오래된 주택이기에 수도관도 다 다시 놓고 2층 화장실 타일을 뜯어낸 후 방수를 할 예정이기에 또 누수가 될 일은 없을 거라고 안심을 시켜주었다. (이때까지만 해도 수도관 작업, 타일, 방수 이 모든 작업을 남편이 직접 할 줄은 몰랐다) 

    

누수 덕분(?)인지 아니면 2층의 작업을 하고 난 후 해서인지 1층보다는 조금 더 수월하게 철거되었지만 남편 혼자서 하는 작업이다 보니 1,2층 다락 바닥 철거만 해서 이틀이 걸렸다. 그리고 남편은 첫날 귀마개를 하지 않고 작업하다 한쪽 귀에 염증이 생겨 치료를 위해 병원에 다녀야 했다. 혹 가까이 있다가 다칠까 싶어 근처에도 못 오게 하더니 정작 자신의 안전에는 소홀했던 남편에게 잔소리를 한 바가지는 한 것 같다. 사실 그 잔소리는 챙겨주지 못한 나를 향한 분노와 남편에 대한 미안함이기도 했다.     

(좌) 1층 상하방 다락방 철거 전 (우) 철거 후

다락 철거 소식에 궁금하다며 집에 왔던 아이가 엽기 표정과 함께 포즈를 취해주었다. 아이의 포즈 후 남아있는 다락 계단마저 철거가 되었다.   

  

다락 바닥을 철거했으니 이제 벽을 철거할 차례이다. 벽은 다락방 바닥보다는 그나마 쉽게 철거되는 듯했지만, 부수는 것이 전부가 아니었다.     

(상) 철거하는 남편 (하) 잔해를 주워 담는 화려한 패션의 나

남편이 철거를 하면 나는 철거한 잔해를 담으며 우리는 그렇게 한 동안 교대로 말없이 작업을 이어나갔다. 작은 벽돌조각을 쓸어 담기 전 큰 벽돌을 먼저 마대자루에 손으로 담아서 옮기고 있으니 무거우니 자신이 하겠다며 남편이 말려왔다. 내가 도울 수 있는 일이 많지 않기에 괜찮다고 남편을 쉬게 하고 온 힘을 다해서 안 힘든 척 옮기다 결국 허리를 삐끗하기도 했지만 남편에게 말할 수 없었다. 아프다고 하면 그만하라고 할게 분명하기에 통증을 참아가며 옮기다 보니 조금씩 바닥이 보이기 시작했다.  

    

치워도 치워도 끝이 없는 시간에서 나를 구해준 건 마대자루였다. 벽돌 잔해를 마대자루에 담아서 밖으로 옮기다 보니 구입해놨던 100장의 마대자루가 바닥났다. 작업 중 필요 물품이 없어 반갑기는 또 처음이었다. 작업이 끝난 후 집에 돌아와 주말을 파스 향기와 함께 보내던 나를 보며 남편이 말했다. 

    

"무거운 물건을 들어 올릴 때는 허리를 구부리는 게 아닌 무릎을 구부려 허리를 세운 채 일어서며 힘을 줘야 해요."     


힘으로만 하려 했던 나는 그렇게 또 부끄러워졌다. 허리 통증이 사라지지 않았고 일요일이라 마대자루를 구입할 수 없어 작업은 할 수 없었지만 우리는 자연스레 공사 중인 집으로 향했다. 우리의 손에는 치킨과 맥주가 들려있었다.         

철거 전 사이즈를 측정하여 평면도를 만들었던 남편이 철거 후 정확한 치수를 재어봐야 한다며 다시 측정하는 동안 준비해 온 치맥을 꺼내놨다. 공사 중 쉴 때를 대비해 펼쳐놓은 돗자리에 그렇게 자리를 잡고 있자니 소풍 온듯한 기분이 들기도 했다.   

  

"이번에 이사할 집은 많은 추억이 쌓이네요"              

(상) 2층 폐기물 (다락과 벽 철거 후 쌓인 폐기물) (하) 1층 마당의 폐기물

 바쁜 한 주와 소풍 같은 주말을 보낸 후 맞이하는 월요일, 공구점에 들러 마대자루를 산 후 폐기물 정리부터 시작했다. 다락과 벽 하나 제거했을 뿐인데 어마어마한 양의 폐기물이 나왔다. 다락 철거하면서 나온 철근이 길어 보행 시 위험하다며 구부려서 한쪽에 쌓아두고 청소까지 하는 남편과 호박꽃을 위해 설치한 폐기물 각목이 함께 찍힌 사진 한 장은 내가 사랑하는 이가 어떤 사람인지를 다시 한번 알려주는 듯하다.    

날씨예보에 없는 비가 갑자기 내리기 시작하고, 아파트에 살 때는 느끼지 못했던 마당에서 피어오르는 흙냄새 섞인 비 냄새가 정겹게 코끝을 간지럽혔다. 마당의 호박은 좋겠다며 바라보는데 얼마 전까지만 해도 보이지 않던 호박이 고개를 내밀며 인사를 해왔다. 갑자기 내린 비에 마당에 쌓아놓은 폐자재를 덮느라 바쁘게 움직여야 했지만 누군가에게는 꼭 필요한 소중한 손님임을 알리는 듯한 모습에 입꼬리가 올라갔다.     




우리에게 시급 한 건 공사이기에 호박꽃을 뽑는 게 현명한 해결방법이었을지도 모른다. 남편이 설치한 보호대로 인해 폐기물을 쌓아놓거나 정리할 때 돌아서 가야 하는 번거로움이 생겼지만 이상하게 불편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오히려 작은 생명에게도 마음을 주는 남편의 따뜻함이 크게 다가왔다.  

   

육체적으로 힘든 시간인 건 분명한데, 마음은 행복으로 가득 차오르던 시간...

내일의 행복을 위해 오늘의 행복을 미루는 선택이 아닌 타인의 시선이나 사회적 기준에 맞추지 않는 우리의 선택 속에서 걸어가는 길이기에 몸은 힘들지만 마음은 그 어느 때보다 더 행복했다. 그동안 잊고 있었던 '나 다움'과 '자연스러움'을 되찾아 가고 있는 나를 느꼈다.  

    

우리는 효율성을 내세우며 더 빠르게, 다른 이보다 먼저 목표에 도달해야 성공이라고 부르는 사회에 살고 있다. 어쩌면 지금 우리가 만들어가고 있는 공간은 그런 사회와 정 반대의 모습인지도 모르겠다. 이런 우리를 답답하고 안타깝게 보는 이들도 있다. 가까운 지인과 부모님들의 반응 또한 크게 다르지 않았다. 느린 듯 하지만 우리의 속도로 다른 방향으로 가는 것 같지만 우리만의 꿈으로 향하고 있음을 전하기는 어렵겠지만 우리 부부의 달라진 모습을 그들 또한 느낄 거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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