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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살곰살곰 Oct 19. 2022

남편의 꿈을 실현시키는 시간

철거

2018년 5월 30일, 업체에 맡기려던 철거를 직접 시작한 남편을 보면서 그리 어려운 작업은 아닌가 보다 했다. 합판으로 마감되어 있던 1,2층 거실 벽, 요즘처럼 타카로 고정하지 않고 못으로 하나하나 못질을 한 오래된 집이라 데코 빠루(인테리어 빠루)라는 장비로 쉽게 분리가 되는 거라고 남편이 알려왔다.          

남편의 손길 한 번에 벽돌벽이 드러나는 모습을 보며 직접 하겠다는 남편의 말에 수긍이 갔다. 하지만 이런 나의 생각은 천장을 뜯으며 산산이 무너졌다.    

하나의 천장을 힘겹게 뜯어내면 또 나오는 오래된 천장은 누수로 인해 보기에도 심란한 상태였다. 뜯어내고 공사를 했어야 하는데 그대로 두고 천장을 덧댄 것이다.   

부엌 앞 새시를 없애고 부엌과 옆 방 사이의 벽까지 철거한 후 넓어진 부엌에 철거의 고단함을 잠시 잊기도 했다. 역시나 거실 천장도 우리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2중으로 되어 있어 일이 두배가 되면서 작업량이 늘어났다.    

철거하는 모습을 보니 집을 예쁘게 꾸며달라고 했던 이야기는 더 이상 할 수 없을 것 같았다. 뜯어 낼수록 생각보다 작업이 많아지는 집 상태와 혼자서 고생하는 남편을 보니 정말 셀프로 할 수 있는 건가 하는 생각에 걱정과 미안한 마음이 앞섰다.   

   

천장도 천장이지만, 벽에 붙어있던 석고보드를 떼어내는 것도 보통 일이 아니다. 남편은 왜 이곳에 석고보드를 붙였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했다. 벽면이 바르게 미장되어서 벽지 작업을 하는데 아무 문제가 없는데 석고보드 한 장을 붙인 것이 아무래도 단열을 위한 것이라고 광고하며 작업한 것 같은데, 석고보드는 단열재가 아니라 마감재이므로 단열효과를 기대할 수 없다는 말을 덧붙였다. 

     

역시나 석고보드를 떼어내고 나니 습기를 가득 안은 곰팡이 천국이 드러났다. 차후에 약품을 이용해 곰팡이를 완전히 없애기로 하고 서재로 쓰일 방으로 넘어갔다.    

작업하는 남편을 집어삼킬 듯이 쏟아지는 천장에 놀란 나와는 달리 미동도 없이 작업을 이어가는 남편에게 힘들지 않냐고 물었다.

      

"우리가 살 집인데 힘들긴요. 난 즐거워요"    

1층 철거가 마무리된 후 올라간 2층 천장에는 스티로폼이 올려져 있었다. 어설픈 지식으로 단열처리가 되었나 보다고 말하니 남편은 이건 단열이 아니라 폐기물 처리 수준이라며 한숨을 내뱉었다.

      

"단열재라고 하기에도 민망한 스티로폼을 그저 얹어놓기만 한 거예요. 이러면서 단열공사비용 청구해서 받았겠지요. 휴... 이런 일부 비양심적인 시공업자 때문에 다른 선량한 시공업자들까지 욕먹는 거지요"    

2층과 계단까지 철거하고 난 후 2층 베란다에 쌓여있는 폐자재를 보며 생각했다.   

  

'아.이래서 천장을 철거하지 않고 덧방으로 작업을 했구나. 새로 작업하는 것보다 철거가 더 어려운 작업이구나'      


우리를 힘들게 했던 덧방 작업이 이해되려는 순간 나를 일깨워주던 남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마당이 넓으니 이렇게 폐자재를 쌓아놓을 수도 있고 정말 다행이죠?"     


똑같은 상황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다름 속에서 배운다.

폐자재는 종류별로 분리해야 한다. 비용의 문제도 있지만 이렇게 분리를 하면 재활용을 할 수 있기에 꼭 필요한 과정이다. 2층의 폐자재를 1층 마당으로 옮긴 후 종류별로 차곡차곡 쌓기 시작했다. 언제 하나 싶었는데 남편과 함께 하다 보니 어느새 깔끔해진 마당에 힘겨움을 잊었다.

깔끔해진 마당을 뒤로하고 1층 현관 중문 철거에 들어갔다. 남편이 어떤 작업을 하겠다고 말할 때마다 드는 생각이 있다.   

   

'어떻게 이걸 하겠다는 거지?'     


남편은 늘 '어떻게'를 '멋지게'로 바꾸는 힘이 있다.     


중문이 없어지니 더욱 시원스러워진 거실, 현재의 현관 들어오는 입구까지 거실을 확장하고 새로운 현관은 밖으로 설치하여 거실을 사각형의 형태로 넓게 쓰겠다는 남편의 설명이 이어진다. 늘 자상하게 설명을 해주는 남편에게 알아들었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지만 사실 50%는 이해를 못 한다. 아마 여전히 '어떻게'와 '이게 가능해?'라는 생각에 사로잡혀있어서 일 것이다. 

    

월요일에는 학교에서 다쳤다는 큰 아이의 연락에 작업을 일찍 마무리해야 했고, 화요일에는 친정 부모님 일을 봐드리느라 작업을 많이 하지 못했다. 예기치 못한 상황으로 길어지는 작업 기간 그리고 남편 혼자서 해야 하는 힘겨운 작업에 돈도 돈이지만 전문업자에게 맡겨야 하지 않겠냐는 말을 조심스레 건네보았다.

      

"이런 기회 아니면 언제 이런 작업을 직접 해보겠어요. 주택은 아파트와는 달라서 전기 배선, 수도 배관 등 살면서 손볼 곳들이 생길 텐데 내가 직접 해놔야 차후에 수리가 수월해요. 일을 잘하고 못하고를 떠나서 내 작업 스타일이 있는데, 업체에서 작업하는 스타일이 내 생각과 다르면 그것도 난 불편할 것 같아요"

     

이제 작업이 너무 오래 걸린다거나 맡기자는 이야기는 안 해야겠다. 도울 수 있는 일은 도우며 따뜻한 말 한마디로 힘을 줘야겠다. 이게 우리 부부가 사는 법이고 사랑하는 방식임을 잊지 말자.     

     



덧대어진 천장을 철거하며 생각했다. 비단 집뿐만 아닌 살면서 우리가 이처럼 덮고 지내는 것들이 얼마나 많을까. 힘들고 바쁘다는 이유로 대충 덮고 지내는 우리의 상처, 지나온 시간도 언젠가는 이처럼 다 뜯어내고 민낯을 마주해야만 온전하게 다시 시작할 수 있다.      


철거 과정 속 처음 만나는 당황스러운 상황에 아무래도 업체에 맡기는 게 좋았겠다 싶어지는 나와는 달리 남편은 이러니 공사를 맡길 수 없는 거라고 직접 해야 마음이 편하다고 했다. 이렇게 다른 우리가 집을 짓는 것과 같은 리모델링의 시간 속에서 한 번도 다투지 않았다는 건 그만큼 서로를 이해하는 마음과 사랑이 컸음을 의미할 것이다.  

    

어쩌면 나는 살아오면서 힘든 순간마다 한 걸음 물러설 때가 많았는지도 모르겠다. 익숙지 않거나 힘들 것 같다는 생각에 미루거나 타인의 손에 맡기는 게 편했다. 이런 나와는 달리 그러니 더 직접 해야 마음이 편하다는 남편의 말에 내 삶의 태도를 돌아본다. 

     

남편의 어릴 적 꿈은 누구나 한 번쯤 꿈꾸는 그럴싸한 직업이 아닌 행복한 가정을 이루는 것이었다고 한다. 처음에는 무슨 그런 소박한 꿈이 있었나 싶었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남편의 꿈이 어떤 꿈보다도 더 어려운 꿈임을...꿈을 이루기 위해 노력과 실천을 이어가는 남편을 존경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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