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작은책'에 실린
4교시 종이 울렸다. 일주일에 한 번 있는 3학년 1반의 자율 수업 시간. 교실에 들어서서 “얘들아 안녕!” 하고 편하게 인사를 했다. 활기찬 목소리로 아이들이 답해주었다. “선생님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쌤 배고파요!” 남자아이들이라서 그런가, 나만 보면 배고프다고 한다. 떠드는 아이들의 목소리를 낚아채어 말했다. “어, 선생님도 배고파. 이번 시간은 자율시간이니까 우리 또 재미있는 걸 해보자.”
아이들의 표정에 호기심이 넘쳤다. “책상을 모두 뒤로 밀고, 빗자루를 좀 가져와볼까? 바닥에 주저앉아도 될 만큼 얼른 정리하고 자유롭게 바닥에 앉아보자.”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하나 둘 씩 일어나 책상을 뒤로 밀었다. 평소 리더십이 있고 활발한 몇몇 학생들이 얼른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자자, 뒤로 밀자!” “빗자루 밖에 있어요!” 나는 빗자루를 받아들고 아이들이 앉을 수 있도록 같이 정리해주었다. 교사도 학생들도 실내화를 신기 때문에 그리 긴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자, 여러분. 평소 우리는 아주 특별한 환경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다는 것을 알았으면 좋겠어. 학교라는 공간은, 참 특이한 공간이잖아. 수업 중에는 친구의 뒷모습과 옆모습, 칠판만 보면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게 되지. 하지만 우리는 오늘 아주 다양한 장소에서 스피치를 해보자. 창가에 기대서서 말해도 좋고 아무데나 앉아서 발을 뻗고 편하게 말해도 좋아. 뒤에 잔뜩 쌓여 있는 의자에 서서 말해도 좋아. 또는 평소에는 금지되어 있겠지만 누워서 수업을 들어보는 것은 어때?” 나는 창가에 서서, 바닥에 편하게 앉아 다리를 뻗으면서 아이들의 시선을 이리저리 옮겨 주었다. 아이들도 이리저리 이동하고 누워도 보면서 교실의 분위기를 새롭게 발견하고 또 만들어냈다. 자유로운 분위기가 충분히 교실에 물들었다.
이제 본론으로 들어가야겠다. 아이들의 한 가운데에서 박수를 치고 손으로 호루라기를 불어 아이들의 시선을 모았다. “자, 지금부터 우리는 지금까지 만난 ‘선생님’에 대하여 이야기 해 볼 거야. 여러분은 중학교 3학년이니까, 벌써 9년 동안 학교를 다녔지. 지금까지 정말 많은 선생님들을 만났을 거야. 여러분이 기억나는 선생님과 선생님께 들었던 말씀에 대하여 한 명씩 짧게 이야기해서 공유하도록 하자.” 내가 우선 한 사람을 선택하면, 그 사람이 다음 사람을 지목하는 식으로 해서 모든 학생에게 순서가 돌아가도록 했다. 나는 눈을 감고 천천히 아이들 사이를 지나 다녔다. 아이들은 오오, 하는 소리를 내면서 자기가 처음으로 걸릴까봐 몸을 바싹 웅크렸다. 바닥에 앉으면서, 한 명의 등을 와락 껴안았다.
작고 마른 체형의, 늘 웃는 인상의 진수였다. 진수는 칠판 앞 교단으로 저벅저벅 올라갔다. 처음에는 난처한 표정이었던 진수의 표정에 곧 어떠한 각오가 선명해졌다. “저는, 중학교 1학년 때의 음악 선생님에 대하여 말하고 싶습니다.” 긴장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저는 그 선생님에 대해서는 맞은 기억밖에 없습니다. 단소와 소금이 무기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처음 알았어요.” 아이들이 환호성을 보냈다. 나는 진수에게 질문했다. “왜 맞았는데?” 진수가 아닌 형석이가 대답했다. “이유 없이 맞아요.” 이에 진수는, “떠들었다고 맞았어요.” 라고 했다. “억울하다는 거지?” 라고 물었더니, “맞을 만... 했나 봐요.” 라고 끝을 흐려 대답했다. 진수는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나서 얼마 안 있어 음악선생님이 이 학교를 떠나셔서 더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그 선생님에 대한 다른 기억을 더 물었으나 맞은 기억 말고는 정말 할 말이 없다고 했다. 진수는 다음 사람으로 동환이를 지목했다.
동환이는 복도 쪽 벽에 기대고 서서 분위기를 잡고 말했다. “내 차례군!” 바짝 기합을 주더니 친구들을 바라보았다. 아이들은 새어나오는 웃음을 누르며 조용히 귀를 기울여주었다. “나는! 작년에 아주 일이 많았어.” “푸하하하!” 아이들에게서 웃음이 터져 나왔다. “작년에 말이야, 창문도 깨고 말이야, 경찰서도 갔다 오고 말이야.” 아이들은 어떤 일들이었는지 대충 알고 있는 모양이었다.
“작년에 말이야, 담임선생님이 말이야, 나한테 대안학교 가라고 하고, 나는 우리 학교에는 이제 다닐 수 없을 거라고 말이야, 그랬단말야.” 동환이는 자기를 전학시키려고, 학교를 떠나게 하려 했던 그 선생님에게 서운한 감정을 많이 가지고 있었다. 이야기가 지속되자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진지한 표정들로 바뀌었다. 나는 분위기를 유쾌하게 다시 돌리고 싶어서 말했다. “대안학교 중에 아주 괜찮은 학교들도 많아. 지리산이나 설악산에 있다고 해. 멀지만 자연환경이 끝내주는! 동환이한테 딱 맞지 않을까?” 아이들은 나의 의도를 금방 눈치 채 주었다. 다시 빵, 하고 교실에 가득 웃음이 터졌다. 동환아 인격수양 해야지! 하며 장난을 거는 목소리도 나왔다. 동환이가 어딘가 뿌듯하고 시원한 표정으로 다음 친구를 지목했고, 그 학생도 선생님께 섭섭했던 기억에 대하여 말하였다. 스피치의 흐름을 돌리려고“애들아, 되도록이면 배웠던 기억, 좋은 기억에 대하여 나누어 보는 것도 좋지 않을까?” 라고 해보았지만 긍정적인 기억을 나누는 친구들은 서너 명 밖에 되지 않았고 그나마도 교생선생님과의 기억, 학원선생님과의 기억이었다.
모든 아이들의 차례가 끝나고 마지막으로 나의 차례가 왔다. 나는 사랑하고 존경하는 나의 스승님에 대하여 말해주었다. 마음의 상처를 어루만져주셨던, 내가 좌절하고 있을 때 밤 새 나의 목소리를 들어주셨던 나의 선생님, 그 분이 이 세상을 떠나실 때 까지 소중한 말씀을 얼마나 많이 해주셨는지를 말했다. 아이들은 나의 그리움에 깊이 공감해주었다. 아이들의 눈에 미소와 눈물이 함께 고여 있었다. 종소리가 울렸다. 얼굴에 가득 함박웃음을 띄워 “자, 점심시간이다!” 하고 급식실로 아이들을 인솔했다. 교사들은, 우리 어른들은 어쩌면 무언가 가르치기 이전에 아이들에게 먼저 사과를 해야 할 것 같다. 아이들이 학교에서 보내는 시간과 그 기억들이 아이들을 만들어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