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의 문장] 세상에서 가장 어렵고 두려운 것

정다연 시

by 여기반짝





들켜버렸다


제 내면에는 깊숙한 곳에 동굴이 하나 있어요. 가공할 만한 초능력을 인식도 못한 채 살아가는 히어로가 숨어있길 바라지만, 안타깝게도 그곳에는 가오나시가 삽니다. 겨울잠을 자고 있지만 언제든 깨어 나와 나의 얼굴을 대체할 수 있죠. 타인의 불쾌한 행동이 내 안의 괴물을 깨운다고 믿었으나, 시인은 그 인과관계를 전복시킵니다. 그 또한 본래의 나라는 시의 구절('그 미운 사람의 얼굴 끝에/ 내 얼굴이 떠오르는 것')에 저는 몇 번이고 거울을 봤습니다.


미운 사람의 얼굴 끝에 내 얼굴이 있다는 것.

왜 그 사람이 미웠던 건지 곰곰이 생각해 보았어요. 예를 들어, 사무실에서 요란하게 자판을 치는 동료라거나, 야근 한번 없이 정시에 출퇴근하는 권리를 당당하게 요구하는 어린 후배라든지... 그 끝에 소음에 예민하면서도 침묵해야 했던 나의 유약함이 있었고, '좋은 사람' 콤플렉스에 갇혀 정당한 권리조차 주장하지 못한 나의 비겁함이 있었습니다. 실상 그들을 미워한 게 아니라 억눌린 내 그림자를 미워했던 걸지도 모르죠.


드라마 '나의 해방일지'에서 염창희(이민기)는 쉴 새 없이 떠드는 회사 선배 정아름을 미워합니다. 욕망을 부정하는 염창희와 달리 정아름은 자신의 욕망을 솔직하게 표출하고 행동합니다. 정아름을 미워하는 것은 욕망을 표출하지 못하는 자기 성격에서 비롯된 감정이겠죠. '부자되면 내가 누굴 미워하겠니? 내가 이미 충만인데'라는 대사는, 자신의 결핍에서 미움이 비롯되었다는 사실을 이야기합니다.


동료 내 말은 너도 정아름처럼 욕심 있을 수 있는데 없는 척하는 걸 수도 있다고. 세상에 욕심 많은 인간이
뭐, 한둘이냐? 왜 그렇게 정아름이를 미워하는데?
창희 그럼 내가 뭐, 아는 인간 미워하지 모르는 인간 미워하냐?
동료 내 말은 네 욕심 부정하지 말고 마음껏 펼쳐 보라고. 너 부자 되잖아? 정아름이 안 미워한다.
창희 부자 되면, 내가 누굴 미워하겠냐? 내가 이미 충만인데 내가 뭐가 필요해서? 이 새낀 뭐 하나 마나 한
얘기를. 부자 되면 아주 쪼끔 미워하겠지, 쪼끔.

-드라마 '나의 해방일지' 9회 중에서


출처: JTBC 나의 해방일지



엉망진창인 나를 믿으라고?


한없는 찌질함을 확인한 후엔 어떻게 삶을 지속하나요? 미래에 대한 막연한 희망은 실체가 없어서, 현실의 나를 지탱하기에 연약했습니다. '언젠가'라는 희망 고문은 기대의 순간 저를 높은 곳에 띄워 놓고, 손끝으로 밀어 추락시킨 적이 더 많았죠.

꿈을 향해 도전하는 과정에서 마음의 평화를 얻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요. 되려 불확실한 미래가 삶의 기준이 된다면 불안이 더해질 지도 모를 일입니다. 삶의 기준을 예측불가능한 미래에만 두는 것이 나를 위한 투자고 이상이기만 할까요.

그런 의문이 들 땐, 확정된 과거의 어떤 지점을 반추해 보는 것은 어떨까요? 그리고 오점이라 여겼던 과거의 내 선택을 인정하는 거죠. 그때의 괴로움과 불안이 현재의 나를 구성하는 불가피한 조각이고, 그 순간을 통과해서 현재의 삶이 주어졌으니까요. 그 순간으로 되돌아간다 해도 몇번이고 같은 선택을 할 것이고, 최소 미래의 나는 과거의 너를 이해한다고. 그렇게 최소한 내가 나를 파괴하지는 않는 것. 그래서 부서진 채로 존재할 수 있는 것. 이 시의 위안은 함부로 미래지향적이지 않고, 감히 의지를 강요하지 않는 것에 있다고 봅니다.



여백의 의미


마지막 두 행 사이에는 여백이 있습니다. 무엇을 위한 쉼일까.

벽돌의 부서짐에 방점을 찍는 것은 제가 바라던 마무리가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시어보다 여백에 더 의미를 부여하기로 했습니다. 그렇게 다시 읽은 행간에는 '그럼에도 불구하고'가 자리 잡았습니다. 이를테면 이런 생각의 흐름이죠.


'부서진 벽돌'은 자기 잘못이 아닌 채 부서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더 높은 담장의 벽돌이 될 기회는 안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담장의 무게를 받치고 있다.


결핍을 수용하고, 현재의 자리를 지키는 것도 벽의 질량을 지탱하는 방식 중 하나라는 인식은 '그럼에도 불구하고'의 발견으로 얻을 수 있었어요. 신이 아닌 인간은 어느 정도 '내면의 어둠, 세상과 타협할 수 없는 지점' 하나쯤은 키우고 있겠죠. 그렇다면 삶의 어느 지점에서든 '깨진 벽돌'로 변신한 자신을 볼 수 있을 것이고, '그럼에도 불구하고'라는 위로가 필요하지 않을까요. 어느 정도는 누구나 '프랑켄슈타인'의 '빅터'이자 '그것'일 수 있으니 말이죠.


그리하여 마음은 부서질지라도, 부서진 채로 여전히 살아간다.

-조지 고든 바이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