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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uroo Mar 23. 2020

21세기 여성의 생존법

[영화] 메기



이야기의 시작엔 '엑스레이'가 있다. 살갗을 담아내는 포르노보다도 한층 더 깊은 것을 담아내는 엑스레이. 누군가 병원 엑스레이실에서 성관계를 갖는 두 남녀를 찍었다. 다음 날, 병원이 뒤집어졌다. 검은 엑스레이 사진 속 남녀의 성기. 사진 속 두 남녀는 과연 누구인가. 추측이 난무한다. 범인없는 손가락질이 시작된다. 그러다 문득 손가락 끝이 자기 자신을 향한다. 간호사 '윤영'은 사진 속 주인공이 자신과 남자친구 '성원'일지 모른다고 생각한다. 다른 직원들도 마찬가지다. 하나같이 모두가 스스로를 의심하기 시작한다.


병원 직원들이 출근을 하지 않는다. 부원장 '경진'은 아프다는 직원들의 말을 믿지 않는다. 유일하게 병원에 출근한 '윤영'은 경진에게 직접 직원들을 찾아가 사실관계를 따져보자는 제안을 한다.


믿고, 안 믿고


이 영화는 초반부에 믿음이라는 화두를 던진다. '믿고 안 믿고' 논쟁이 이어진다. 등장인물들은 각자 아주 개인적인 경험에 의해 형성된 '믿음체계'를 보여준다. 믿음이란 주관적인 판단 기준일 뿐이다. 의심의 구덩이에 빠진 이들이 '믿음'으로 상황을 타개하려한다. 그러나 이러한 행위는 무의미하다. 믿음은 구덩이를 더욱 깊어지게 할 뿐이다.


주인공 윤영은 남자 친구 '성원'의 전여친을 만난다. 전여친은 자신이 성원에게 맞은 적이 있다고 이야기한다. 윤영은 묘한 표정으로 그녀를 쳐다본다. 어쩐지 성원과 닮은 그녀의 모습. 그녀의 말을 믿어도 되는 걸까. 그렇게 윤영은 의심의 구덩이에 빠지고 만다.


성원은 아직 윤영을 때리지 않았다. 그는 한 번도 자신 앞에서 폭력적인 모습을 보인 적이 없다. 윤영의 의심은 계속해서 겉돈다. 본질을 뚫지 못하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진다.



윤영의 남친 성원은 싱크홀을 메꾼다.


싱크홀과 데이트 폭력은 서로 닮아있다. 겉보기엔 멀쩡한 도로가 어느 한순간 가라앉는다. 도로에 발이 닿기 전에는, 그 도로가 공갈빵인지 아닌지 알 수 없다. 겉으로 보아서는 알 수 없다. 데이트 폭력 역시 마찬가지다. 사랑스러운 나의 연인이 일순간 폭력적으로 변한다. 우린 이 사람이 우리를 때릴 사람인지 아닌지, 겉만 봐서는 알 수 없다.  




윤영이 '메기'를 찾는 일이 잦아졌다. 병실에서 여러 사람들에 의해 길러지고 있는 물고기 ‘메기’. 나는 메기라는 제목을 보자마자 메기 효과를 떠올렸다. 메기란 생존본능 그 자체이자 우리 안에 내재되어 있는 잠재력. 우린 의심에 파묻혀 의심의 시작점을 제대로 직관하지 못할 때가 있다. 성원의 전여친이 윤영의 의심에 불을 붙이는 촉매제 역할을 한 것은 맞으나, 아주 정확히 말하자면 시발점은 아니다. 분명 그 전에도 윤영은 메기를 찾았다.  


'나는 너 안 때렸는데 넌 나 왜 때려?'

장난스럽게 투닥거리는 윤영에게 성원이 묻는다. 윤영의 표정이 일순간 싸해진다. 우리는 이따금 본질적이지 않은 것들로 인해 메기의 시그널을 무시하곤 한다. 예를 들어 그를 맹목적으로 사랑한다는 이유로 말이다. 그 사랑이 누구를 위한 것인가에 대한 자각 없이 그저 의심할 뿐이다. 계속해서 구덩이를 팔 뿐이다.

메기 효과,
정어리가 가득 담긴 수족관에 천적인 메기를 넣으면 정어리들이 잡아먹힐 것 같지만, 오히려 생존을 위해 꾸준히 움직여 항구에 도착할 때까지 살아남는다. 메기 효과란 요컨대, 생존이 걸린 상황에 직면하면 누구나 최대한의 잠재력을 발휘한다는 얘기다.


메기는 계속해서 시그널을 보낸다. 그러나 우리가 그 시그널을 받아들이냐 아니냐는 또 다른 문제다. 어떤 이들은 영화를 보고 '메기가 세상을 구한다.'라고 이야기 하지만, 난 결국 여성이 여성을 구한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다. 윤영이 구덩이를 빠져나올 수 있었던 건 ‘너 여자 때린 적 있어?'라는 본질적인 질문을 성원에게 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질문을 하게끔 인도한 인물은 바로 윤영이 일하는 병원의 부원장 ’경진'이다. 윤영은 경진에게 친구에게도 섣불리 털어놓지 못한 자신의 고민을 털어놓는다. '성원이 정말 여자를 때렸을까.', '내가 사랑하는 그이가 정말 그렇게 폭력적인 사람일까.' 윤영의 물음에 경진은 성원에게 직접 물어볼 것을 권한다.


질문의 화살을 돌린다. 윤영은 계속해서 성원의 폭력성을 스스로 판단하려 들었다. 계속해서 안으로 안으로 구덩이를 팠다. 경진의 한마디에 윤영은 그 질문의 화살을 자신에게서 성원에게로 돌렸다.

‘여자 때린 적 있어?’

윤영의 질문에 성원은 대수롭지 않게 '응.'이라고 답한다.  


영화의 마지막, 성원이 싱크홀에 빠진다. 윤영은 구덩이에 빠진 성원을 내려다본다.


질문의 화살을 돌린다. 질문의 화살이 외부로 향할 때 비로소 문제의 본질이 모습을 드러낸다.


21세기 여성의 생존법


나는 이 영화를 여성영화로 한정 짓고 싶지 않다. 영화 속 다양한 이야기들을 여성이란 단어로 밀어내 영화를 축소시키고 싶지 않아서이다. 그럼에도 내가 계속해서 여성의 입장에서 이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이유는 '여성들이 계속해서 자신이 책임지지 않아도 될 문제들을 자신의 내부로 끌고 들어오는 것'에 대해 한번쯤은 이야기해보고 싶어서이다.


여성들은 이따금 자신들이 노출되어 있는 수많은 폭력적인 상황을 스스로 컨트롤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것 역시 여성의 탓이 아니다. 하물며 성폭력 사건이 벌어져도 뉴스의 헤드라인은 '20대 여대생 자취방에서 성폭력 당해'이지, '가정이 있는 50대 남성 성폭력 저질러'가 아니지 않은가? 누가 폭력을 저질렀냐 보다 누가 당했냐 혹은 당할만했느냐가 늘 화두다.


아까 간 화장실에 카메라가 있었을까? 내 남자 친구는 안 그러겠지? 좀 긴치마를 입을 걸 그랬나? 질문의 방향이 외부가 아닌 내부로 향해 있다. 마치 우리가 조심하면 문제가 일어나지 않을 것처럼 말이다.


우리가 구덩이에 빠졌을 때,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더 구덩이를 파는 것이 아니라  그곳에서 얼른 빠져나오는 일이다.


21세기 여성의 생존은 구덩이에서 빠져나오는 것에서 시작된다. 혼자 힘으로 구덩이를 빠져나오는 게 불가능할 수도 있다. 윤영은 경진과 성원의 전여친의 도움으로 메기의 목소리를 온전히 듣고 따를 수 있었다.


21세기 여성의 생존 제1 법칙 '서로 연대할 것.'



https://www1.president.go.kr/petitions/586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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