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겹의 줄세움 뿌리-학교 정기고사와 수능

정기고사와 수능을 없애야


중간고사 기간, 학교 복도는 조용해야 하는데 오히려 소리가 납니다. 종이 넘기는 소리, 계산기 두드리는 소리, “이거 몇 번?” 하는 속삭임. 그 소리는 수능만큼 크지 않지만 더 자주 울립니다. 수능은 1년에 한 번이지만, 정기고사(내신)는 학기마다, 과목마다, 아이의 일상을 촘촘히 묶습니다. 그래서 저는 말합니다. 줄세움의 뿌리는 수능만이 아니라 정기고사(내신)입니다. 큰 트랙 하나와 작은 트랙 수십 개가 동시에 아이를 달리게 하는 ‘이중 트랙’이 지금의 학교입니다.


이 구조가 무서운 까닭은, 시험이 배움을 “측정”하는 게 아니라 배움을 “지휘”하기 때문입니다. 시험이 가까워지면 교실의 언어가 바뀝니다. “이건 시험에 나와요?” “몇 점짜리예요?” 질문이 삶에서 출발하지 못하고, 배움은 문제집의 범위로 줄어듭니다. 교사는 수업을 깊게 하고 싶어도 시간표가 허락하지 않습니다. 아이가 스스로 질문을 만들려 하면 “그건 나중에”라는 말로 접힙니다. 나중은 오지 않습니다. 다음 시험이 곧 오니까요.


내신은 공정의 이름으로 더 강하게 작동합니다. “학교에서 배운 걸 평가하니 공정하다.” 그런데 현실은 다릅니다. 같은 교실에서도 배경은 다르고, 집의 시간과 자원은 다릅니다. 수행평가는 ‘배움’이 아니라 ‘자료력’과 ‘도움받을 수 있는 환경’으로 갈라지기도 합니다. 지필평가는 빠른 암기와 실수를 줄이는 훈련으로 기울기 쉽습니다. 공정은 서열의 기술이 되고, 학교는 배움터가 아니라 선발터가 됩니다.


나세움 배움으로 가려면, 이 겹줄(이중 트랙)을 끊어야 합니다.

첫째, 정기고사(내신)로 등급을 매기는 장치가 아니라 저마다 ‘이룸(도달)을 보장하는 장치’로 100% 과정을 과정(수행) 평가해야 합니다. 기준을 분명히 하고, 미도달이면 보완과 재도전을 주어야 합니다.

둘째, 지필은 바닥(기초소양) 점검으로 낮추고, 중심은 배움기록으로 옮겨야 합니다. 물음, 근거, 협업, 발표, 해냄이 남는 기록이 성적표가 되어야 합니다.

셋째, 수능은 줄세움 순위기계의 자리에서 내려와야 합니다. 대입은 선발의 폭력을 줄이고, 대학과 학생이 배움의 책임을 나누는 방향으로 재설계돼야 합니다.


아이의 하루를 바꾸는 건 거대한 구호가 아니라, 시험이 삶을 지휘하는 권력을 내려놓는 일입니다. 수능만 없애고 내신을 두면 지옥은 학교 안으로 옮겨옵니다. 내신만 바꾸고 수능을 두면 학교는 다시 수능 하청으로 돌아갑니다. 그래서 우리는 줄세움의 두 갈래 길(트랙)을 함께 바꿔야 합니다.


오늘의 뜻배음: “범위 어디까지?” 대신 “오늘 배움에서 가장 남은 한 문장은?”을 묻기.
다음 질문: 당신이 겪은 ‘내신의 줄세움’은 어떤 장면으로 남아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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