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움의 두 모습-'스스로'와 '따라서'

김두루한(참배움연구소장)

한국 사람이 배울 학(學)의 말뜻을 제대로 알면 잘 사는 길이 열린다


한국 사람으로서 세상을 잘 살아가려면 ‘말(글)’이 왜 중요한지를 묻지 않을 수 없다.사람은 거의 모든 ‘앎’을 ‘말’을 빌려서 이루어지는 알음알이를 거치기 때문이다.

배움의 본디 뜻을 살피는 과정에서 한국말에서 쓰이는 토박이말 배움과 한자에서 빌려 써 온 ‘학(學)’의 쓰임새나 말뜻도 마땅히 제대로 알아야 한다. 배우다란 뜻을 지닌 학(學)이 널리 쓰이고 있기 때문이다.

예컨대, 배우는 곳(학교), 배우는 이(학생), 배우고 익힘(학습), (체계 있게) 배우고 물음( 학문), (어떤 것을) 체계 있게 배우고 묻는 기술(학술)로 쓰이고 있다.


배울 ‘학(學)’의 뜻은 그려보기보다 따져보기로 밝게 알 수 있다


이제 ‘학(學)’의 뜻을 알아보자.

첫째는 ‘학(學)’의 뜻을 그려서 알 수 있다. 배우는 일이 가리키는 사태를 머리에 떠올려서 ‘학(學)’의 뜻을 그려보거나 가르치는 일과 배우는 일을 서로 비추어 보아서 ‘학(學)’의 뜻을 그려볼 수 있다. 이럴 때 그리는 방식이나 정도가 사람에 따라서 크게 다를 수 있다. 무엇보다 이 경우에는 말뜻이 흐릿한 상태에 머무르게 된다.

둘째는 ‘학(學)’의 뜻을 따져서 알 수 있다. ‘배우다’는 말이 이제까지 굴러온 속내를 잣대로 삼아서 ‘학(學)’의 뜻을 따져보거나 ‘배우다’는 말의 속내를 잣대로 삼아 ‘학(學)’이 이루어지는 사태를 따져볼 수 있다. 이 경우에는 따지는 방식이나 정도가 서로 비슷할 수 있다. 무엇보다 이 경우에는 말뜻이 또렷한 상태에 이를 수 있다.

따라서 ‘학(學)’의 뜻을 밝게 알려면 ‘배우다’의 말이 지닌 속내, 곧 나옴새, 짜임새, 엮임새 따위를 깊이 따져보아야 한다. 예컨대, 한국 사람이 ‘학(學)’을 왜 ‘배우다’로 새기게 되었는지 깊이 따져 보아야 한다.

그래서 한국 사람이 한문이나 영어 따위를 배우는 일은 따라서 배우는 일이 중심을 이루어왔음을 알 수 있다. 또 선비들이 도통이나 학통을 잇는 방식으로 학문과 공부를 하게 되면서 따라서 배우는 일이 중심을 이루어왔음을 알 수 있다. 이것은 마침내 한국 사람이 토박이말인 한국말을 가볍게 여기는 까닭으로 한국말을 배울 때에 따라서 배우는 일을 넘어서 나아가 따져서 배우는 일을 하지 않게 된 말미임도 알아야 한다.(☛최봉영 교수, ‘한국인과 도덕성 발달’ 참조)


배움의 두 가지 모습


배움에는 크게 두 가지 모습이 있다. 하나는 스스로 헤아려 배우는 참배움이고 다른 하나는 남이 가르치는 것을 따라서 배우는 따라 배움, 거짓 배움, 억지배움이 있다.

우리는 스스로 헤아림의 알맹이나 스스로 헤아림을 넘어서는 새로운 갖가지 앎들(논리, 인문, 종교, 예술, 수학, 과학, 기술)에 관해 ‘알음알이’로 창조하고 소통한다. 그래서 깨달음의 수준으로 나아갈 수 있는데, 우리는 이것을 ‘참배움’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학교에서 배우는 것은 ‘가르침’에 따라 더욱 빨리, 쉽게, 많이 배울 수 있고 아닐 수도 있다. 가르침’은 이때 잘 가려서 배우도록 이끌어야 하지만 한국 사람들의 처지에서 옛일을 되새겨 보면, ‘교육’이란 이름 아래 대부분 따라서 배우는데 그쳤다. 부끄럽게도 ‘제국주의 식민 통치’와 ‘계엄령’이나 ‘유신헌법’ 등을 내세워 반민주 독재를 지키고 옹호하는 억지 배움, 거짓 배움으로 이끌기도 했다.


매거진의 이전글배움과 익힘이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