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배움'- 스스로 헤아리고 가려 배움

김두루한(참배움연구소장)

‘참배움’은 스스로 헤아려 배우고 잘 가려서 배우는 것


일찍이 정약용은 백성의 삶을 돌보지 않는 ‘헛말’, ‘헛소리’의 학문을 보고서 ‘참배움(실학)’을 내세웠다. 그는 모든 것을 성(性)과 리(理)를 붙들고 말로만 씨름하는 성리학과 달리 올바른 쓸데와 쓸모를 바탕으로 참된 쓰임을 밝히고자 애썼다.

정약용은 사람들이 누구나 착한 것을 보면 좋은 맛을, 모진 것을 보면 싫은 맛을 느끼게 된다고 내세웠다. 맛의 바탕인 느낌에 주목하여 이처럼 숨탄것(생명)의 본바탕을 어떤 것을 좋아하고 싫어하는 잣대인 ‘맛(嗜好)’으로 풀이했다. ‘맛’은 ‘꿀맛, 돈맛, 손맛의 ‘꿀’, ‘돈’, ‘손’과 같이 세상에 갖가지로 널려 있는 것(대상)과 관계를 맺을 때 몸 안팎으로 일어나는 느낌이다.

나아가 ‘맛’은 생명의 임자가 느끼고, 알고, 하는 힘으로서 생명을 생명다울 수 있도록 만드는 바탕임을 우리는 놓쳐선 안 될 것이다. 사람은 꿩이나 노루처럼 느낌에 터전을 둔 맛을 갖고 있으면서도 그들과 달리 생각에 바탕을 두고 맛을 보는 힘인 ‘뜻’을 지녔기 때문이다.


짐승과 달리 사람에겐 차원이 다른 ‘뜻’이 있다


가르침과 배움은 사람이 이것과 저것으로 가르고 가리는 생각의 힘을 바탕으로 '뜻'을 기르는 데 있다. 날씨가 추운 데도 책상에 앉아 배움(공부)에 빠져든 ‘한보’ 이야기를 살펴 보자.


① 한보가 방안에서 공부하고 있는데, ‘날씨가 춥다’는 것을 몸으로 느끼고 있다.

② 한보는 누나가 방문을 닫지 않아 “(날씨가 추우니) 문 닫아(줘)!”라 요청한다.

③ 한보가 ‘(나는 조금 춥더라도) (책상에서) 공부할 거야!’라 다짐한다.


①은 우리가 몸으로 바깥을 느끼는 보기이다. 배부름과 배고픔, 풀리고 막힘, 멍함과 띵함 같은 것을 몸 안에서 느끼듯 춥고 더움, 밝고 어두움, 시끄럽고 고요함, 쓰고 닮, 매캐하고 고소함은 바깥에서 느끼게 된다. ②는 한보가 춥다는 느낌을 가라앉히고 간추리고 갈무리하면서 빚어지는 마음의 움직임을 보여 준다. 잠시 방에 들른 누나가 방문을 닫지 않은 상황에서 ‘날씨가 추우니, 문을 닫아야 한다’는 생각을 하고 ‘문 닫아(줘)!’라 요청한 것이다. 우리는 생각하고서 앎과 모름, 같고 다름, 맞고 틀림, 참되고 그름 따위들을 가려낸다.

③은 사람에겐 짐승과 차원이 다른 ‘뜻’(의지)이 있음을 보여 준다. 느낌을 터전으로 잡고 생각을 바탕으로 삼아서 한걸음 더 나아간 '뜻'을 지닐 때 삶은 차원이 달라지는 것이다.


배움이들이 생각하는 힘을 기르도록 참배움을 지원하라


일찍이 ‘콩쯔’는 자신의 삶을 돌아보며 배움에 뜻을 둔 때가 열다섯 살 때라 했다.( 吾十有五而志于學) 콩쯔나름으로 겪은 일로 해서 배움의 뜻을 세웠으리라 여겨진다. 요즘도 중고등학교 즈음에 진로를 탐색하고 어느 정도 분야를 정하기 마련인 것처럼.

하지만 '대학입시'를 준비하는 오늘날의 처지에서 대한민국 배움이(학생)들이 진리탐구에 나서지 못하는 것은 안타깝기 그지 없다. 대학에 들어가서도 마찬가지로 '점수'에 신경 쓰면서 쓸데 없는 '겨루기(경쟁)'로 정작 길러야 할 이해력이나 표현력은 제대로 갈고 닦지 못한다.

‘뜻이 있으면 길이 있다’에서 보듯이 뜻은 사람을 끌고 가는 힘인 셈이다. 오늘 배움이(학생)들의 마음은 어떠한가? 굳센 ‘뜻’은 여간해서 흔들리거나 꺾이지도 않는다. 마음이 흔들리지 않는 것이다. '나'를 위한 배움에서 나아가 '남'을 위한 배움에 뜻을 두길 바란다. '분열'과 '갈등'에 얽매이지 않고 서로 아우르고 어울러 새 길을 여는 '젊은 그들'을 기다린다. 그들이 우리 사회를 바꾸어내는가의 여부는 오늘 우리 사회가 그들이 생각하는 힘을 기르도록 얼마나 참배움을 지원하느냐에 달려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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