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들이여~참배움으로 거듭나자

김두루한(참배움연구소장)

‘오래된 배움’에 이제야말로 눈떠야


요즘 '미래교육'을 종종 듣게 된다. 서울교육청은 '혁신미래교육'을 아예 지표로 삼았다. 하지만 '오래된 미래'에서 보듯이 우리는 '미래교육'이든 '혁신미래교육'이든 '교육' 에서 벗어나야 한다. 이제 더 이상 미루지 말고 ‘오래된 배움’에 눈떠야하겠다.

“배우고 시간 나는 대로 익힌다면 또한 기쁘지 않겠는가? 벗이 먼 곳에서부터 온다면 또한 즐겁지 않겠는가? 남이 나를 알아주지 않는다 해도 노여워하지 않는다면 또한 군자답지 않겠는가?” (논어, 학이편: 子曰 “學而時習之, 不亦說乎? 有朋 自遠方來, 不亦樂乎? 人不知而不慍, 不亦君子乎?”)

잘 알려진 '논어'의 첫 글월이다. 콩쯔란 스승의 말씀과 삶을 잊지 못한 제자들이 스승과 함께 묻고 답한 것을 남긴 것이다. 이처럼 묻고 답하기야말로 오래된 배움이다. 이야기를 하듯 묻고 답하기가 왜 중요한가? 사람은 생각을 머리속으로 하는데, 이때 그림을 주고받는다. 그 그림을 주고받을 때 쓰이는 연장이 바로 입말이고 글말이기 때문이다. 한 마디로 말글로 생각하는 힘을 기를 수 있기 때문이다.


질문이 있고 함께 답찾는 배움의 기쁨과 보람을 맛보았던가?


하지만 불행히도 우리 나라 배움방의 모습은 어떠한가?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으로 열리는 청문회에서 보듯이 대한민국 사람에게 누구나 '청문회'가 아직은 그다지 낯익은 모습이 아니다. 왜 그런가? 우리 '교육'의 역사에서 배움의 기쁨과 보람을 맛보는 일이 끊어진 까닭이다.

우리 역사에서 지난 세월은 '근대 교육'의 틀에 갇혀 있었다. 1876년~1945년까지 70년에 이르는 식민 시대는 두 말 할 것 없고 광복 후만 하더라도 이승만(1948~1960) 자유당 독재에서 가까스로 4⚫19 혁명으로 민주당 정부를 세웠으나 5⚫16 군사쿠데타로 집권한 박정희 (1961~1979)-전두환(1980~1987)-노태우(1988~1992) 대통령에 이르도록 군인 출신이 통치하였다. 권위주의 낡은 틀의 50년 시절을 겪으며 '오래된 배움'을 잃어버린 것이었다. 이후에도 김영삼(1992~1997)은 '문민'이라 할 수 있지만 여당 출신으로 대통령이 되었고, 김대중(1998~2002)과 노무현(2002~2007) 대통령을 빼곤 다시 이명박(2007~2013), 박근혜(2013~2016) 대통령에 이르도록 ‘오래된 배움’은 살아나지 못했다.

오히려 '국민교육헌장'으로 상징되는 '억눌림'과 '짓누름'으로 '질문이 있고 함께 답 찾는' 배움의 기쁨과 보람을 배움방(교실)에서 누리지 못하였다. 소설 '우리들의 일그러진 초상'과 영화 '말죽거리 잔혹사'로 상징되는 거짓배움, 억지배움, 따라배움으로 이어진 '교육'이었다.


이제라도 '(참) 교육'의 사슬을 끊고 '참배움'을 노래하자


이 죽음의 고리로 이어진 시대의 사슬을 끊고자 한다면 되새겨 보아야 한다. 4월 혁명과 6월 항쟁,12월의 촛불 혁명이 어떻게 일어났는지를. '나라임자가 시민'임을 '교과서'에 써 놓고 배웠지만 이런 것은 결코 시험에 내지 않았다. 오직 경쟁의 늪에 빠진 채 허덕이는 학생들에게 항생제를 주사하듯 전달한 '가르침(교육)'의 덕분이 아니었다. 그런 지식은 입학할 때만 써 먹고 시험 보자 까먹는 허접한 지식 쓰레기에 지나지 않았다.

1989년 교육민주화의 줄기찬 노력으로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이 '참교육'을 내세우며 수 만의 교사가 가입한 노동조합으로 역사의 부름을 받아 일어났다. 막연히 '나라'와 '겨레'의 현실 앞에서 팔짱 끼고 있지 않고 마땅하고 옳은 일을 좇아 미래의 배움이(학생)들을 맡은 선생님들이 일어선 것이었다. 이들은 누구였던가? 바로 '억눌림'과 '짓누름'으로 '질문이 있고 함께 답찾는' 배움의 기쁨과 보람을 누리지 못한 과거의 배움이(학생)들이 아니었던가? 그들은 배워 익힌 '지식'이 아니라 본디 지닌 '참'을 사랑하고 '거짓'은 '참'을 이길 수 없다며 먼저 촛불을 든 것이다.

참된 역사는 '가르침'이 아니라 살아 있는 '참배움'을 보여 주고 있지 않는가? 그들이 스스로 어제의 쓰라린 역사 속에서 참누리를 꿈 꾼 대로 몸으로 그려낸 스스로 '배움'의 열매이었다. 대체 오늘 이 땅의 현실에서 씨알(민)이 과연 임자로 살고 있는지 되묻고 저마다 그 뜻을 묻고 함께 새긴 스스로 '배움'이고 깨침의 열매이었다.

배움이(학생)의 순수함으로 촛불이 횃불되어 들불처럼 번지게 한 것은 모두가 '오래된 배움'의 묻고 답하기를 꾸준히 해 왔기 때문이다. 겉으로 하지 못한 채 '속말'로 묻고 답한 참배움이었던 것이다. 이것은 오랜 세월 제국주의 식민교육과 반민주 독재세력에 맞선 힘이었던 것이다. 다만 이제는 (참)교육이란 잘못된 표현을 넘어 참배움으로 바꾸어 힘차게 나아가야 한다. 이제 참배움의 뜻을 새겨 걸맞은 틀을 만들어 겉말과 속말이 하나된 '묻고 답하기'로 참배움을 노래하고 꽃 피워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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