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설권·과정평가권·이의권·저부담
학교 상담실 문을 닫고 나오는데, 복도 끝에서 아이가 서성였다.
손에는 신청서가 들려 있었다. 종이가 접히고 또 접혀 모서리가 닳아 있었다.
“선생님, 그 과목… 안 열린대요.”
아이 말이 끝나기도 전에 눈이 붉어졌다.
배우고 싶어서 고른 과목이었는데, “사람이 적어서” 안 열린다고 했다.
나는 그 말이 참 서러웠다.
공부는 마음만 있으면 할 수 있는 줄 알았는데,
정작 마음이 있어도 못 배우는 일이 학교에서 벌어지고 있었다.
배움은 ‘허락’이 아니라 ‘권리’여야 한다.
누가 잘나서, 누가 운이 좋아서 배우는 게 아니라
누구나 마땅히 누려야 하는 것이어야 한다.
그래야 학교가 학교다.
배움누림권의 최소기준은 어렵지 않다.
딱 네 가지다.
첫째, 배우고 싶은 과목이 실제로 열릴 권리다.
선택권이 있다 해놓고 과목이 안 열리면, 선택권은 말장난이다.
“없어서 못 듣는” 선택이 되면 아이는 다시 계산만 하게 된다.
둘째, 배우는 동안 도움을 받으며 자랄 권리다.
시험 한 번으로 끝내는 게 아니라,
수업 속에서 해 보고, 고치고, 다시 해 보며
“어제보다 나아짐”을 인정받아야 한다.
셋째, 억울하면 다시 살필 수 있는 권리다.
사람이 하는 일엔 실수가 있다.
억울함을 삼키게 하면 마음이 먼저 부러진다.
다시 물을 수 있고, 다시 살필 수 있어야 공정하다.
넷째, 학원 없어도 갈 수 있는 길이 있어야 한다.
집에 돈이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배움의 길이 갈라지면,
그건 교육이 아니라 벽이다.
대입이든 진로든, 준비가 ‘돈’이 아니라 ‘배움’으로 되게 해야 한다.
이 네 가지가 없으면,
고교학점제는 겉모습만 바뀐 채 더 큰 불안을 만들 수 있다.
선택은 늘었는데 과목은 열리지 않고,
평가는 늘었는데 믿음은 없고,
억울함은 쌓이는데 풀 길은 없고,
학원만 더 바빠지는 학교가 된다.
그래서 지금 필요한 건 거창한 말이 아니다.
“배움은 권리다”를 제도로 박는 일이다.
과목이 열리게 하고,
배우는 동안 돕고,
억울하면 다시 살피고,
학원 없이도 갈 수 있게 하는 것.
그 네 가지를 지키는 학교에서 아이는 비로소 말할 수 있다.
“저, 배우고 싶어서 왔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