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정평가의 철학

되먹임(피드백)이 수업의 중심이 될 때

아이의 공책을 돌려주는데, 아이가 손을 떨었다.

빨간 펜 자국이 공책 위에 여기저기 박혀 있었다.

“선생님… 저, 또 틀렸어요.”

아이는 ‘틀림’을 죄처럼 말했다.
나는 그 말이 서러웠다.
틀림은 원래 배움의 문인데,
우리는 틀림을 벌로 바꾸어 놓았기 때문이다.

시험이 수업의 맨 앞에 서면,
수업은 “맞히는 법”을 가르친다.
그때 아이는 틀릴까 봐 입을 다문다.
모르는 걸 묻기보다 숨긴다.
한 번 틀리면 끝나는 기분이 들기 때문이다.

그런데 배움은 원래
해 보고, 틀리고, 고치고, 다시 해 보는 일이다.
배움은 ‘한 번에 맞히기’가 아니라
‘다시 해보기’를 허락하는 일이다.

여기서 되먹임이 나온다.
되먹임은 칭찬 한마디가 아니다.
“여기까지는 잘 갔어.”
“여기서 길이 꺾였어.”
“이렇게 한 번 더 해보자.”
배우는 사람이 다음 발을 내딛게 하는 작은 등불이다.

되먹임이 수업의 가운데로 오면, 교실이 바뀐다.
아이들은 “맞힐 자신”이 아니라 “해볼 용기”로 움직인다.
틀리는 게 두렵지 않아진다.
틀림은 실패가 아니라 ‘다음 고침’이 된다.

선생님도 달라진다.
선생님은 점수를 매기는 사람이 아니라
아이의 길을 함께 보는 사람이 된다.
수업은 속도를 겨루는 일이 아니라
각자 걸음에 맞춰 길을 밝히는 일이 된다.

부모도 달라진다.
“몇 점이야?”만 묻던 질문이
“어디가 어려웠어?” “뭘 고쳤어?”로 바뀐다.
그 질문을 들을 때 아이 얼굴이 풀린다.
배움은 혼자 버티는 일이 아니라, 함께 자라는 일이 된다.

물론 이 길은 말만으로 되지 않는다.
되먹임이 제대로 서려면
선생님이 아이의 걸음을 볼 시간과 힘이 필요하다.
기준은 미리 드러나야 하고,
억울하면 다시 살필 길도 있어야 한다.
그래야 교실이 믿음을 잃지 않는다.

하지만 한 가지는 분명하다.
되먹임이 없는 평가는 아이를 줄 세우고,
되먹임이 있는 수업은 아이를 세운다.
우리가 바꾸려는 건 점수의 모양이 아니라
아이의 마음이 다시 일어서는 방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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