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은 평등하지 않은 사회를 지키는 데 이바지할 뿐
도대체 민주공화국인 대한민국에서 ‘교육’이 무엇일까? 교육은 ‘사육’이란 말을 들을 정도로 힘든 노동이기도 하다. 어려서부터 그 힘든 노동을 해 오다 견디지 못한 채 곳곳에서 죽음으로 이어지기까지 한다. 해마다 수능이 끝나고 투신자살하는 경우가 그러하다. “공부 힘들어서 자살하는 사람들... 다 남 이야기 같았어. 하지만 아니야. 공부, 공부, 공부, 공부 ... 같은 곳에서 각기 다른 재능을 지닌 아이들이 오직 한 가지만 배우고 있어. 대학 가는 법.” 2007년 4월에 자살한 어느 중학생의 유서 내용이다.
교육은 차지한 자리(지위)로 특권을 누리고 이미 있어 온 사회제도를 떠받들게 하는 행위다. 지배 계층은 민주주의 이념 원칙을 훼손하지 않는 듯하며 계층 이해를 교육 위계질서에 떠넘겨 사회 계층 간 층위를 낳고 있다. 지위를 드러내며 자식에게 물려주지 못하니 구성원이 납득하는 세련되고 신중한 사회 통제 대물림(상속) 수단이다. 그래서 ‘핏줄’로 물려지던 계급 특권들은 ‘시험’을 거쳐 자격, 능력으로 갈음되었다.
이처럼 교육은 형식적인 기회의 평등일 뿐 사회의 불평등을 줄이는 게 아니라 오히려 대등하지 않은 사회를 지키는 데 이바지한다. ‘실력주의’ 틀 아래 하늘(SKY)이라 일컫는 대한민국 대학 교육 틀이 그러하다. 기득권의 상징폭력에 적응하게 하는 수단일 뿐이다. 경험에 비추어 ‘교육/학습’을 통해 사회구조에서 위로 올라가는 사람은 아주 적은 수의 사람들이다. 그것은 본질이 바뀌거나 계층 옮김이 쉽다기보다 선전효과로써 사회 안정에 이바지할 뿐이다. 문화자본이 고르게 분배되지 않은 채 ‘교육/학습’ 체계로 재생산되는 것은 평등으로 가는 길과는 더 멀어지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바뀌겠어?”라 하면 ‘교육’은 미친 짓
한국의 학교교육이 고통이고 질곡인 것은 정부와 학교를 비롯한 이른바 교육 주체들이 아래와 같이 ‘미친 짓’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1)
-교육과정(국가/시도/학교)으로 학습자들의 흥미, 욕구, 준비도가 달라도 동일한 내용, 동일한 수준, 동일한 방법으로 지도하기
-질문이나 과정보다 정답이나 결과를 중시하고 비교하기
- ‘가르치면 배울 것이다’라 가정하고 가르침/익힘만 집중하기
- 교사와 관계의 질이 낮은 채 학생이 수업에 집중하여 따르기 요구
아인슈타인은 많은 사람들의 머릿속에 “교육이 바뀌겠어?”란 자조와 냉소로 채워져 있다면 ‘교육’은 미친 짓이라 했다. ‘미친 짓이란, 과거와 똑같은 방식을 반복하면서 미래에 다른 결과를 기대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교장・교사・부모가 지닌 ‘편견’이나 ‘고정관념’을 바꾸지 않고 학생들만 바뀌길 기대해도 될까? 학생에게 바람직한 인성을 갖추고 학업성취도가 높기를 기대하는 게 옳을까?
1) 이찬승, 「교육혁신, 미친 짓부터 그만두자」(http://reurl.kr/CB6589BXV), 2016.01.11. (Insanity:doing the same thing over and over again and expecting different resul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