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교육은 거짓배움이니까

공교육 아니 공배움의 이름으로 나세움 배움을 누리지 못하니까

학교에서 말하는 ‘(공)교육’은 무엇인가. 아이들을 한 줄로 세워 ‘주어진 물음’의 ‘답 고르기’에 익숙하게 만드는 일인가. 오늘 교실에서 벌어지는 획일과 표준의 수업은, 배움의 이름을 빌려 거짓배움을 베푼다.

초등 국어 시간, 아이는 ‘이 글의 중심 생각은 무엇인가’라는 보기형 문항 앞에서 머뭇거린다. 자기 말로 요약해 보려는 순간, 교사는 “정답은 3번”이라며 지워 버린다. “왜 그렇게 생각했니?” 대신 “근거 문장을 찾아 밑줄”이 먼저다. 중학교 수학에서는 풀이 과정의 사유가 아니라 ‘정해진 풀이’의 속도를 재고, 공식이 왜 생겼는지 묻는 질문은 “시험범위 밖”이 된다. 고등 영어에서는 작품의 장면을 토론하기보다 빈칸에 들어갈 단어를 찍고, 지문을 ‘해석’하기보다 ‘패턴’으로 쪼개 훈련한다.

이렇게 배움은 ‘이해’가 아니라 ‘선택’으로, ‘생각’이 아니라 ‘점수’로 환원된다. 이 배경에는 신자유주의의 시선이 있다. 학생을 사람으로 보지 않고 상품으로 본다. “당신은 사람인가 상품인가”, “상품으로 고급 품질을 유지하는가” 같은 말이 교육의 언어로 스며든다. 품질이 낮으면 ‘시장에 내다 팔기 전에 버려라’는 냉혹함이, 교실에서는 ‘낙오’와 ‘정리’라는 이름으로 되풀이된다. 공교육이 배움의 공동체가 아니라, 시험시장의 하청이 되는 순간이다.

정기고사와 국가주도 수능 같은 일제고사는 이 흐름을 고착시킨다. 학교가 시험 대비에 매달리는 것이 과연 옳은가. 정답 있는 시험을 치르면서, 답이 여러 갈래인 창의성을 말할 수 있는가. 학생의 호기심이 살아 있는 과제를 두고 이모저모 스스로 깨치도록 돕는 대신, 두 달에 한 번씩 줄세움 평가로 삶을 재단한다면 그것은 ‘거짓배움’이다. 능력·역량을 기르자고 해 놓고, 정답률로만 줄을 세우는 제도는 교육의 말과 삶을 갈라놓는다.

공교육은 최소한의 공정 경쟁을 넘어, 누구나 배움의 임자(주인)가 되도록 돕는 공공의 약속이어야 한다. 국어는 자기 경험으로 읽고 쓰게, 수학은 문제를 새로 만들고 검증하게, 영어는 실제 소통의 필요 속에서 사용하게 해야 한다. 진단은 표집·관찰로 가볍게 하고, 평가는 수행과 죽모음(포트폴리오)으로 과정을 살피자. 정기고사를 줄이거나 없애고, 학교는 시험 대비가 아니라 배움과정 설계에 힘을 쏟아야 한다. 줄세움이 아니라, 아이들의 ‘나세움’을 공교육 아니 공배움의 이름으로 누리게 해야 한다.

이전 04화교육은 미친 짓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