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는 '나세움' 배움지원 전형을 돕자

어떻게 뽑을까? 보다 어떻게 배움을 살릴까?로

설명회가 끝나고 집으로 가려는데, 한 아이가 내게 물었다.

가방끈을 꼭 쥔 채, 목소리를 낮췄다.


“선생님… 대학은 저를 어떻게 알아봐요?”


그 질문이 가슴을 쳤다.
아이의 삶은 한 해 시험지로 다 담기지 않는다.
그런데 우리는 오래도록 아이를 ‘줄 세우는 시험’으로만 알아보려 했다.
그래서 배움은 자꾸 시험을 닮았고, 아이는 자꾸 수험생이 되었다.


이제 질문을 바꿔야 한다.
“어떻게 뽑을까?”가 아니라
“어떻게 배움을 살릴까?”로.


그래서 나는 ‘국가공동전형’이란 말보다 나세움 배움지원 전형이라는 말을 쓰고 싶다.
이 전형의 목적은 “선발”이 아니라 지원이다.
아이를 걸러내는 길이 아니라,
아이의 배움이 이어지게 돕는 길이다.


나세움 배움지원 전형의 첫째 논리는 길을 하나로 모으는 것이다.
대학마다 제각각 시험을 만들면, 그 순간 준비법은 상품이 된다.
학원은 길을 팔고, 학교는 수업을 잃는다.
길이 많아지면 공정해지는 게 아니라, 돈과 정보가 많은 쪽이 이긴다.
그러니 공공의 길이 먼저 있어야 한다.
‘대학별 대비’가 커지지 않게,
학교 수업이 흔들리지 않게,
아이의 배움이 중심에 서게 하는 공통 길이 필요하다.


둘째 논리는 되묻고 되살피는 전형이다.
정답을 맞히는 시험은 아이를 빨리 줄 세운다.
하지만 배움은 천천히 자라는 일이다.
나세움 전형은 아이에게 이렇게 묻는다.
“왜 그렇게 생각했니?”
“무엇을 해 보았니?”
“어디서 막혔고, 어떻게 고쳤니?”
이 질문은 아이를 평가하려는 질문이 아니라
아이의 배움을 이어 주려는 질문이다.


그래서 나세움 배움지원 전형의 두 기둥은
묻고 답하기(논구술면접)와 죽모음(포트폴리오) 지원틀을 갖추는 것이다.


묻고 답하기는, 질문의 폭과 기준을 함께 세우는 일이다.
대학이 각자 다른 문제를 내어 경쟁시키는 게 아니라,
전국이 함께 쓰는 ‘묻는 말’을 마련하는 것이다.
묻는 말이 같아지면 준비는 단순해진다.
학원식 비법이 설 자리가 줄어든다.
무엇보다, 학교 수업에서 길러야 할 힘이 또렷해진다.
말로 생각을 세우는 힘, 근거로 설명하는 힘, 함께 배운 것을 자기 삶으로 잇는 힘.


죽모음(포트폴리오) 지원틀은 학생의 배움 흔적을 한 덩어리로 보는 일이다.
상장 모으기가 아니다. 수업에서 해 본 것, 고친 것, 함께 한 것, 끝내 해낸 것을 담는 일이다.
한 번에 번쩍이는 결과가 아니라, 시간 속에서 자란 흔적을 보는 일이다.
이게 살아나게 되면 고등학교는 비로소 참배움터가 된다.
아이도 “무엇을 외울까”보다 “무엇을 해볼까”를 생각한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건 ‘지원’이다.
나세움 전형은 “너는 될 놈/안 될 놈”을 가르는 칼이 아니다.
아이의 배움을 더 키우기 위해
대학이 무엇을 도와야 하는지 알게 하는 등불이다.
대학은 나세움 배움지원 전형을 통해
배움이 이어지는 길을 설계하고,
학생이 들어온 뒤에도 성장(숙)이 계속되게 돕는 책임을 진다.


물론 전형이 바뀌면 걱정이 생긴다.
“그럼 믿을 수 있나?”
그래서 공공의 길에는 공공의 약속이 붙어야 한다.
기준은 드러나야 하고,
몇 가지를 뽑아 함께 살피고,
억울하면 다시 살필 길이 있어야 한다.
그래야 학교도, 대학도, 아이도 흔들리지 않는다.


줄세움 시험의 자리를 비우려면,
그 자리를 떠받칠 새 기둥이 먼저 서야 한다.
그 기둥은 ‘국가공동전형’이라는 이름보다
나세움 배움지원 전형이라는 뜻으로 서야 한다.
선발이 배움을 이끄는 시대가 아니라,
배움이 선발을 이끄는 시대로.


다음 글에서는 더 구체로 들어가겠다.
나세움 배움지원 전형을
“한 번에, 낮은 부담으로, 믿을 만하게” 운영하는
공동 묻기·공동 모아보기 설계를 한 장으로 꺼내 보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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