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립을 막는 상한 규율의 정당성
입시 설명회가 끝나고, 복도에서 한 학부모가 내게 물었다.
목소리가 떨렸다.
“선생님… 도대체 뭘 준비해야 하나요?”
옆에 있던 아이는 말이 없었다.
손에 쥔 노트에는 대학 이름이 빼곡했고, 그 옆엔 ‘면접’, ‘서류’, ‘적성’, ‘논술’ 같은 말이 줄줄이 적혀 있었다.
그 노트는 공부 노트가 아니라 불안 노트 같았다.
대학 자율은 필요하다.
대학마다 배우는 길이 다르고, 뽑는 눈도 다를 수 있다.
하지만 자율이 ‘난립’이 되는 순간, 학교는 무너진다.
아이의 배움도 무너진다.
난립은 어떤 모습으로 오나.
대학이 저마다 시험을 만들고, 저마다 날짜를 잡고, 저마다 값을 매기고, 저마다 준비법을 요구한다.
그러면 아이는 배움 대신 ‘전형 맞춤’을 한다.
학교는 수업 대신 ‘대학별 대비’를 하게 된다.
그 틈을 사교육이 가장 먼저 파고든다.
“이 대학은 이렇게 준비해야 해.”
자율이 경쟁이 되면, 결국 돈이 길을 만든다.
그래서 대학 자율에는 조건이 있어야 한다.
조건이 없는 자율은 힘센 쪽의 자유가 된다.
조건이 있는 자율은 모두의 자유가 된다.
상한 규율은 자율을 막기 위한 게 아니다.
자율을 살리기 위한 울타리다.
울타리가 없으면 밭은 밭이 아니라 전쟁터가 된다.
상한 규율의 정당성은 딱 한 가지에서 나온다.
배움누림권이다.
고등학교는 ‘시험 준비 기관’이 아니라 ‘배움터’여야 한다.
대학이 고교 수업을 끌고 가면, 그 순간 고교학점제는 껍데기가 된다.
그래서 상한은 이렇게 서야 한다.
첫째, 지필·문제풀이형 시험은 못 하게 막아야 한다.
그 길은 곧바로 학원길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둘째, 전형은 횟수와 규모에 한계를 두어야 한다.
여러 번 뽑으면 여러 번 불안이 생기고, 여러 번 비용이 생긴다.
셋째, 비용은 낮춰야 한다.
돈이 곧 자격이 되는 순간, 교육은 무너진다.
넷째, 사교육을 부르면 멈추게 해야 한다.
사교육이 늘어나는 전형은 그 자체로 실패다.
이런 상한이 있어야 대학의 자율이 ‘제멋대로’가 아니라 ‘책임’이 된다.
대학은 자기 빛깔로 학생을 만나되,
고교의 배움을 망치지 않는 선을 지켜야 한다.
그 선을 지키면, 아이는 오랜만에 숨을 쉰다.
“무엇을 준비해야 하죠?”가 아니라
“나는 무엇을 해냈죠?”를 말할 수 있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