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움을 더 제대로 보는 학교
말끝이 조심스러웠다.
“정기고사를 안 보면… 뭘로 평가하죠?”
그때 옆 책상에서 아이가 조용히 시험지를 접고 있었다.
빨간 줄이 그어진 자리만 오래 바라보다가,
작게 한마디를 흘렸다.
“틀리면… 끝인가요?”
나는 그 두 문장이 같은 뿌리에서 나온다는 걸 알았다.
선생님은 ‘공정’을 걱정했고,
아이는 ‘끝’을 무서워했다.
정기고사가 사라지면 교실이 흔들릴까 봐,
정기고사가 남아 있으면 아이 마음이 무너질까 봐
우리는 서로 다른 말을 하지만 같은 두려움 속에 서 있었다.
먼저 말하자.
정기고사는 편하다.
한날에, 같은 문제로, 숫자 하나로 정리된다.
그래서 믿기 쉽다.
하지만 배움은 숫자 하나로 다 담기지 않는다.
배움은 해 보고, 틀리고, 고치고, 다시 해 보는 일이다.
그 길을 한 번의 시험으로 끝내면
아이들은 “왜?”를 묻지 못하고 “몇 점?”만 묻게 된다.
그럼 정기고사를 안 보면 무엇으로 보나.
답은 하나다.
‘평가’가 아니라 배움살핌으로 본다.
아이를 줄 세우는 눈이 아니라,
아이를 세우는 눈으로 본다.
배움살핌은 어렵지 않다.
세 가지로 시작할 수 있다.
첫째, 해 본 것을 본다.
토론, 글쓰기, 탐구, 만들기, 발표처럼
수업에서 해 본 일을 남긴다.
한 번에 큰 과제를 내기보다,
작게 해 보고 자주 고치게 한다.
둘째, 고친 흔적을 본다.
처음부터 잘하는 아이는 드물다.
중요한 건 “어디서 막혔고 어떻게 고쳤나”다.
고친 흔적은 배움의 증거다.
틀림을 벌로 만들지 말고,
틀림을 다음 걸음으로 바꿔 준다.
셋째, 되먹임을 남긴다.
“좋아” “나빠”가 아니라
“여기까지는 됐어, 다음엔 이렇게 해보자”
이 한 줄이 아이를 살린다.
되먹임이 쌓이면 아이는 알게 된다.
“나는 자라고 있다.”
물론 이런 살핌이 믿음을 얻으려면 약속이 필요하다.
기준은 미리 드러나야 하고(기준글),
가끔은 함께 뽑아 살펴야 하고(뽑아살핌),
억울하면 다시 살필 길이 있어야 한다(다시살핌길).
이 약속이 있으면 교실은 흔들리지 않는다.
오히려 정기고사보다 더 단단해진다.
숫자 하나가 아니라, 길 전체가 보이기 때문이다.
정기고사를 안 보는 학교는
‘평가를 안 하는 학교’가 아니다.
‘배움을 더 제대로 보는 학교’다.
아이의 질문도 바뀐다.
“몇 점이에요?”에서
“제가 어디를 고치면 돼요?”로 바뀐다.
그때 아이는 끝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다시 해볼 길이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