덜어내고, 나누고, 뽑아 살피며, 다시살핌으로
회의가 끝나고, 교무실 불이 하나둘 꺼질 때였다.
한 선생님이 내게 말했다.
웃으려 했지만 눈이 젖어 있었다.
“좋은 말인 건 알아요.
근데요… 저희, 더는 못 버텨요.
업무가 폭증하면 누가 책임져요?”
그 말이 칼처럼 박혔다.
과정 중심 배움이든, 나세움 배움이든,
교사가 무너지면 아이도 무너진다.
그래서 이 질문은 ‘반대’가 아니라 ‘경고’다.
“이 길로 가려면, 먼저 사람을 살려라”는 경고.
정답부터 말하자.
업무 폭증 없이도 할 수 있다.
다만 조건이 있다.
“더 많이 하자”가 아니라 “덜어내고 바꾸자”로 가야 한다.
첫째 원칙은 적게 하기다.
모든 것을 다 살피려 들면 무너진다.
과제는 큰 것 하나보다 작은 것 두세 번이 낫다.
기록은 길게 쓰기보다 한 줄 되먹임이 낫다.
평가는 항목을 늘리기보다 핵심 3가지만 본다.
(무엇을 물었나 / 어떻게 나눴나 / 무엇을 해냈나)
둘째 원칙은 함께 하기다.
혼자 다 들고 가면 폭증한다.
되먹임은 선생님만 하는 게 아니다.
짝이 한 줄, 내가 한 줄, 선생님이 한 줄.
이렇게 나누면 교사는 심판이 아니라 길잡이가 된다.
학년·교과 모임이 같은 기준글을 함께 쓰면
매번 새로 만들지 않아도 된다.
셋째 원칙은 뽑아 살피기다.
모든 산출물을 다 꼼꼼히 보는 건 불가능하다.
그래서 일부를 뽑아 함께 본다.
뽑아 살피면 두 가지가 동시에 잡힌다.
첫째, 공정에 대한 믿음이 생긴다.
둘째, 교사가 혼자 떠맡지 않게 된다.
“이건 나 혼자 판단한 게 아니다”라는 울타리가 생긴다.
여기서 믿음(신뢰) 세 가지가 왜 중요한지 드러난다.
사람들은 흔히 “절차를 세우면 일이 늘지 않나?” 하고 묻는다.
반대다.
절차가 없을 때 일이 폭증한다. 기준이 없으면 설명이 끝이 없다.
뽑아 살핌이 없으면 민원이 개인에게 떨어진다.
다시살핌길이 없으면 억울함이 싸움이 되어 매일 새로 터진다.
기준글은 일을 줄인다.
“어떻게 하면 잘 해냄인지”를 미리 밝히면
채점이 아니라 안내가 된다.
뽑아살핌도 일을 줄인다.
개인 민원이 공동 점검으로 바뀐다.
다시살핌길은 더 크게 일을 줄인다.
싸움이 ‘절차’로 바뀌면, 감정노동이 줄어든다.
그리고 꼭 같이 해야 할 것이 있다.
기록을 줄여야 한다.
보여주기용 긴 문장을 버리고,
아이 성장에 꼭 필요한 것만 남겨야 한다.
“더 쓰라”가 아니라 “덜 쓰고 더 돕자”로.
나는 선생님의 질문을 이렇게 다시 듣고 싶다.
“업무가 폭증하지 않게 할 수 있나?”
그 답은 한 문장이다.
할 수 있다. 대신 덜어내고, 나누고, 뽑아 살피며, 다시살핌길을 세워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