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해요?”에서“아이의 길이 보이네요”로
학교 설명회가 끝나고, 복도에서 한 부모가 내게 다가왔다.
손에는 아이의 시간표가 들려 있었다.
종이가 땀에 젖어 구겨져 있었다.
“선생님… 이 제도, 공정한가요?”
잠시 뜸을 들이더니 한마디를 더했다.
“그리고… 예측 가능한가요?”
옆에 있던 아이는 말이 없었다.
하지만 얼굴에 다 쓰여 있었다.
“저, 손해 보지 않을까요?”
이 질문은 투정이 아니다.
살아남기 위한 질문이다.
학교가 바뀔 때마다 아이와 부모가 가장 먼저 잃는 것은
‘안심’이기 때문이다.
안심이 없으면 배움은 시작도 못 한다.
우리는 공정을 오래 ‘점수’로만 생각해 왔다.
같은 문제, 같은 답, 같은 점수.
그게 가장 쉬운 공정처럼 보였다.
하지만 배움이 수업 속에서 해 보고 고치는 일로 바뀌면
점수만으로는 공정을 다 말할 수 없다.
이때 필요한 공정은 절차 공정이다.
누가 더 센 목소리를 냈는지가 아니라,
누구나 같은 길을 밟을 수 있었는지를 보는 공정이다.
절차 공정이 서면, 예측도 가능해진다.
“내가 무엇을 하면 되는지”가 보이기 때문이다.
학생·부모가 원하는 예측은 사실 한 가지다.
기준이 숨지 않고, 길이 흔들리지 않는 것.
그 예측을 만드는 약속은 네 가지면 된다.
첫째, 기준을 미리 보여준다.
시험 끝나고 “이건 아니야”가 아니라,
시작하기 전에 “이렇게 하면 된다”를 알려준다.
그래야 아이는 운이 아니라 노력으로 갈 수 있다.
둘째, 예시를 보여준다.
말로만 기준을 들으면 불안하다.
짧은 좋은 예 하나가 불안을 크게 줄인다.
“아, 이 정도면 되는구나.”
예시는 길을 밝히는 등불이다.
셋째, 되먹임을 약속한다.
점수만 주고 끝내면 아이는 예측을 못 한다.
“다음엔 무엇을 고치면 되나”가 있어야 한다.
되먹임이 있어야 배움이 이어진다.
넷째, 억울하면 다시 살필 길을 연다.
사람이 하는 일엔 실수가 있다.
그 실수를 고칠 길이 없으면
공정은 믿음이 아니라 싸움이 된다.
다시 살필 길이 있으면
억울함은 배움으로 돌아온다.
이 네 가지 약속을 제도로 묶어 주는 것이
바로 기준글, 뽑아살핌, 다시살핌길이다.
기준글은 “무엇을 어떻게 하면 되는지”를 미리 적어 둔 약속이고,
뽑아살핌은 “같은 잣대로 보고 있는지”를 함께 확인하는 약속이며,
다시살핌길은 “억울하면 고칠 수 있다”는 마지막 약속이다.
이 약속이 있으면 학생의 말이 바뀐다.
“손해 볼까 봐 무서워요”에서
“제가 무엇을 하면 되나요?”로 바뀐다.
부모의 말도 바뀐다.
“공정해요?”에서
“아이의 길이 보이네요”로 바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