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의 풍경을 바라보고 있으면, 마음 한쪽이 자꾸 서늘해진다.
늘 학생 인권과 민주시민교육을 외면하던 사람들이, 어느 날 갑자기 16세 투표권을 들고 나와 눈을 반짝인다. 그 변화가 진심에서 비롯되었다고 믿기엔, 그동안의 행보가 남긴 그림자가 너무 길다. 계산된 미소, 던져놓고 보는 제안, 거부하면 덤터기를 씌우는 익숙한 올가미.
이런 장면들 앞에서 우리는 다시 묻게 된다. 정말 무엇을 위한 정치인가.
그러나 정치의 말글로만 대응하면, 우리는 결국 같은 생각틀의 올가미 안에서 몸부림치는 셈이 된다. 그래서 나는 새삼 ‘배움’이라는 낱말을 꺼내 든다.
배움은 누가 위에서 내려주는 지식이 아니라, 스스로 세계를 넓히고 남을 이해하며 스스로를 단단하게 세우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요즘 10대와 20대의 극단화 현상은 단순한 정치 성향의 문제가 아니다.
그들의 세계가 어떻게 좁아지고, 어떤 방식으로 흔들리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신호다.
기사 요약 ① (한겨레, 2024.11.12)
“10대 극우 커뮤니티 확산…혐오·왜곡 정보 반복 노출”
특정 커뮤니티 알고리즘에 장기간 노출된 청소년들이 편향된 정보만 접하며 정치적 극단화가 강화된다는 분석이 나왔다.
기사 요약 ② (경향신문, 2025.03.02)
“사교육업체, 정치 편향 강의 논란…학생 대상 ‘이념 교육’ 의혹”
일부 교육 플랫폼이 특정 정치성향을 노골적으로 주입했다는 비판이 제기되며, 청소년 대상 이념 교육의 위험성이 드러났다.
이 두 사건은 우리에게 조용히 말한다.
아이들이 세상을 바라보는 창이, 때로는 너무 쉽게 왜곡되고 있다는 사실을.
풀이얼개(알고리즘)는 아이들의 시야를 좁히고, 분노와 혐오를 먹이로 삼아 자란다.
마약의 중독성이 위험하듯, 두레(커뮤니티)의 중독성도 위험하다.
그러나 우리는 늘 “교육이 필요하다”는 말만 반복한다.
정작 어떤 배움이 필요한지에 대한 질문은 깊어지지 못한다.
그래서 나는 다시 배움을 생각한다.
배움은 누가 시켜서 하는 것이 아니라, 살아가며 스스로 길을 찾는 힘이다.
배움은 특정 진영의 말글로가 아니라, 스스로 내 삶을 책임지는 느낌(감각)이든다.
배움은 남을 이해하려는 마음에서 시작해, 결국 나를 더 넓은 세계로 데려가는 여정이다.
정치가 학생들을 표로 셈하는 대상으로 삼을 때,
우리는 학생들을 다시 배움의 임자(주체)로 세워야 한다.
정치가 생각틀(프레임)을 올가미로 던질 때,
우리는 그 올가미를 넘어서는 생각(사유)의 힘을 길러야 한다.
정치가 혐오와 분열을 부추길 때,
우리는 서로 뜻을 나누는 사이맺음(관계)의 느낌(감각)을 되찾아야 한다.
배움은 느리다. 그러나 느린 것들은 대개 오래 남는다.
정치가 흔들어도, 미디어가 요동쳐도, 배움으로 자란 사람은 쉽게 휘둘리지 않는다.
그래서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더 많은 교육이 아니라, 더 깊은 배움이다.
그 배움을 누리는 것이야말로 이 혼탁한 시대를 건너는 가장 단단한 힘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