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에서 위기 학생을 어떻게 살릴 수 있을까?

줄세움 수험생 아닌 나세움 배움임자 틀(체제)을 마련하자

학교는 학생을 못 살리는가, 못 살리게 된 것인가


“오늘 대한민국 학교는 위기 학생을 살릴 수 있을까?”라는 물음은 능력 평가가 아니라 구조의 고백에 가깝다. 최근 기사와 칼럼은 학교가 감당하기 버거운 위기, 교사에게 쏠린 과중한 책임, 외부 전문기관 중심의 대응을 반복해서 말한다. 맞는 진단이다. 그런데 이런 이야기가 자주 놓치는 핵심이 있다. 학교가 무능해서가 아니라, 학교를 ‘수험생 체제’로 고정해 온 구조가 학생을 살릴 여지를 빼앗아 왔다는 사실이다.


수험생 체제에서 학생은 배움의 주체가 아니라 관리 대상이 된다. 성적·출결·기록이 학생을 규정하고, 교사는 관계를 맺는 사람이 아니라 성취를 관리하는 행정노동자로 밀려난다. 그러니 위기 학생은 ‘문제행동’, ‘부적응’, ‘위험군’이라는 이름으로만 보이기 쉽다. 학생의 삶과 맥락은 흐려지고, 남는 것은 조처와 보고다. 학교가 학생을 살릴 수 없는 것이 아니라, 살릴 수 없게 짜인 구조 속에서 움직이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학생을 배움의 주체로 되돌리는 순간, 학교는 전혀 다른 공간이 된다. 결석과 침묵, 무기력은 ‘게으름’이 아니라 삶이 보내는 신호로 읽힌다. 교사는 점수의 관리자가 아니라 학생의 삶을 해석하는 전문가로 다시 선다. 관계와 시간이 배움누림(교육)의 핵심 자원으로 인정될 때, 위기 신호는 ‘문제’가 아니라 ‘도움 요청’이 된다. 무엇보다 학교는 학생의 일상을 가장 가까이서 지켜보는 유일한 곳이다. 이 일상성은 어떤 외부기관도 대신할 수 없는 회복의 바탕이다.


정책은 이 전환을 따라야 한다. 교사에게 관계의 시간을 돌려주는 행정 경감, 학교 안에서 학생을 붙들 수 있는 지원 인력과 협력 구조, 성적 중심 평가에서 배움의 과정 중심 평가로의 이동이 필요하다. “학교는 학생을 살릴 수 없다”는 말 대신, “학교는 학생을 살릴 수 있어야 한다”는 전제를 중심에 세우자. 학생을 수험생이 아니라 배움의 주체로 되돌릴 때, 학교는 다시 학생을 살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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