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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교육’으로 학생이 ‘배움’을 즐기지 못하니까

김두루한(참배움연구소장)

저마다 말하는 ‘학교 교육’ 안에 어떤 생각이 전제돼 있을까


   우리는 오늘날 학교 교육 현실 속에서 좌절하고 절망하고 있지 않은가?   ‘교육부’를 비롯한 교사들의 교원단체, 학부모들의 학부모회 등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모임과 많은 국민들이 걱정을 하면서도 어디서부터 손을 대어 수습하기도 어려울 정도가 된 듯하다.  그래서 4351(2018)년 새해를 맞이하며 새삼 묻게 된다. 오늘 대한민국에서 저마다 말하는 ‘학교 교육’ 안에 어떤 생각이 전제돼 있을까?


학교 교육은 국민이 반드시 알고 실천해야 할 합의된 기초 지식과 기능을 전하는 일이다


 학교가 ‘교육’의 기능을 충분히 담당해 왔다고 긍정으로 평가하는 쪽은 말한다.  우리 중·고교 교육은 욕먹을 이유가 없다고 한다. “학교교육은 국민이 상호 협력하는 공동체적 삶의 영위에 필요한 학습을 한다. 이를 위해 헌법에 교육 기회균등의 원칙을 정했고, 정부에 평등한 교육 시행의 책임을 부과했다. 학교 교육은 국민이 반드시 알고 실천해야 한다고 합의된 기초적 지식과 기능을 전하는 작업이다. 초보 단계 교육은 옳고 그름을 확실하게 가르쳐야 한다. 정답이 있어야 하며, 생활에서 분명히 실천하도록 가르쳐야 한다.”고 하면서 전국의 학생이 동일한 교과서로 진도를 맞춰 배우는  학교교육은 붕어빵을 찍는 교육이 옳다는 것이다.

 

학생의 잠재력을 일깨워 돕지 않는 우리 중·고교 교육은 욕먹을 이유가 없을까?


  다른 한 쪽은 요구하고 있다. "학교가 경쟁으로 학생들을 서열화하고, 사교육의 원인을 제공한다"며 "AI 시대에는 정답보다 문제를 찾는 질문력을 길러야 한다", "정답이 없는 교육을 해야 한다"고. 또  "학교가 창의성을 죽인다", "붕어빵을 찍는다"고 하면서. “현 교육제도는 시험만을 위한 공부,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절망적인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21세기가 요구하는 학생의 잠재력을 일깨워주고 도와주는 게 아니라 창의력마저 싹을 자르고 있지 않은가? “아이들이 스스로 경험하고 깨닫게 해야 창의적 인재가 나오고 노벨상 수상자도 나올 수 있는 것”이라며.


"학교가 창의성을 죽인다"는 것이 오해일까? 


  "학교가 창의성을 죽인다"는 것이 오해일까?  학교는 보통교육을 하는 곳으로 특정 학생을 대상으로 한 영재교육 기관이 아니라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기 때문이며 학교교육과 학교 제도의 취지와 목적에 대한 몰이해를 드러낸 무책임한 생각이나 주장일까? 이 붕어빵 찍기에 실패했기 때문에 사회가 가치 충돌과 무질서로 혼란에 빠져버린 것이고 우리나라는 좁은 영토에 많은 인구가 살기 때문에 모든 부문에서 치열하게 경쟁할 수밖에 없는데, 이것을 학교가 경쟁을 가르치기 때문이라고 비난하는 것은  주객이 도치된 셈일까? 

 무엇보다 이처럼 '교육'의 풍토 속에서 볼 것이 아니라 학생의 처지에서 '배움권'을 누리도록 돕는지를 봐야 하지 않을까? 배움은 잘려나가고 실제 삶에서 가르칠수록 배움을 무너뜨리는 결과만 낳는다면 어떨까? ‘교육과정(교과서)’를 들어 말하면, 지난 해 한국사 국정 교과서 파동에서 보듯이 ‘교육과정(교과서)’은 교육 주체가 국가일 때 필요한 것일 뿐 학생의 처지에서 배움권을 전혀 생각하지 않은 것이 아닌가?


아직도 학생은 안중에도 없이 '교육'을 말하며 학교 교육 제도를 그대로 두어야 할까?


  아직도 '교육'을 말해야 할까? 도대체 학생은 안중에도 없는 오늘날 교육 제도를 그대로 두어야 할까? 배움을 낳고 퍼뜨리려는 좋은 뜻을 가진 사람들이 하는 일이 교육인데, 아이들이 스스로 경험하고 깨닫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과연 '교육' 때문에 고통스러운 대한민국을 '교육' 덕분에 행복한 대한민국으로 만들 수 있을까? 무엇보다 "태어난 아이의 잠재력을 일깨워주고 도와주는 게 필요하고 아이들이 스스로 경험하고 깨닫게 해야 한다"는 '교육' 타령을 하면서 정작 그 방안을 밝히지 못하는 ‘교육전문가’들의 태도야말로 절실한 현실 상황에 비추어 너무도 안이한 무책임의 극치가 아닌가? 


‘학교 교육’으로 학생이 ‘배움’을 즐겼는가


  그렇다면? 마땅히 혁명적으로 ‘교육’이란 관점에서 벗어나서 ‘배움’으로 생각을 바꾸어야 할 때다. 이제는 똑같은 교육과정, 교과서를 강요하지 말자. 획일화된 교육을 ‘교사’에게 강제해선 안 되겠기에. 이젠 학생을 ‘교육’ 대상으로 보려는 좁은 눈에서 벗어나야 한다. 배움의 당사자가 아이이고 학생인 만큼 ‘교과서’를 참고자료로 활용하는 세계적 추세를 따라야 하듯. 이미 25년 전쯤 서태지가 교실이데아에서 ‘이제 그런 가르침(교육)은 됐어. 그걸로 족해 족해’라 노래한 대로. 

  ‘교육’은 따라배움, 억지 배움, 거짓배움이니까. 학생이야말로 ‘배움’을 즐기는 임자(당사자)가 되어야 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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