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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고 행동해야 하니까

김 두루한(참배움연구소장)

우리는 왜 배워야 하는가       

  

 우리는 ‘왜’ 알아야 하는가? 잘 살려면 잘 알아야 하기 때문이다.  어떤 일을 잘 하려면 ‘대상(그것)’에 대해 잘 알고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바로 ‘아는 것이 힘’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앎에 바탕을 두고 사람답게 살고자 애쓴다. 내가 스스로 앎을 찾아내는 ‘알아냄’, 널리 공감대를 이룩하는 ‘알아줌’, 알고 있는 것을 스스로 실행하는 ‘알아함’의 능력을 길러야 하는 것이다. 이 가운데 ‘알아냄’은 더 큰 앎으로 나아갈 수 있게 하며 스스로 앎을 구성하고 남이 구성한 앎을 받아들이는 힘의 바탕이다.

     

배움이란 앎(지식)’은 어떤 것일까      


 ‘앎(지식)’에 대해 우리는 새삼 다시 묻지 않을 수 없다. 도대체 ‘앎’은 어떤 것을 말하는가? 우리가 물이 흐르는 도랑을 건넌다고 생각해 보자. 도랑을 걸어서 건널지 뛰어서 건널지 헤엄쳐 건너야 하는지는 손수 가서 겪지 않는다면 말(글)’로 듣거나 읽을 텐데 그때는 상황이 어떠한지를 좀더 자세히 알아야 한다.

  배움이란 앎은 이처럼 ‘(도랑이) 있음’, ‘(도랑이) 어떠함’, ‘(도랑에 물이 흐름)어떠함1-(도랑의 폭이 넓지 않음) 어떠함2’ 의 맺음과 같이 감각과 관계성, 복합적 관계 맺음의 3단계로 엮어지는 마음의 움직임이라 할 수 있다.       


'알아냄'을 위해 우리가 할 일은     


 우리는 ‘어떻게’ 알 수 있을까? '알아냄'을 위해 우리가 할 일은 무엇인가?

 하나는 온갖 일을 몸소 겪으며 헤아림으로 안다. ‘헤아림’은 옛말이 ‘혀아림’으로서 ‘혀로 아는 것’을 뜻한다. 혀에 전해지는 느낌을 ‘~의 맛’으로 알면서 ‘어떤 것’에 대한 앎으로 이어지고, 이것을 바탕으로 ‘어떤 것’에 뜻을 내거나 둘 수 있게 되고, 이에 따라 ‘어떤 것’을 함으로 나아갈 수 있다고 본다. 

  다른 하나는 생각하는 마음에 바탕을 두고서 ‘말’을 빌려서 알고, 알리는 알음알이로 안다. 알음알이는 말을 빌려서 이루어지기 때문에 말을 배울 수 있어야 한다. 그래서 우리는 스스로 헤아림의 알맹이나 스스로 헤아림을 넘어서는 새로운 갖가지 앎들(논리, 인문, 종교, 예술, 수학, 과학, 기술)에 관해 ‘알음알이’로 창조하고 소통한다.     


  배우고 행동해야 힘인 것이다     


   우리는 알아보고, 알아들으며, 알아채고, 알아차리기의 힘을 길러야 한다. 앎은 곧 배움이라. 배워 알고 나서 행동해야 힘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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