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대한민국 ‘학교 교육’에 만족하지 못하니까

김두루한(참배움연구소장)

 ‘교육’을 학교에만 의지한 것은 아닌가


‘학교 교육’이 무엇일까? 그동안 우리는 제대로 '교육'의 뜻을 물었던가? 또 ‘학교’란 무엇인지도? ‘학교 교육’이 지닌 문제를 과연 절실히 묻고서 생각해 보았던가? 무엇보다 우리들의 미래인 학생의 처지에서. 우리는 학생들의 참다운 배움과 이것을 뒷바라지하는 ‘배움 틀’을 마련하고자 애썼던가? 이제 ‘교육(가르침)’의 뜻을 새삼 묻지 않을 수 없다. 학생들에게 희망을 찾아주고 그들의 '고통'을 더 이상 외면할 수 없기에.


체제에 순응할 것을 강요하는 근대 국가의 국민 만들기에 힘쓰지 않았던가


 “교육은 개인에게 자아를 실현하고 인간으로서의 권리가 무엇인지를 알 수 있도록 하는 힘을 주지만, 사회 체제를 유지하기 위한 이데올로기를 전수해 인간이 체제에 순응하도록 하는 힘도 가진다.”      

 일본 메이지 시기의 교육은 어떠한가? 후자의 힘이 훨씬 강하게 작용했으며 그 바탕에 교육칙어가 존재했다. 

 과학을 손에 넣은 ‘인간의 시대’는 인간이 인간을 만들어내는 것에도 큰 관심을 갖게 되었다. 이런 의미에서 근대는 ‘교육의 시대’이기도 했다. 또한 신분제를 폐지하여 개인을 분리하고, 개인을 통합하여 ‘국민’을 형성하였다. 이는 근대가 만들어낸 ‘국가’에 있어 필요한 것이었다. ‘교육의 시대’는 동시에 ‘학교의 시대’이기도 했다. 이 시대의 도래로 ‘문화유산의 의도적 전달’의 ‘의도’의 내실이 현격하게 정리·강화되었으며, 조직화·계획화가 이루어졌다. 그 주체는 ‘국민’을 새로이 만들어낼 필요가 있는 ‘국가’였으며, 또한 ‘국가’를 짊어진 ‘국민’이었다.      


 ‘근대 학교 교육’의 역사에서 학생들에게 희망을 안겨다 주지 못한 까닭은


 1872년 학제(學制)의 공포를 기점으로 일본이 ‘학교의 시대’에 들어선지 150년 가량이 되었다. 우리 학교 교육 역사는 어떠한가? 130여 년 전 ‘근대 학교 교육’을 시작하고 ‘조선’을 일으키겠노라고 말한 지 불과 10여 년 지나는 동안 국권을 잃고서 군국주의 일본 세력이 내세운  ‘조선교육령(1911)’ 아래 우민화 교육으로 치달은 지 30여 년, 말과 글을 빼앗긴 채 성과 이름마저 갈고 일본 사람이 될 뻔하지 않았던가? 마침내 선열의 꿋꿋한 기상과 헌신으로 1945년 나라를 도로 찾은 광복을 맞아 학교 배움 현장을 새롭게 일으키며 한국교총(조선교육회)이 ‘새교육’을 내세웠고 군사 독재와 4월 학생 혁명을 거치며 '교원노조'가 자리잡지 못한 채 1980년 대 이후  교사 단체인 전교조가 ‘참교육’을 내세운 뒤 일정하게 보수 진보 이념의 갈등 대립 구도 속에서 정작 '입시위주 교육'과 '사교육'의 적폐를 벗어났던가? 민주화와 세계화를 내세운 문민정부가 20여 년 전 마련한 5.31 교육대개혁(1995) 뒤로도 20여 년. 도대체 우리들의 미래인 학생들에게 희망을 안겨다 주지 못한 까닭은 무엇일까? 


‘교육혁신’, ‘학교혁신’을 내세우지만 과연 학생들이 참다운 배움을 맛보도록 도울까


 잠시 돌이켜 본다.  21세기 대한민국 학교 교육 현장에서 교사로서 몸으로 겪는 학교 현실은 그동안 수없이 내세워진 교육 정책이 내건 목표와 크게 달라 절로 되뇌지 않을 수 없다. ‘교육’은 정녕 참다운 민주공화국 대한민국의 현실을 바꾸는데 이바지했던가? 

 교육(가르침)이란 갑이 을에게 무언가를 설명하거나 지시한다는 뜻이 아닌가? 흔히 대한민국 교육제도의 가장 큰 병폐라 하는 ‘주입식’에서 보듯이. 태어난 아기에서 청소년기에 이르도록 ‘입 벌려, 먹어’하며 먹이는 주입식. 여기엔 어떤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에게 무슨 일인가를 하도록, 혹은 그들에게 이로운 일을 하도록 만드는 과정이라는 생각이 담겨 있다. 다만 그들이 생각한 것을 ‘주입’할 뿐. 


스스로 다짐한다, 학생들이 그동안 맛보지 못한 참다운 배움을 맛보도록 도울 것임을


  그래서 1987년 헌법을 바꾼 뒤로도 30여 년, 온 겨레가 자유, 평등의 행복한 삶을 고루 누리며 ‘교육’에 만족하는가? 결코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그동안 때로 우리를 설레게 하는 ‘새로움’이나 ‘혁신’이란 말이 덧붙은 ‘혁신 학교’를 들어보자. ‘교육혁신’, ‘학교혁신’의 외침이 커져가는 듯하여 기대가 된다. 문재인 새 정부 교육정책 기조도 학교 자율화를 내세우며 ‘혁신학교’를 늘리겠다 한다. 

 과연 그동안 학교 현장에서 교사들부터 워낙 관리와 통제의 틀 속에서 지냈기에 과연 학교공동체에서 권한이 나눠지고 맡기게 되면 교사들이 움직임에 나설지 의문이 든다. 하지만 믿는다. 그야말로 학교에서 참배움꽃을 피도록 나설 수 있다고. 스스로 다짐한다. 나부터학생들이 그동안 맛보지 못한 참다운 배움을 맛보도록 도울 것임을.


 

 



매거진의 이전글 '교육' 받을수록 우리를 버리니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