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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교육'이 아니라 '행복한 배움'을 즐겨야 하니까

김두루한(참배움연구소장)

우리 ‘교육계’의 생각 없는, 오래되고 '나쁜' 버릇은?


 교육부 관료들과 교사 단체를 비롯한 우리 ‘교육계’의 생각 없는, 오래되고 '나쁜' 버릇을 어떻게 고쳐야 할까? 얼치기 든사람(지식인)들이 '학벌'을 내세우고 '학연'을 맺어 '학교'와 '언론사'에서 '참'이 드러나는 교과서나 기사가 아닌 ‘거짓 교과서’나 ‘기사’로 사실 전달마저 제대로 하지 않은 경우가 많았다. ‘꼰대’와 ‘기레기’ 들이 거짓말을 일삼았다. 


 더욱이 ‘한자적기’를 내세웠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를 밝힌 헌법 제1조와 달리 대한민국의 '국무총리'를 지냈거나 '국회의원'을 지낸  사람들이 ‘국어기본법’을 어기며 ‘초등학교 한자 교과서 병기’를 내세우고 이것을 헌법재판소에 제소하는 일까지 저질렀다.


  요즘은 대놓고 ‘영어쓰기’를 하고 있다. 서울교육청 직무연수 교육과정을 보니 교과목과 교수요목이 영어를 한글로 적은 빌린말을 쓰고 있었다. 비주얼씽킹ᆞ, 체인지메이커ᆞ,디자인씽킹ᆞ프로세스ᆞ,무브먼트ᆞ유쓰망고, ᆞ코뮤니코ᆞ게이미피케이션ᆞ, 보드게임 플레이ᆞ아이디어, 다즐에듀... 서울시나 구청에서 모둠으로 진행하는 행사 때도 탁자별진행자를 퍼실리테이터라 한다. 낯선 말이고 다른 말로 바꾸어 써도 되는 불필요한 말이 아닌가?    


 ‘입시제도’에 얽매인 ‘(초중등) 교육’의 또다른 실상은 어떠한가?    


(1) 

 ① 누구나 배우면 성공할 수 있다는 환상을 심는다. (입시제도의 속뜻은 끝까지 밝히지 않는다)

 ② 한말글 배움(국어교육)은 삶으로부터 동떨어진 채 문법 등으로 어렵게 배운다.

 ③ 신문*방송 등에서도 빌린말(차용어)를 마구 쓰며 용어는 되도록 어렵게 쓴다.

 ④ 민중이 깨어나면 큰일 난다.   


  (1)에서 보듯이 무엇보다 ‘교육’은 돈을 주고 사는 상품(교환가치)이었다. ‘내 돈 내고’ 학교에 보내거나 과외를 하고 있으니까. ‘상대평가’로 ‘일정 수의 패배자’는 ‘실패자’로 낙인찍히며 ‘불량품’이나 ‘함량 미달 학생’이 생산됐다. 책임은 ‘학생(배움이)’에게 돌리며 ‘머리가 나쁘다’, ‘노력을 덜 하였다’, ‘상대평가 때문에 어쩔 수 없다’는 등의 이유를 붙여. ‘교육’은 처음부터 일정 수의 학생들이 불량 등급을 받게 되어 있는 과정이었다.


 1980년대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 1990년대 ‘됐어 됐어 이제 그런 가르침은 됐어’ 에서 보듯이 점점 더 가열되는 경쟁 입시의 도가니 속에서 학생들은 꼼짝하기 어려웠다. 20세기 성장 사회에서는 퍼즐형(학력) 사고와 정보를 처리하는 힘이 요구되었다. 그래서 학교 교육도 하나의 정답을 찾을 때는 조금이라도 ‘빠른 머리 회전’으로 정보를 처리하는가에 관심이 쏠렸다. 정답을 찾고 알아맞힐 수 있는 ‘보이는 학력’을 기르고자 했다.


 ‘교육(가르침)’으로  ‘창의융합 인재’를 기를 수 있을까?


“고용 없이 경제 활동을 하는 세상이 오고 있습니다. 노동과 생산의 틀이 바뀌는 사회입니다. 하지만 사회는 아직 이러한 시스템에 적합한 삶의 안전망을 만들지 못한 상태입니다. 시장은 저만치 앞서가는데 법과 질서는 아직 산업화 시대에 머물러 있습니다. 이 사이에 불안이 존재하는 것입니다. 기술이 가져다 준 풍요를 한 줌도 안 되는 사람들이 돈을 버는데 쓰이게 할 것인가? 아니면 사회 전체의 풍요로 가져 갈 것인가는 사람들이 어떤 질서를 만드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이처럼 두루누리(유비쿼터스), 모바일 인터넷, 인공지능과 기계학습을 특징으로 하는 제4차 산업혁명의 등장은 사회에 미치는 충격차가 클 것으로 예상된다. 육체기술, 인지 기술을 요구하는 직업은 쇠퇴하고 분석과 대인관계 기술을 요구하는 직업이 늘어나기 때문에 이에 필요한 역량을 갖추기 위한 교육계 혁명은 필수다. 물리학, 디지털, 생물학 등 과학 기술의 경계를 넘어 모든 기술이 융합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교육 혁명’은 아니다. ‘답’이 있음을 강조하는 ‘교육’이 아닌 것이다. ‘교육 혁명’이란 말치장으로 ‘지식 전달’하는 과정이 바뀔까? 눈여겨보라. ‘교육(가르침)’으로 학생들이 미래 시대에 쓸 만한 남다른 생각을 기를 수 있을까? 바야흐로 ‘창의융합 인재’를 위한 새로운 틀이 필요한 것이다.  자율과 창의의 다양한 배움틀(체제)을 필요로 한다. 


‘배움을 즐기는 행복 교육’일까? 행복한 배움으로 소통과 어울림을 즐겨야


 제4차 산업혁명에 따라 뿌리(근본)부터 바꾸자는 ‘교육개혁’ 요구가 커지자 교육부도 2015 개정 교육과정을 밝혔다. 또 미래 사회가 요구하는 창의융합형 인재를 양성하는 교육과정이라며 ‘배움을 즐기는 행복교육’을 내세웠다. 하지만 과연 2015 개정 교육과정과 연계된 대입제도로 과연 대한민국 사람들이 이전과 달리 행복해질까? '행복'과 '교육'을 억지로 끌어다 붙여 써 버리면 행복해질까? 오히려 '고발당한 학교' 움그림(동영상)을 보면 잘 나오듯이 여전히 불행해지리라 여겨진다. 


 21세기는 제4차 산업혁명에 따른 요구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성숙 사회가 아닌가? ‘유연한 머리’로 정보를 편집하는 힘이 필요하다고 하겠다. 정해진 답이 아닌 새로운 답을 찾아가야 하는 상황에선 레고형 사고와 ‘정보 편집력’이 필수 기량이기 때문이다. 모두가 수긍하는 답을 만들어 내는 힘이 필요한 것이다. 정답은 하나가 아니며 조합 방법에 따라 무궁무진하다. 그런 가운데 자기 나름의 세계관을 만들어낼 수 있느냐 없느냐가 요구된다.


 따라서 이젠 적어도 ‘배움을 즐기는 행복 교육’이 아니라 소통(묻고 답하며 읽고 쓰기)과 어울림을 즐기는 행복 배움 정도로 말해야 옳은 말이 될 것이다. 단순히 퍼즐 조각을 정해져 있는 장소에 넣는 것이 아니라 레고 블록을 새롭게 조립하듯이. 이처럼 저만의 답을 내놓을 수 있는 ‘배움 혁명’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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