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두루주 Oct 07. 2020

청소부로 일하는 여자

내 생애 딱 한 번 누군가를 인터뷰해 본 일이 있는데, 때는 대학교 3학년 즈음, 한창 페이스북 페이지에 Humans of Seoul이 유행하고 있을 때였다. Humans of Seoul은 Humans of 시리즈 중에 하나로 서울에서 만난 사람들의 인터뷰가 올라오는 곳이었다. 각 시리즈는 Humans of 뒤에 각기 다른 장소를 달고 있으며, Humans of New York, Humans of Amesterdam 등 여러 장소에 걸쳐 그곳에서 만난 사람들의 인터뷰가 올라왔다. 시초는 뉴욕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중요하지 않다. 당시 내게 중요한 것은 드디어 우리 학교에서 Humans of 페이지가 생겼다는 것이었다.


페이지 운영자는 내가 친하게 알고 지내는 같은 과 선배였다. 그 선배는 약간 처진 눈에 동그란 안경을 써서 그 모습이 흡사 <내 친구 아서>에 나오는 다람쥐처럼 보였다. 나중에는 머리를 길러 단발을 고수했지만 대머리 아서가 머리를 기른 듯했다. 미안하지만 역시 이마저도 중요한 정보는 아니다. 정말 중요한 것은 아서같이 생긴 이 선배가 페이지를 운영하고 얼마 뒤에 다음 운영자를 찾는다는 것이었다. 마침 나는 인터뷰에 꽤나 흥미를 보인 참이었다. 언제나 새로운 사람을 만나서 그에 대한 글을 쓰는 것은 영감을 주는 기쁜 일이었다. 나는 선배에게 다음 운영자로 나를 선뜻 추천했다. 여기에는 꽤나 그럴듯한 이유가 있었다. 나는 그 선배를 알고 지낸지도 좀 지났고 우리는 같이 독서토론 모임을 꽤나 오래 했기 때문에 (선배가 이끄는 독서토론 모임의 열정적인 참여자였다.) 나의 책임감을 오랜 시간 보고 그 운영권을 나에게 내어줄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나를 오래 본 사람은 나의 장점을 알아줄 만큼 단점도 알아볼 수 있는 사람이다. 나는 그 사실을 잊고 있었다. 내겐 기가 막힌 장점과 단점이 조화롭게 내재되어 있는데, 하나는 겁을 먹지 않고 일을 시작해본다는 것이고 또 하나는 그렇게 시작한 일이 너무나도 많아 모든 것이 흐지부지된다는 것이었다. 말을 하지 않아도 무엇이 장점이고 단점인지는 알 수 있을 것이다. 나는 나의 그러한 점을 비밀처럼 간직했건만 나를 오래 본 사람은 나의 어떤 점이 넘치고 어떤 점이 부족한지를 간파했다.


선뜻 나 자신을 다음 운영자로 추천한 나에게 선배는 말했다.


"음... 그러면 인터뷰 샘플을 받아보면 좋겠는데. 학교에서 마주친 사람들 중에 두 명 정도를 인터뷰해보고 인터뷰 내용이 상징적으로 보일 수 있게 사진도 찍어오면 좋겠어. 네가 보내주는 샘플이 그대로 페이지에 올라간다고 생각하고 샘플을 두 개 정도 만들어서 메일로 보내줄래?"


나는 순간 선배가 참 치사하다고 생각했다. 뭐 기업 운영권을 넘겨주는 것도 아니고 사업을 물려받겠다는 것도 아니고 샘플을 요구하는 건 좀 친한 사이에 아니지 않나 하는 마음이 들었다. 그리고 이 불순한 마음은 이내 직접 사람들을 만나 인터뷰 요청을 하면서 하나둘씩 깨지기 시작했다.


우선, 캠퍼스 안에서 아무나 붙잡고 인터뷰를 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 본디 인터뷰라는 것은 누구를 인터뷰할 것인지, 그 누구에 해당하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그 사람의 장점은 무엇이고 단점은 무엇인지, 어떻게 하면 그 사람이 돋보이게 인터뷰를 할 것인지, 이를 위해 어떤 질문을 준비해야 하는지, 답변에 꼬리를 달 수 있는 추가 질문으로는 무엇이 좋은지 등을 생각해서 사전에 기획이 필요한 작업이었다. 그런데 캠퍼스 안에서 무작위로 만나는 사람들을 인터뷰하려니 걸리는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일단 그들은 내게 내어줄 시간이 없었으며 낯선 이에게 도를 아십니까로 몰리지 않으면 다행이었고 더 절망적인 것은 그들이 인터뷰 요청에 응해도 내가 물을 질문이 없다는 것이었다.


라도 누가 나를 붙잡고 인터뷰를 해달라고 해서 가던 길을 멈추고 멀뚱멀뚱 있는데 질문까지 답답하게 한다면 바로 자리를 뜨고 싶을 것 같았다. 그때부터 나는 질문과 답변이 예상가는 인물을 찾았다. 사진만으로도 누구인지 알 수 있는 사람. 어떤 이야기가 나올지 예상이 가는 사람. 그래서 즉석에서도 질문을 만들어낼 수 있는 사람 말이다. 이렇게 하여 나는 캠퍼스를 청소하고 있던 여자에게 다가갔다.


50대 중반으로 보이는 그 여자는 학교의 하청업체에서 고용된 청소부였는데 교내 근로 조건 때문인지 머리에는 정해진 두건을 쓰고 몸에는 정해진 작업복을 입고 있었다. 손에는 철쭉 색 고무장갑을 끼고 그 손으로 걸레질을 하며 지나가는 학생들을 본 체 만 체했다. 학생들이 그 여자를 본 체 만 체했기 때문에 여자는 저절로 시선을 거두고 유리창 닦기에 더욱 몰두했다. 나는 그 유리창 닦기를 방해한 인물이었다.


"안녕하세요... 저는 이 학교 학생인데요. 지금 작은 프로젝트를 하나 하고 있어요. 캠퍼스 안에 있는 사람들을 인터뷰하고 있습니다. 괜찮으시면 혹시 잠시 이야기 나누어도 될까요?"


여자는 나의 방해에 불편해하면서도 자신의 거절로 상처를 주고 싶지 않아 이야기를 이었다.


"아... 그게... 지금 일하는데... 근데 그게 뭐 하는 건데요? 뭐 오래 걸려요?"


"아니요!! 금방이에요! 잠깐 이야기만 나누고... 한 10분이면 돼요!"


나는 머뭇거리는 여자의 말꼬리를 잡고는 10분이면 된다며 떼를 썼다. 그런 나를 보며 여자는 마지못해 알겠다는 듯이 인터뷰에 응했다. 막상 여자가 나의 인터뷰이가 되니 그 순간부터는 다시 말문이 막혀 무엇을 물어볼지 몰랐고 나는 그저 걸레를 쥐고 있는 손이 힘들어 보여 뻔한 말을 던졌다.


"청소하는 건 힘들지 않으세요?"


"힘들죠. 근데 힘든 것도 힘든 거지만 참 청소일 한다는 게 그렇잖아요. 뭐 좋은 직업도 아니고, 어디 자랑하고 싶은 일도 아니고. 그냥 먹고살기 위해 하는 거죠."


그 순간 나는 으레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이 위로랍시고 던지는 말 다운 말을 했다.


"에이 그래도 요즘 직업에 귀천이 없다는데 청소 일이 어때서요."


여자는 그 말을 듣고 이 아가씨 세상 곱게 컸네 하는 표정을 보였다. 그러며 캠퍼스에서 청소를 하고 있으면 여자를 주위로 젊은 학생들이 공부하는 모습, 친구들과 수다 떠는 모습, 점심을 먹으러 가는 모습, 커피를 손에 쥐고 노트북을 들고 가는 모습들이 나타났다 사라지며 얼마나 여자를 때때로 작아지게 하는지에 대해 이야기했다. 이어 여자는 자신의 어린 시절을 회상하는 듯했고 공부를 더 했으면 좋았겠다는 말도 붙였다.


그 얘기를 들을수록 나는 어쩐지 숙연해져 다음 질문을 무어라고 물어야 할 자기가 도통 생각이 안 났다. 마침 약속된 시간은 금방 흘러 여자가 먼저 말을 꺼냈다.


"그럼 이 정도만 하면 되나요? 더 얘기해야 돼요?"


그 질문에 나는 황급히 작별 인사를 고하고 선배와 약속한 여자의 사진을 한 장 찍은 뒤 집으로 돌아왔다. 사진 속에는 빨간 고무장갑을 낀 두 손이 가지런히 모아진 채 있었다. 사진을 부탁한 나에게, 여자가 얼굴이 나오지 않을 것을 당부해서였다.


여자는 인터뷰를 마치고 어딘가로 숨고 싶어 했다. 나는 그 사실이 못내 죄송스러웠다. 보통 좋은 인터뷰를 마치면 얼굴을 선뜻 공개하고 나는 이렇게 좋은 사람이라며 어깨가 떳떳해질 텐데 나는 여자의 마음을 쥐구멍에 숨고 싶게 만들어버린 것 같아서 돌아오는 내내 기분이 좋지 않았다. 확실한 건 나는 좋은 인터뷰어는 아니었다.


이후 선배와 나는 자연스레 인터뷰에 대한 얘기를 거두었다. 선배가 요구한 건 두 명의 인터뷰 샘플인데 나에겐 나머지 한 명을 더 인터뷰할 용기가 금세 떨어졌기 때문이었다. 나는 그렇게 풀이 죽고 나서야 샘플을 요청한 선배가 참 현명했노라 생각했다. 나는 너무도 어리고 미성숙해서 캠퍼스 안에 있는 휴먼들을 내 시야로 다루기엔 생채기만 내다 끝낼 모양 같았다. 그렇게 나의 첫 인터뷰는 여자의 고무장갑을 찍은 사진과 함께 남아 마지막 인터뷰가 되었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 한 번뿐인 마음으로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