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 교수님

by 두루주

코로나 시대에는 사람들을 온라인으로 만난다. 학교도 온라인 수업, 만남도 영상통화, 음식도 주문 배달, 여행도 랜선 여행. 대부분 모든 것들이 온라인으로 옮겨가는 와중에 혼란스러운 사람들이 많다. 그중 M 교수님도 작은 혼란스러움을 겪고 있다. 그는 학생들을 앞에 앉혀놓고 가르치던 코로나 이전 시대에서 지닌 버릇을 코로나 이후 시대에도 가지고 있다. 카메라를 앞에 두고 답변이 오지 않는 질문을 계속하는 것이다. 카메라 앞에서 무엇을 물어야 하는지도 조금 혼란스럽다. 온라인의 세계는 내가 있는 곳 너머 화면 저 편 상대방이 누구인지, 몇 명인지, 있다가도 어디로 사라질지 출처와 행방을 알 수 없다. 그래서 대부분의 어디 있는지도 모르는 학생을 위한 질문은 돌고 돌아 다시 그에게로 돌아온다.


M 교수님은 학점 은행제를 하며 만난 교수님이다. 교수님과 나는 서로의 얼굴을 본 적도 없고 실시간으로 대화를 나눈 적도 없지만 나는 영상을 통해 교수님을 만났다. 학점은행제 기관에서 미리 녹화해둔 강의 화면으로 교수님을 소개받고 강의를 세 시간 정도 들었다. M 교수님은 강의 첫 시간마다 자신의 이름을 크게 말하여 소개한다.


"안녕하세요. 여러분, 언어학 개론을 맡은 M입니다." 그는 이름 세 글자를 천천히 그리고 크게 발음한다. 그가 강의할 때 꼭 기억해야 하는 소쉬르라는 언어학자를 소개할 때만큼 강조를 한다. 나는 수업 두 차시 만에 그 이름을 외워버렸다. 강의마다 이름을 크고 분명하게 이야기한 뒤, '이제는 다 외웠겠지요? 좀 유명한 사람이라 알아야 됩니다.'라는 멘트를 붙였기 때문에 웃음이 나와서 외워버린 탓이다. 그는 중요한 정보에 위트를 가미해서 웃음으로 기억하게 만드는 능력이 있다.


언어학 개론에서 언어학자보다 내 앞에 있는 교수님의 이름을 아는 것이 더 중요하지. 그럼 그렇고 말고. 속으로 생각하며 웃는다. 내 웃음을 못 보는 화면 속 교수님은 내가 웃건 말건 녹화된 그 시간 그 장소에서 계속 말을 이어간다.


이번 시간은 문자언어의 특성을 토대로 한글의 특징을 알아보는 시간이다. 문자 언어는 표현하고자 하는 대상을 있는 그대로 비슷하게 따라 해서 표기하는 방법(상형문자-한자), 말소리의 음절만 표현하는 방법(음절 문자-히라가나, 가타가나), 말소리의 음소를 표현하는 방법(표음문자-한글)이 있다. 한글은 이 중 표음문자에 해당하지만, 자음의 모양은 발음기관(혀 모양)을 본떠서 만들고 모음은 하늘, 땅, 사람의 모양을 본떠서 만들었이기에 상형 문자의 원리를 지니고 있다.


M 교수님은 칠판에 ㅣ 을 그리고 양 옆에 점을 찍는다. *ㅣ*

이어서 ㅡ 를 그리고 위아래로 점을 찍는다.


*

*


그리고 동서남북으로 ㅓㅏㅜㅗ 를 쓴다.


그리곤 M 교수님은 마치 마술사가 모자에서 비둘기를 보여주듯 너무 놀라운 일이지 않을 수 없냐고 눈을 반짝인다. 이어서 그는 또 다른 마술을 준비한다.


ㅓㅏㅗㅜ

넣다 낳다 놓다 눟다


모음 밑에 그 모음이 들어간 단어를 적는다. 글자가 어딜 향하느냐에 따라 의미하는 방향이 달라진다.


자 여러분 보세요. 넣다는 무언가를 안에 넣는다죠? 정말 선 안쪽으로 들어가죠? 낳다는 어때요. 안에 있던 것을 밖으로 꺼내는 것이죠? 선 안에서 밖으로 나오죠? 놓다는 어때요. 선위에 놓는 것이죠? 눟다는...


M 교수님은 눟다는 조금 설명하기 어렵다는 표정으로 약간을 망설이더니 눟다 옆에 누다를 적는다.


보통 눟다 보다 누다라고 많이 하죠. 누다는 뭐로 쓰나요? 보통 뭐를 누어요? 똥을 누다. 이렇게 많이 하죠. 자 어때요. 똥을 눌 때는 똥이 위에서 아래로 떨어지죠?


M 교수님의 질문 공세는 대답이 돌아오지 않는 카메라를 향해 계속된다. 심지어 카메라를 앞에 두고 똥을 쌀 때 똥이 아래로 떨어지느냐는 질문을 던진다. 물론 카메라는 똥을 쌀 일도 똥을 쌌는데 똥이 밑으로 떨어질 일도 혹여나 똥이 위로 올라가서 '아니요. 제 똥은 위로 올라가는데요?'라고 대답할 일도 없다.


돌아오지 않는 대답에 M 교수님은 그만 당황하고 만다.


저만 그런가요? 저만 똥이 위에서 아래로 떨어지는 것은 아니죠? 하하 자 어쨌든 이렇게 한글은....


그는 어딘가에 있을, 똥이 위로도 올라갈 수 있는 학생을 염두에 두고 뒷 내용을 이어간다. 그게 어이가 없고 웃겨서 또다시 중요한 것을 외워버릴 수밖에 없다. 그 뒤 내용은 웃기지 않아서 기억의 효과가 현저히 떨어진다. 그저 한글의 위대함과 아래로 떨어지는 똥 만이 효력을 발휘한다.


M 교수님은 미리 녹화된 화면 속에서 분주히 움직인다. 쉬는 시간도 칼같이 지킨다. 45분짜리 강의 두 편이 한 차시의 수업인데 첫 번째 45분짜리 영상이 끝나면 랜선 속 학생들이 쉬는 시간을 알아서 가지고 정직하게 두 번째 45분짜리 영상으로 돌아와 주리라 믿고 있다. 그래서 두 번째 영상 시작에서는 '다들 잘 쉬고 왔죠?'라는 말을 잊지 않는다. 하지만 게으르고 정직하지 않은 익명의 학생인 나는 첫 번째 영상을 보고 이틀 뒤에 두 번째 영상을 켰다. 정말 푹 이틀을 쉬고 온 사람에게 '잘 쉬고 왔죠?'는 다르게 들린다. 자알 쉬고 왔죠?처럼 잘이 평소보다 두 배는 길게 들리는 마법을 경험한다.


M 교수님은 자신의 이름을 크게 말하는 만큼 강의에 대한 자부심이 크다. 수업이 끝나면 늘 다음 주를 기대해달라고 당부한다. 무한도전이나 라디오 스타에서 자주 하는 말을 그는 강의 끝 무렵에 거침없이 한다. 이름을 크게 말하는 포부가 그의 태도 여기저기에 많이 묻어난다.


그는 코로나 시대에 혼란스러운 사람 중 한 명으로 온라인에 적응하는 중이다. 오프라인에서 당연한 것들이 온라인에서 통하지 않으면 순간 당황하기도 한다. 카메라를 향해 질문을 많이 던지고 누가 이 강의를 들을지 모르지만 그 누군가가 기대감을 품고 강의를 들어주길 바란다. 그 기대를 실망시키지 않을 자신이 그에게는 있다. 똥 이야기를 잘하기 때문이다. 자칫 지루하면 개그를 던져 웃길 자신이 있다. 오프라인에서 다져진 노하우는 온라인에서도 발휘되는 법이다.


엉뚱하게도 아주 중요하다는 언어학자보다 교수님의 이름이, 한글의 위대함보다 똥 이야기가 기억 남는 시간이지만 다음 주에는 또 어떤 것으로 무엇을 기억하게 될지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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