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이 작아지는 때는 언제인가. 우리는 종종 살면서 작아지는 경험을 한다. 나보다 멋지고 잘난 사람을 보았을 때, 형용할 수 없는 아름다움을 보았을 때, 우주의 별들을 보며 죽음에 대해 생각할 때, 사랑하는 이의 아픔을 보고만 있을 때, 적막한 가운데 공허가 느껴질 때. 우리는 줄어들고 다시 늘어나기를 반복하며 작아짐에 익숙해진다. 오늘 소개할 사람은 인생에서 한 번 작아진 경험이 있는 사람이다. 그는 자신이 가장 크게 느껴졌을 때 가장 작아진 사람이다. F의 이야기를 담아본다.
F는 이탈리아 출신으로 현재 프라하에 살고 있다. 그는 한국어를 배우는 학생이다. 내가 F와 만나게 된 결정적인 계기이기도 하다. 나는 체코에서 한국어를 가르치며 생활하고 있다. F를 만난 것은 한 달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F는 한국어를 배우고 싶다며 내게 메일을 보내왔다. 그는 이미 어느 정도 유창한 한국어 실력을 갖추고 있었고 한국을 여행한 경험이 있다고 말했다. 나중에 한국에서 대학교를 다니고 싶다고도 말했다. 그것이 내가 아는 F의 전부였다. 나는 답신을 보내고 시범수업을 하기 위해 온라인 미팅 시간을 잡았다. 그리고 머릿속으로 F는 이러한 사람이겠지 상상을 했다. 온라인 수업의 묘미는 소개팅 같달까, 누가 나올지, 어떤 사람일지 직접 화면 속 얼굴을 접하기 전에는 상상 속 얼굴을 그리며 만날 시간을 준비한다.
시범수업 당일 화면 속에서 F를 처음 만났다. F는 내 예상과는 벗어난 모습이었다. 언젠가 다시 한국에 들어가 학교를 가고 싶다는 그의 말에 나는 젊은 청년의 모습을 그려봤는데, 화면 속에서 중년의 모습을 한 F가 인사를 건넸다.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우리는 한국어로 인사를 나눴다. 구체적인 수업의 방향을 잡기 위해 영어와 한국어를 섞어가며 서로를 알아가기 시작했다. F는 매우 사교적인 사람인 듯했다. 질문을 먼저 하지 않아도 어떻게 한국어를 배우게 됐고, 왜 한국어를 배우고 싶은지를 얘기했다. 그는 청년일 때 밴드 생활을 했다고 말했다. 그는 베이시스트로 활동했는데 밴드가 꽤 성공하여 해외 투어를 다니다 미국, 유럽, 아시아를 모두 가 보았다고 말했다. 유튜브에 그때의 공연 영상들이 남아있다고 했다. 나는 밴드를 잘 모르지만 그의 유년시절이 범상치 않았음을 느꼈다. 그는 아시아 투어 중 한국에 관심이 생겨 한국어를 공부하기 시작했고 한국에 친구도 있다고 말했다.
그는 수업마다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는데, 나는 수업을 핑계로 한 사람을 알아갈 수 있음에 큰 매력을 느꼈다. 한 번은 그와 인상 깊게 본 영화 혹은 다큐멘터리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다가 대화는 자연스레 영화에서 음악으로 흘러갔다. 그때 F는 잠시 숨을 멈추며 중요한 말을 하려는 듯 검지 손가락을 펴고 말했다.
"현주 씨, 저는..."
"네, 말씀하세요"
"저는 케이팝 별로 안 좋아해요. 그런데..."
나는 꽤 놀랐는데 그것은 케이팝을 안 좋아하는 것 때문이 아니라 그 뒤에 나온 말 때문이었다.
"그런데 안테나 뮤직은 좋아해요."
안테나 뮤직은 한국에서 손꼽히는 소속사 중 하나로 유희열 정재형 루시드폴 등 많은 아티스트들이 몸담고 있는 곳이다. 그런데 그것을 F가 알고 있다는 것이 놀라웠다. 보통 해외에서의 한국 음악계는 JYP, YG, SM과 같은 대형 기획사와 BTS가 속한 빅히트 정도가 널리 알려졌으니 말이다.
"안테나 뮤직을 어떻게 아세요?"
놀라서 물은 내 말에 F는 친구가 안테나 뮤직에 다닌다고 말했다.
"제 친구가 안테나 뮤직 디렉터예요."
"정말요????"
그의 말에 나는 놀라 되물었다.
그는 전에도 한국에 친구가 있다는 얘기를 꽤 자주 했는데 그 친구가 안테나 뮤직 디렉터일 줄은 몰랐다. 그는 이어서 한국에 있는 친구에 대한 이야기를 계속 들려주었다. 나는 둘이 어떻게 친구가 되었는지 궁금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어떻게 알게 됐어요?"
F는 잠시 고개를 갸우뚱하더니 질문의 의도를 알아차리고 다시 말을 이어갔다.
"그 친구가 팬이었어요."
나는 F가 친구의 팬이었다는 것인지 친구가 F의 팬이었다는 것인지 F와 친구가 어떤 가수를 동시에 좋아했다는 것인지를 알 수 없어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그러자 F는 다시 말했다.
"그 친구가 제 팬이었어요. 인스타그램에서 저를 팔로우했어요. 저도 팔로우했어요. 그래서 알게 됐어요."
순간 화면 속 내가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사람이 유명한 밴드의 베이시스트라는 사실을 다시금 깨달았다.
그는 한국에 갔을 때 자신의 팬을 그렇게 처음 만났다고 했다. 둘은 서울에서 만났는데, 그 팬이라는 자가 자신의 회사에 놀러 가지 않겠냐고 물어, F는 아무 생각 없이 따라갔다고 한다. F는 이윽고 나오는 큰 빌딩에 놀랐고 그 빌딩이 팬이라는 자의 회사였고 회사의 이름이 안테나라는 것을 알았다고 한다. F와 팬이라는 자가 빌딩에 들어서니 모두가 일어서서 '안녕하세요'라고 말하는데, 처음에는 F 본인 때문에 인사를 하는 것인지 옆에 서 있는 팬이라는 자 때문에 인사를 하는지 몰랐다고 한다.
나는 정말 어리석었고 그는 참 겸손했어요.
I was so stupid and he was humble.
그는 그렇게 읊조렸다.
그때를 회상하는 얼굴에는 지워지지 않은 창피함이 묻어있었다. 다는 들려주지 않았지만 그 당시 F가 어떤 마음으로 그를 만났고 그의 회사에 들어서서 어떤 마음이 들었는지가 전해졌다. 나는 그 창피함이 섞인 웃음을 보며 인간이 작아지는 때는 그런 때임을 짐작했다. 인간은 내가 작은 존재라 여긴 것이 큰 것이었음을 알 때, 비로소 스스로가 작아지는 존재였다. 누군가를 함부로 낮춰 생각하면 필연적으로 나는 어느 순간 작아지게 되어 있다. 이 경험을 많이 한 자만이 모두를 우러러보고 겸손해진다.
나는 이 날 F의 이야기를 들으며 작아졌다. F가 유명한 밴드의 베이시스트였다는 새삼스러운 사실이 자꾸만 내 자세를 고쳐먹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이야기를 듣는 내내 F가 생각보다 더 대단한 사람이었다는 것이 놀라워 행동을 조심하게 되었다. 나는 언제쯤 상대가 누구든지 상관없이 자세를 바르게 해야겠다는 생각을 할 수 있을까. 이런 생각을 하며 또 한 번 작아졌다. 얼마나 작아져야 모두에게 열심인 마음을 가질 수 있을지 한참을 멍하니 있었다.
나는 정말 어리석고 그는 참 겸손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