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뚜루Lee Nov 13. 2023

47세 얼굴 없는 이사장의 추억 돋는 하루

2028.11.13일 쌀쌀하지만 화창한 날

5년 전 그때를 생각하니 참 새삼스럽다. 그때가 42세라 해야 하나 41세라 해야 하나... 괜히 나이를 바꾼대서 아직도 헷갈리다.


아무튼, 23년 어느 날 미래에 대한 준비가 하나도 안 되어 있는 걸 발견해 우울했던 그 해. 살짝 돌은 녀를 만나 핵사이다 펀치를 못 날려 속이 부글대다 시들해졌던 그 해. [싸가지 없는 점주로 남으리] 책을 우연히 만나 박규옥 님께 큰 감명을 받았다. 가진 재주라도 늘려 미래에 대한 대비라도 해보자 싶어 미싱을 배우다 인생의 스승님을 만났다. 안팎으로 심란한 때에 직간접적으로 만난 두 여인과의 이야기를 써내고 싶어 브런치를 기웃대다 슬초브런치프로젝트 신청을 해냈던 23년 9월 9일 09시 07분.

23년은 나에게 큰 전환점을 주었던 순간이었다.



없는 티, 조잡한 사람인티 주변에 들키기 싫어 얼굴 없이 브런치에 숨어들었다. 얼굴 없이 활동하려니 제약이 많다. 강의를 맘대로 나갈 수 있나. 인터뷰를 속 시원히 할 수 있나. 키크니님이 비슷한 시기에 굳이 얼굴 드러내지 않고 활동한 선구적인 역할을 해낸 덕에 끝까지 컨셉 밀고 나갈 수 있어 다행이라 생각한다. 신분 잘 숨긴 덕에 요즘도 불편하게 하는 이들 씹어대는 글 써재끼며 핵사이다 정신승리하며 잘 살고 있다.





얼굴 숨기고 글로 큰돈 만지는 게 아무래도 안 될 성싶어 배운 기술로 DIY 제품 만들어 온라인쇼핑몰에서 팔고, 틈틈이 부동산 경매도 배워 해내고, 길 막히게 한다고 욕을 해대던 로또방 가서 로또도 좀 샀더니 다른 동기들처럼 쭉쭉빵빵하게는 못 나가도 나름 안락하게 잘 지내고 있다.



신랑이 퇴근이 늦어 사실상 여자 셋이 사는 처지인데 주택은 무서워 못 간 다한 시절도 있었다. 내 수입이 늘어 밖에서 고생하는 남편 조신하게 집에 데려다 놓고 집에 있으랬더니 든든하다. 음식은 여전히 좀 성에 안 차지만 청소도 잘하고 정리도 잘하고 애들이랑도 잘 지내고 만족스럽다. 목돈 줘서 주식하랬더니 제법 잘 굴려 놓는 게 기특하기도 하다. 뭐 좀 잃어도 그만이고, 벌어 들이면 써재끼고 하는 거지.


그래도 남편이랑 24시간 붙어 있는 건 아니다 싶어 앞은 호수가 보이고, 뒤는 산이 보이는 작업실 삼은 아파트로 출근한다. 60평은 좀 적적한 느낌이 들어 쇼핑몰 사람들 이리로 출근시키고 보니 회사가 아파트에 있는 게 맞나 싶은 생각이 들어 고민이다. 중심가로 가면이야 편의시설은 좋겠지만 출퇴근 차 막히는 건 어쩔 것인가 싶어 고민이니 좀 더 생각해 봐야겠다. 그때 당장 돈 없다고 취업했으면 어쩔 뻔했나 생각하니 그래도 나 믿고 열심히 일하며 먹이고 입히고 해준 신랑이 고맙다.









내가 요즘 제일 만족스러운 것은 우리 욕망 1호, 그 욕망을 마음껏 불 싸지를 수 있게 배우고 싶은 거 원 없이 시켜줄 수 있어 몹시 만족스럽다. 전공할 건 아니지만 그랜드 피아노 한대 사주고 전공자 레슨선생님 집으로 모셔다가 클래식피아노 시키고, 틈틈이 서울에 버클리음악대학 나오신 분 찾아 재즈피아노 레슨 다니니 고2 수험생 생활도 만족하며 즐기고 있다. 지가 욕심 있어 공부를 하긴 하는데 신랑은 그냥 유학이나 가라고 계속 바람 넣고 있다. 유학을 가던 국내대학을 가던 욕망 1호 밀어줄 잔고는 챙겨 뒀으니 뿌듯하다.



집안에 우환거리 같았던 작은아이는 대안학교 보내놨더니 즐거운 학교 생활을 하고 있으니 속 터지게 끼고 있을 때보다 저나 나나 더 행복하다. 그래도 저놈은 커서 뭐가 될라나 염려스럽긴 한데... 지가 원하는 대로 동물들과 교감하는 카페하나 차려주면 지 앞기림은 하고 살런지...  평생 나한테 붙어 살런지... 좀 더 고민해 봐야겠다. 뭐가 저 녀석 잘 되게 하는 건지 고민이 되긴 한다.



그나저나 '강원국의 지금, 이 사람'에서는 계속 출현 제의가 들어오는데 이상하게 '라디오 북클럽 김겨울입니다'와는 다르게 출현이 고민이 된다. 우리 겨울님 만나서 수다 떠는 게 그렇게 재미가 있었는데, 강원국 님 만나자니 스리슬쩍 3,4회 연속 출연 시킬까 봐 겁이 나서 그런가 확답을 못 주겠다. 요조, 장강명의 책 이게 뭐라고도 참 재밌게 들었는데,... 이참에 후원 빵빵하게 넣어서 방송 재개시킬까 싶다가 또 오지랖 넓은 내 성격에 배 놔라 감 놔라 할까 봐 자중하고 있다. 이동진의 빨강책방을 재개시킬까...  아서라 아직은 내 오지랖 때문에 자신 없다. 세바시는 얼굴 가리고는 출연이 안된대서 쿨하게 거절했고, 유퀴즈는 키크니님이 가면 쓰고 출연했기에 나까지 그러기엔 식상해 거절했다. 좀 아쉽긴 하지만 또 이렇게 누리는 안락한 일상이 있으니 만족스럽다.



차는 잘 만 굴러다니면 되지 싶어 대충 허머 한대 샀더니 큰 덩치가 거추장스러워 불편하기도 하다. 페라리 한대 살까 생각하지만 전원주택앞에 주차해 둔 모습을 그려보자니 분위기가 어울리지 않을 거 같아 선 듯 못 바꾸겠다. 좀 더 고급 주택으로 갔어야 했으려나... 하기사 국내에는 막 밟을 곳도 없으니 더 감질만 날것도 같고. 세단이나 하나 살까 싶은데 당장 급한 건 아니니 좀 더 생각해 봐야겠다. 돈이 있으나 없으나 물건 살 때 고민 되는 건 매 한 가지다. 펑펑 써재끼면 좋겠지만 애들이 보는데 또 어찌 그러겠는가. 참는 모습도 보여줘야지.



내일은 요즘 더 바빠져 얼굴 보기 힘든 규옥언니랑 막내 중학교 보내고 좀 한가해 지신 미싱스승님 모셔서 식사 대접하기로 해서 몹시 설렌다. 중요하신 분들 모시는데 신랑 혼자 준비 못 할성 싶으니 솜씨 좋은 이모님 한 분 불러야겠다.


그나저나 다음주에 있을 슬초 동기 모임에는 몇 분이나 올라나...  빌딩 올린 욕망이 들도 많더만 뭘 그리 바쁘게 사는지...  얼굴 보기 힘든 분들이 많아 50여 명씩밖에 못 모이니 아쉽기도 하고 한편으론 왕성한 모습에 자랑스러워 기쁘기도 하다. 서점 차려 한가해지신 줄 알았지만 미모 발산하러 여기저기  다니시는 은경쌤은 뵐 수 있으려나 못 뵐라나... 잠시라도 오신댔으니 기대는 해 봐야지.



우울했던 23년을 골 싸매고 이불속에만 있지 않았던 내게 찬사를 보낸다. 조금씩이라도 나아지려고 노력했기에 오늘의 내가 되었다. 스스로 돕는 자를 하늘도 돕는다지! 로또 3등으로 생긴 여유돈이 마중물이 되어 빠르게 성장하게 된 것도 감사하다. 지금에서야 저거 없었어도 일어서긴 했겠다 싶지만 5년 만에는 이루지 못하고 한 2년은 더 걸렸을 거 같긴 하다.



얼른 음식 잘하는 이모님 구해야지 오늘은 나도 좀 바쁘니 이만하고 일 처리하러 가야겠다.






사진출처-Pixabay

매거진의 이전글 소맥 받고 백화수복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