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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뚜루Lee Nov 20. 2023

조금 찔리기는 한 다섯째 날

신기한 매점

매점으로 종종 놀러 오는 청소 담당 여사님이 계신다. 여행 가신 지인과 친해서 원래도 자주 오셨다 했고, 혼자 있는 내가 적적해 보여서 챙기러 와주시기도 하신다. 밥 먹으러 갈 때면 꼭 나를 챙겨주시며 여러모로 고마운 게 많았다.      


한 번씩 오시면 10여분 사이에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오늘은 자식이야기다. 듣자니 아들만 둘인데 큰아들은 미용실 원장이고 아직 결혼 전이라고 했고, 작은 아들은 결혼해서 애도 있다고 하셨다. 아직 미혼인 큰 아들 걱정을 하시길래 능력 있는데 무슨 걱정이냐고 지금 고르고 있는 중일 거라 말씀드리니 좋아하시는 눈치다. 나는 딸만 둘임을 말씀드렸다. 둘째에 대한 이야기에 푸념이 늘어졌다. 큰아이 중학교 가는 건 걱정이 안 되는데, 작은아이가 5학년 된다고 생각하니 골치가 아프다 말씀드렸다. 그러면서 우리 둘째는 천지를 모른다고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라고 이야기했다. 요즘 둘째를 보는 나의 시선이 그렇다. 아주 탐탁치가 않다.      

그러자 여사님은 

"그렇게 말하면 안 되지!! 그래도 엄만데, 엄마가 자식 잘 보듬어 주고 대접해 줘야 딴 데 가서도 대접받고 살지 엄마가 그럼 못 써. 저 뭐야 오은영이박사 나오는 내새끼 어쩌고 하는 것도 챙겨보고 애를 자꾸 보듬어 주고 해야지. 마땅찮은 게 있을 땐 마음 잘 붙잡고 ‘이렇게 하면 엄마 힘들어 그러면 안돼’하고 차분히 얘기도 하고 해야지." 하신다. 맞는 말씀이라 뭐라 할 말이 없다. 맞는 말씀인 건 아는데 그렇게 하질 못하겠어서 더 할 말이 없다. 하소연 한마디 더 하지 못하고 그냥 웃고 말았다.  


콱! 줘패버리고 싶은 마음이다

하지만 난 작은아이에게 잘해줄 마음이 아직은 없다.  제 할 일 스스로 하지 못해 매번 내가 불뿜게 만드는 저 아이가 마뜩잖다. 응징해주고 싶어 미쳐버릴 것 같다.  오죽하면 내 요즘 소원이 딱 보름만 작은아이랑 떨어져 사는 것일까! 청학동 예절학교에 보내버릴까  해병대 캠프라도 보내버릴까 고민했었다. 2년가까이 군대 다녀와도 일주일이면 나태한 생활로 돌아오는데 2주 가지고 뭐가 변하겠냐는 댓글을 보며 마음을 접었지만.


미워 꼴도 보고 싶지 않은 아이의 얼굴이 떠오고, 그래도 '엄만데'란 여사님의 말소리도 떠오르고, 다시 나의 그 분노가 치밀어 오르던 순간도 떠오르고 딸자식 밉다고 응징하려는 옹졸함이 우습기도 하다가 이게 누구 때문이데! 꼬리에 꼬리를 물고 누구의 잘못인가 잘잘못을 따져보려는 생각이 떠나지 않는다.

(이 와중에 키워드에 바보가 없다. 딸바보 아니고 딸은 바보이다.)                






사실 인생 선배의 말씀이 맞긴 하단 생각을 한다. 잘 보듬어 주고 차분히 이야기하면 아이의 태도를 고칠 수 있을 테니 말이다. 인생의 선배에게 또 한 수 배운다. 

인생의 선배도 만나게 해 준 신기한 매점이 이제 하루 남았다. 남은 하루는 어떤 일로 매점과의 인연을 마무리하게 될까 기대가 되면서 아쉬움이 묻어난다. 여로모로 얼마 남지 않은 출근이 아쉬운 신기한 매점이다.           



사진출처-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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