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뚜루Lee Nov 17. 2023

대응력이 빛난 넷째날

신기한 매점

어제 비가 부슬대더니 역시나 기온이 뚝 떨어졌다. 오늘은 냉장고보다 온장고에 신경을 써야 할 것 같다. 뛰어난 나의 센스와 성실함! 쌀쌀한 날씨를 예상해 어제 퇴근 때 넣어둔 캔커피들. 오전 손님이 다녀간 후 온장고를 보고 있자니 손님들이 찾는 커피는 예상과는 조금 다르다. 아! 센스가 있긴 한데 조금 부족했다.     


T.O.P 캔커피 중 흰색과 초록색 그리고 병베지밀B가 인기가 많다. 온장고 속 검은색 커피는 정말 안 나간다. 대타 알바를 나간 첫날부터 온장고 속에 검정커피가 많이 있길래 잘 팔려서 넣어 뒀나 생각했다. 안 팔리고 남은 아이들을 그냥 둔 것이구나 하는 생각이 그제야 든다. 분석과 예측이 빗나갔다. 


    

이유야 어찌 됐건 빠른 대응을 해야 한다. 매상은 중요하니까. 내가 놀러 온 것이 아닌 이상, 매상은 올려야 하고, 손님들의 원하는 바는 충족시켜야 하고, 또 오고 싶은 마음이 들도록 해야 한다.


빠르게 하얀색과 초록색 커피를 온장고속으로 밀어 넣는다. 오전 10시가 좀 지난 시간에 넣어뒀는데 약 3시간쯤 된 지금도 미적지근하다. 온장고가 문제인가. 원래 데워지는데 오래 걸리나... 문제점이 보인다. 하지만 이대로 보고만 있을 수는 없다. 커피를 데워놔야만 한다는 사명감이 불타오르기 시작했다. 


포트에 물을 끓여 캔커피를 담가둘까... 정수기의 뜨거운 물 정도면 될까... 빨리 데워지긴 하겠지만 물을 닦아서 줘야 하는 번거로움이 생긴다. 실행하기엔 최선책은 아닌듯하다. 데워지는 면적이 넓어지게 캔을 뉘어놓을까 잠시 생각해 봤으나, 드러눕는 게 허락되는 캔커피가 극소수다. 눕힐 곳이 넓지 않다. 하지만 하나라도 더 팔고 싶다. 손님들의 니즈를 맞춰 팔아 내고 싶다. 방법을 찾아 내야한다. 삼단 온장고에 특별히 더 뜨거운 곳이 있는지 살펴보고 싶지만 쫄보라 직접 온열판에 손을 대고 싶지는 않다. 아뜨뜨! 하면 아야! 하니까. 이리저리 살펴보니 중간층에 있는 검정커피가 따뜻을 넘어 뜨끈하다. 살짝 뜨겁다는 생각이 든다. 중간칸이다. 중간칸을 공략하되 시간이 얼마 없다. 곧 1 시간 30여분 뒤면 간식을 찾는 무리들이 내려올 것이다. 면적! 데워지는 면적을 넓히는 게 관건이다. 중간층에 온기를 넘어서 열기에 가까워져가고 있는 검정 커피를 4개씩 한 줄로 세우 돼 옆줄의 공간을 비운다. 검정 캔커피들의 간격을 충분히 벌린 후 하양이와 초록이 투입이다. 검정하양검정초록검정하양초록반반검정. 빈 공간이 생기지 않게 밀착해 둔다. 검정이의 뜨끈함을 하양이와 초록이에게 나눠져 검정이도 하양이도 초록이도 따끈하게 만들 것이다. 나의 가설이 맞아떨어지길 기다린다. 문제는 시간이다. 시간이 정 여의치 않다면 차선책을 써야 한다. 뜨거운 물에 캔커피 담가두기. 내키지 않는다. 모양새 빠진다.     

다행이다. 나의 예상은 적중하여 하양이와 초록이를 안전하게 데워 손님들 손에 들려나간다. 낮이 되니 기온도 살짝 올라 열광적으로 온장고로 사람들이 몰려오진 않지만, 이 정도면 선방했다 생각한다. 만족스러운 대처에 뿌듯함을 느끼며 퇴근한다. 

    

오늘의 치열하고 발 빠른 대처 능력을 떠올리며 뿌듯한 마음을 안고 자려고 누웠다. 문득 궁금증이 생긴다. 과연 열전도면적을 높인 캔커피는 1시간 반 만에 내용물까지 데워지긴 했을까? 살짝 캔 겉면만 데워진 건 아닐까? 걱정이 되긴 했지만, 이미 지난 일이니 모르겠다. 나름 최선을 다했고, 내일 판매할 음료는 냉장고와 온장고 모두 든든히 잘 채워두었다. 나는 이제 이틀만 더 출근하면 되는 신기한 매점의 대타 지킴이일 뿐이다. 완벽하진 못한 대응에 대한 아쉬움은 묻어두자. 신기한 매점으로 출근이 며칠 남지 않았다. 자꾸 아쉬움을 남기는 신기한 매점이다.


제목배경사진-Pixabay

매거진의 이전글 괜스레 초조했던 셋째 날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