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A를 향한 집착, 그 속에서 잃어버린 나

무기력과 욕망 사이, 나를 잃어버리던 시절

by 두루박

MBA를 향해 달리던 시절, 나는 나 자신을 위해서라고 말했지만 사실 가족을 핑계 삼아 달리고 있었습니다. 겉으로는 책임감 있고 열정적인 사람처럼 보였지만, 내 안은 점점 공허해져 갔습니다. 멈추지 못하는 폭주 기관차처럼, 어디로 가는지도 모른 채 속도를 올리고 있었습니다.




나무 농부가 되어야겠다고 생각하기 전까지는 MBA를 접고 한동안 아무것도 하지 않고 직장 집을 오가며 평범한 일생생활을 해갔다. 무기력 하다고 해야 하나 아니면 폭주 기관차가 멈춰 가야할 방향을 못 찾고 있다고 해야 하나 여하튼 아무런 생각없이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아니 솔직히 생각 자체가 하기가 싫었다. MBA를 준비하고 있던 그 당시에는 나 자신은 굉장히 이기적인 사람이었고 내 자신을 들여다보는데 너무 인색했다. 타인에게 그 원인과 이유가 있고 나 자신은 삶을 충실히 살고 있는 사람이라고 자부하며 지내고 있었다.

MBA를 준비하는 과정 동안에는 가족과 나의 관계 그리고 삶에 대한 철학이나 가치관이 너무도 얕고 미약했던 시기였다. 그 당시에는 보이지 않았고 그냥 흘려 버렸던, 내 자신이 너무 한심했던 순간들이 있었다. 과거의 기억들을 다시금 돌아보며 괴로워하는 것이 힘들었지만, 나를 들여다보는 과정은 자연스럽게 내가 그냥 흘려 보냈던 과거의 나의 행동과 감정들을 살펴보도록 해주었고, 나의 머리속에 저장되어 있던 과거 기억을 자연스럽게 끄집어 내주었다.

MBA를 준비하는 동안 주말부부를 하며 지냈기에 주말에, 그것도 매주말이 아닌 시간을 꾸역꾸역 만들어 주말에 집에 내려가 아이들을 봤다. 첫째 아이가 태어났을 때는 아내가 진통이 17시간이나 걸릴 만큼 힘들게 낳았다. 나도 산통과 출산을 옆에서 지켜봤었는데 현실감이 별로 없었던 것 같다.

자연 분만으로 출산을 하는데 너무나 힘들어 하는 아내를 보니 내가 뭔가를 해줄 수 없다는 게 안타까웠다. 차라리 나는 의사에게

“수술을 하는 게 지금 상황에서 더 좋지 않을 까요?”

라고 했지만 의사는

“자연 분만으로 할 수 있고 그게 더 후유증 없어 산모가 회복이 빠르다”라고 했다.

출산이 가까워져 아내와 나는 분만실로 들어갔고 곧 나올 것 같은 아이는 나오질 않자 의사와 여러 명의 간호사가 아내 배위를 누르고 의사는 아이가 배속에서 나올 수 있게 도왔다. 나는 그 장면을 옆에서 지켜보고 있었다. 그렇게 마침내 첫째아이가 아내 배속에서 나왔을 때 나는 정말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그저 멍하니 아이를 보고 있었다.

의사가 아이를 들어 올렸고 나에게 탯줄을 가위로 자르라고 했다. 나는 움직일 수 가 없었다. 아니 할 수 가 없었다. 맨 살을 가위로 자른 다는 게 말이 되나? 의사는 독촉했고

“괜찮으니까 자르세요”라고 했다.




돌이켜보면 그 시절의 나는 스스로를 들여다보지 못한 채, 겉으로만 그럴듯한 이유를 내세우며 달리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결국 삶은 나를 멈추게 했고, 가족과 마주하게 되었습니다. 그 결정적인 순간은 아이의 탄생이었던 것 같습니다. 다음 편에서 나는, 나를 완전히 멈추게 만든 ‘출산의 순간’을 이야기하려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