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 아래에서 찾은 어린 시절의 위로
MBA를 접고 공허한 시간을 보내던 어느 날, 저는 다시 제 내면에서 꿈틀거리는 목소리를 들었습니다.
“정말 하고 싶은 건 뭘까?”
그 물음은 제 어린 시절 기억 속 나무 아래의 고요함으로 저를 이끌었습니다.
이번 글은 그때의 기억이 어떻게 지금의 ‘나무 농사’라는 선택으로 이어졌는지를 담아봤습니다.
MBA를 접고 아무 생각하고 싶지 않아 그냥 일상생활을 보냈다. 집 회사, 집 회사 그렇게 시간을 보내고 있다 보니 천성과 기질이 어디 가겠나 또 다시 나의 내면에서 무엇인가 꿈틀거렸다.
“정말 하고 싶은 것을 찾아보자”
“이렇게 시간을 보내고 있지 말자”
라고 다시 나를 움직이도록 만들었다. 그때 많은 생각을 했던 것 같다. MBA를 접은 이력 때문일까 신중히 또 신중히 내가 정말 하고 싶은 것을 찾으려 했다. 나는 무엇을 좋아하지? 가족들은? 회사는 언제까지 다니지? 아이들은? 직장생활을 하면서 가능한 것은 어떤 게 있지? 등등 여러 질문들을 자신에게 던졌던 것 같다. 그런데 그 답이 쉽질 않았다. 그게 쉽게 찾아오겠는가? 그러면 누구나 하고 싶은 것을 했겠지. 그렇게 고민하고 있던 어느 날씨 좋은 따스한 봄날이었던 것 같다. 멍 때리면서 먼 산을 보고 있는데 불현듯
“저기 산 너머 저 큰 나무 아래 쉬고 싶다.”
“그냥 아무 생각없이 그 아래서 산들바람 맞으며 누워 있고 싶다”
는 생각이 들었다.
그 생각은 나를 어린시절로 돌아가게 해주었다. 내가 초등학교 고학년에서 중학생 때 종종 나만 아는 공간에 가서 공부도 하고 쉬다 오고 그랬는데 거기에 큰 나무가 있었다. 그 아래 돌덩이가 있었는데 그게 참 앉기도 좋았고 누워있기도 좋았던 돌이었다. 왜 종종 거기 갔는지 정확히 지금은 잘 모르겠지만 확실히 기억이 나는 건 거기에 가면 위로도 받고 공부도 집중도 잘되고 왠지 내가 지금 잘하고 있고 괜찮다고 말해주는 것 같아 한번씩 찾아가서 그 감정을 느끼고 싶어했었다. 거기서 책을 보든지 그냥 멍하니 먼산을 보든지 그곳은 나에게 위로와 편안함을 주었던 곳으로 내 머리속에 좋은 기억이 남아 있다.
감정의 기억은 오래간다. 그때의 감정은 아직도 내 마음속에 남아있다. 나무가 주는 편안함과 아무도 없는 곳에 혼자 생각에 잠겨 있는 기분. 누구 하나 뭐라하거나 잘못되었다고 하는 사람 없이 오롯이 나만의 의지대로 내 시간을 보내는 기분. 그 기분을 그 자리에서 느꼈다. 그 어린 시절의 좋은 기억 때문이었을까 사람들은 한번쯤 하늘을 쳐다봐라, 푸른 하늘을 보고 한번쯤 여유를 가져봐라 하지만 나는 하늘을 보는 것 보다 먼산의 나무들을 보거나 마을에 있는 큰 산을 보면서 그 아래서 쉬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했었다.
내가 나무를 키워보자고 마음먹은 이유 중에는 나의 어린 시절의 그 감정과 기분을 다시금 받고 싶고, 느끼고 싶은 마음이 제일 컸던 것 같다. 구구절절 적었지만 내가 나무를 키우고 싶다는 가장 큰 이유는 돈 보다는 정서적인 이유가 가장 켰다. 내가 농부가 정말 되고 싶고 원하는 것인지는 그때 대답할 수는 없었지만 그래도 적어도 내가 나무를 통해서 얻는 감정과 느낌에 대한 확신이 있었다.
“그래 나무를 키우는 것에 대해서는 내가 그 이유에 대해서는 적어도 스스로에게 대답할 수 있겠다.”
그게 어떤 것인지 해보질 않아 알 수는 없지만 그래도 적어도 MBA를 왜 하냐는 물음에 타인의 생각과 시선이 대답이었다면 나무를 키우는 것에는 타인의 생각과 시선이 아닌 온전한 나의 감정과 생각이 들어가 있었다. 나무를 통해 화려하거나 많은 부와 명예를 얻고자 하는 생각 없이 단지 내가 어린 시절 느꼈던 그 감정 그대로의 따뜻한 위로와 편안함을 다시 느껴 보고 싶었던 것이다.
나무 농사를 시작하기로 마음먹고 가족을 생각했다. MBA를 준비하면서 가족을 생각하지 않은 실수를 다시 하고 싶지 않았다. MBA가 나 혼자 잘되는 것을 상상해서 시작한 것이라면 나무 농사는 나와 가족 모두에게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도시에서 느껴보지 못하는 자연을 통해 얻는 기분과 감정들을 농장에서 가족들이 느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도 있었고,
“먼 훗날 내가 직장을 퇴직하더라도 아이에게 손 벌리지 않고 내 생활비는 내가 벌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현실적인 생각도 했다. MBA와 다르게 농장은 나와 가족 모두에게 괜찮을지 많은 고민을 했었다.
MBA가 제게 화려한 경력의 유혹이었다면, 나무는 제게 고요한 위로의 손길이었습니다.
타인의 시선이 아니라 온전히 나의 감정과 기억이 선택한 길이었습니다.
농사를 짓는다는 건 단순히 먹고 사는 문제를 넘어, 제가 제 자신에게 솔직하게 낼 수 있는 첫 번째 대답이었습니다.
“나는 나무를 통해 다시 숨을 쉬고 싶다.”
그 마음이 저를 오늘의 자리까지 데려다 주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