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이로운 순간을 놓쳐버린 아버지
첫 아이의 울음소리를 들은 순간, 모든 것이 멈춰야 했습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나는 그 경이로움 속에서조차 온전히 감정을 느끼지 못했습니다. 아내는 나를 향해 ‘악마 같다’고 말했고, 그 말은 내 가슴에 깊은 흉터처럼 남았습니다. 그날의 나는 왜 그렇게 보였을까요?
첫째아이의 탯줄을 자르는 그 순간 그 장면은 아마 평생 잊지 못할 것이다. 누구나 마찬가지겠지만 너무나 경이로운 순간이었다. 내가 가족과 나의 관계에 대한 철학과 가치관이 좀더 명확하게 가지고 있었다면 아마 그 순간의 기적은 내가 존재하는 이유가 될 것이고 내가 살아가는 이유가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 당시의 나는 그 감정을 충분히 온전하게 느끼지 못했다. 주위사람들, 혹은 책, TV등의 매체를 통해 들었던 이야기를 통해 대단하고 경이롭고 기적이다 라고 인식하는 정도일 뿐, 정말 나의 내면에서 그것을 오롯이 느끼지 못했다. 그 순간이 나에게 어떠한 의미이고 내 삶에 얼마만큼의 중요한 순간인지 내가 존재하는 이유와 나와 가족과의 관계에서 얼마나 중요한 순간인지, 아직 미숙했던 나는 그 순간에는 그런 감정들을 온전히 느끼질 못하였다.
둘째아이는 아내에게 출산이 임박해서 병원에 간다는 연락을 받고 부랴부랴 기차를 타고 내려가고 있었는데 아내에게 출산이 끝났다고 했다. 첫째와 다르게 둘째는 아주 쉽게 금방 나왔다. 둘째는 탯줄을 자르거나 출산과정을 지켜보는 것조차 하질 못했다. 나는 기차를 타고 내려가면서 아내와 아이가 괜찮다는 말을 듣고는 다행이다 라고 생각했다.
나의 삶의 이유가 되는 또 다른 내가 태어나는 순간이고 아이와 내가 연결되는 그 기적 같은 순간을 그냥 흘려 보냈음에도 그 순간에 대한 안타까움이 없이 그저 다행이다 정도의 감점을 느꼈 다는게 얼마나 자기 삶에 대해서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고 있었는지 알 수가 있다.
아내가 첫째 아이 임신을 했을 때 나의 삶의 초점은 오직 MBA 과정에 집중되어 있었다. GMAT이라는 커다란 벽에 막혀 허덕이며 치열하게 그 벽을 넘기 위해 몸부림치고 있었다. 어느 주말이었던 것으로 기억이 난다. 주말에 집에 내려가서 고향에 계신 부모님 집으로 가는 길에 택시를 타고 가고 있었다. 그때 아내가 임신으로 힘들어 하고 있었고 나는 GMAT 준비로 지져 있었다. 아내에게 정확히 무슨 말을 했는지는 기억이 잘 나지 않지만 내가 아내에게 MBA를 가는 이유는
“가족을 위한 것이고 내 자신을 위한 것이 아니다.”
“지금 내가 가족을 위해서 하고 있는 MBA 공부가 너무 힘들고 어렵다.”
“그리고 MBA 가는 것에 대해서 당신이 이미 인정한 부분이 아닌가?”
하고 아내에게 일방적인 내 주장을 이야기하고 내가 힘든 것만 이야기한 것으로 기억이 난다. 택시에 내려 아내는 나에게
“악마 같다”
고 했다. 다른 말은 지금 기억이 안 나는데 악마 같다고 했던 말은 지금도 분명히 기억이 난다.
그 당시 나는 그 말이 너무도 황당했고 아내를 이해할 수 없었다. 지금 돌이켜 생각해 보면 아내가 악마라고 한 이유를 조금 알 것 같다. 철저히 자기가 원하는 것을 하면서 가족을 위하는 것처럼 그럴 듯하게 포장을 해서 자신의 행동을 정당화시키고 있었으니 악마처럼 보였을 것 같다. 하지만 그때는 왜 나에게 악마처럼 보인다는 말을 하는지 이해가 안되고 황당하고 억울 했었다.
그 순간을 충분히 느끼지 못했던 아쉬움은 평생의 교훈으로 남아있습니다. 가족을 핑계 삼아 나를 정당화했던 지난날의 모습은 결국 내 스스로를 괴롭히는 그림자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 그림자를 직시했기에, 나는 비로소 변화의 길로 들어설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