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지금 어느 단계에 있는지 알면 조급함이 사라집니다
저는 한때 제 자신을 많이 자책했습니다. ‘왜 나는 행동이 변하지 않을까’, ‘왜 나는 실천을 못할까’라는 생각이 반복되었습니다. 변화에 실패할 때마다 자존감은 떨어졌고, 스스로를 한심하게 여기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알게 되었습니다. 그 시기의 괴로움은 제가 부족해서가 아니라, 제가 서 있는 단계를 모르고 있었기 때문에 생긴 괴로움이었다는 사실입니다.
제가 본격적으로 삶을 돌아보게 된 계기는 가족이었습니다. 특히 자식을 통해 저는 제 삶이 잘못된 방향으로 가고 있음을 자각하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회피하려 했습니다. 인정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자식 앞에서 드러나는 제 이기적인 마음이 부끄러웠습니다.
그때부터 저는 처음으로 ‘나를 보기 시작했습니다’.
나를 들여다보기 시작하니, 과거의 행동과 생각들이 떠올랐습니다. 잘못된 판단, 부끄러운 감정, 이기적인 선택들이 하나둘씩 떠올랐습니다. 그리고 저는 스스로가 너무 한심하다고 느꼈습니다.
그 순간 저는 절박해졌습니다.
‘변화가 필요하다.’
‘이대로 살면 안 된다.’
그래서 책과 유튜브를 찾아보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남의 이야기는 이해가 되었을 뿐, 행동으로 이어지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이해는 되는데 실천이 되지 않으니 마음은 더 괴로워졌습니다. 변화하고 싶어 고민할수록, 변화하지 못하는 제 모습이 더 괴로웠습니다.
그러다 어느 순간 저는 깨달았습니다.
‘남의 이야기는 내 행동을 바꾸지 못한다.’
그때부터 저는 혼자 고민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인간이 후세대에 물려주는 것이 무엇인지 스스로 탐구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도달한 결론은 단순했습니다.
인간은 후세대에게 세 가지를 물려줍니다.
물질, 육체, 정서입니다.
저는 나 또한 이 세 가지를 물려받았고, 그것이 균형을 이루어야 삶이 안정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 균형을 후손에게 잘 전달하는 것이 삶의 이유처럼 느껴졌습니다. ‘잘 받고 잘 주는 것’이 마치 순리처럼 느껴졌습니다.
이 원리를 발견한 뒤부터 제 행동은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화나 짜증을 내는 것이 아니라, ‘세 가지 축을 잘 전달하기 위해 지금 내가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감정변화로 인한 괴로움이 남아 있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다시 질문하게 되었습니다.
‘어떻게 살아야 마음이 편안해질까?’
‘어떻게 해야 아이들에게 좋은 영향을 줄 수 있을까?’
그 고민 끝에 저는 ‘자연의 순리’라는 개념에 도달했습니다. 자연의 순리에 맞게 살면 편안해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자연의 순리가 무엇인지 쉽게 답이 나오지 않았습니다.
오랜 고민 끝에 저는 자연의 순리를 ‘생존’이라고 정의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생존은 단지 내 삶이 아니라, 내 유전자가 세대를 지나 지속되는 것을 의미한다는 사실을 이해했습니다. 그 순간 저는 깨달았습니다.
자연의 순리와 세 가지 축의 균형은 결국 하나였다는 것을 말입니다.
자연의 순리를 따르면 세 가지 축이 균형을 이루고, 후세대에 잘 전달될 수 있다는 원리가 제 안에서 연결되었습니다. 그리고 자연의 순리에 어긋날 때 괴로움이 생긴다는 사실을 실제로 경험했습니다.
그때부터 제 삶의 기준은 명확해졌습니다.
자연의 순리에 맞게 살면 편안하고, 어긋나면 괴로움이 생긴다는 것입니다.
그 후 저는 자연의 순리에 맞는 행동 실천법을 고민했고, 결국 저만의 행동법을 만들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행동법이 실제로 작동함을 반복적으로 경험하며, 행동변화가 유지되는 경험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 과정을 거치며 저는 과거의 저를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행동변화가 일어나지 않아 괴로워하던 시기는, 여섯 단계 중 초기 단계였기 때문입니다. 즉 ‘자각의 단계’에 머물러 있었던 것입니다.
자각의 단계는 행동이 변할 수 없는 단계입니다. 그럼에도 저는 빠른 변화를 원했습니다. 그래서 자각 단계에서 곧바로 행동을 바꾸려 했고, 결국 실패했습니다.
그 행동변화는 깨달음에서 나온 변화가 아니라, 억지로 참아낸 변화였습니다. 억지로 참은 변화는 유지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반복적으로 무너졌고, 그때마다 괴로움이 생겼던 것입니다.
이제 저는 생각합니다.
행동변화가 일어나지 않는다고 해서 자신을 자책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저 자신이 지금 어느 단계에 있는지를 돌아볼 필요가 있을 뿐입니다.
자각 단계에서 행동변화가 일어나지 않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 당연함을 인정하고 받아들였다면, 조급함과 자책으로 인한 괴로움은 훨씬 줄었을 것입니다.
행동변화를 일으키고 유지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어쩌면 삶을 다하는 날까지 지속해야 하는 수행일 수도 있습니다. 그렇기에 조급해하지 말고, 하루하루, 순간순간 수행한다는 자세로 살아가는 것이 필요합니다.
행동이 변하지 않는 것은 의지가 약해서가 아닙니다. 내가 지금 어느 단계에 있는지 모르고, 아직 준비되지 않은 단계에서 결과를 요구했기 때문입니다. 변화는 속도가 아니라 순서입니다. 자각하고, 탐구하고, 이해하고, 깨닫고, 연습하고, 유지하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하루하루 수행하듯 살아가며 그 단계를 밟아나가는 것, 그것 자체가 자연의 순리를 따르는 삶입니다. 그리고 그 삶은 이미 충분히 가치 있는 삶이라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