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쪽으로 치우친 삶이 남긴 흔적
돌아보면 나는 그 시절 모든 것을 한 가지 목표에만 집중하며 살았습니다. 주변을 돌아볼 여유도, 마음의 여유도 없었습니다. 가족, 부모님, 아이들까지도 나의 우선순위 앞에서는 배경처럼 느껴졌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그때의 나는 너무나 편협하고 좁은 생각 속에 사로잡혀 있었습니다.
내가 MBA를 한창 준비할 때는 모든 신경이 그것에 있어 주위를 둘러볼 여유도 내 마음의 여유도 없었다. 첫째 아이가 4~5살쯤이었고, 그 당시 우리는 주말부부였다. 내려갈 때마다 부모님이 집으로 오라고 하셨다. 부모님도 손자를 보고 싶은 마음에 주말마다 본가로 오라고 하신 것이다.
그때 나는 MBA 준비에 방해되는 것은 모두 싫어했다. 매주 부모님 집에 가는 것도 싫었다. 아내가 그곳에 가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고, 아내가 힘들어하면 나의 MBA 준비에도 어려움이 생길 것 같았다. 손자를 보고 싶어 하는 부모님의 마음은 이해했지만, 나는 MBA를 준비하는 과정이 더 중요했다.
그날도 주말에 아내와 아이들을 데리고 부모님 집에 갔다. 저녁을 2층에서 먹는데, 첫째 아이가 또다시 엄마에게 칭얼거렸다. 그때 나는 아이가 왜 그런지보다는 아내의 표정을 살폈다. 아내의 표정은 좋지 않았고 힘들어 보였다. 부모님 집에 가는 것도 싫었고, 아이가 아내를 힘들게 하는 것도 싫었다.
MBA 준비 과정으로 지쳐 있고 날카로워진 나는 모든 것이 싫고 힘들었다. 회사 근무시간 짬짬이 공부하고, 퇴근 후 도서관에 가서 밤늦게까지 공부하고, 주말에도 공부하며 이동 시간에도 공부했다. 그렇게 빡빡하게 공부했지만 GMAT 성적은 나오지 않았다. 모든 것이 나를 힘들게 하는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내가 지금 얼마나 힘들고 어렵게 MBA를 준비하는지 아무도 몰라주는 것 같았다. 누구도 나를 도와주지 않는 것 같았다. 아니, 모두가 나를 힘들게 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부모님, 아이, 아내 모두가 나를 힘들게 만드는 것 같았다.
“내가 표정이 좋지 않거나 화를 내거나 날카롭게 반응하면 나를 더 이상 힘들게 안 하겠지?”
“내가 MBA만 준비하도록 놔두겠지?”
“MBA 이외 다른 것은 신경 쓰지 않도록 하겠지?”
그때의 나는 그 누구보다 이기적이었다. 내가 선택한 것에 대해 모든 가족이 희생해야 한다고 믿었고, 아이들조차 나를 힘들게 하면 안 되는 존재라고 생각했다. 점수가 안 나오고 시간이 흘러가니 조급함과 날카로움이 더해져 마음은 점점 더 커졌다.
그 시절의 나는 오직 나만을 위해 살았습니다. 지금에서야 나는 그때의 내 모습을 인정할 수 있습니다. 그 인정이야말로 나를 다시 세우는 첫걸음임을 나는 알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