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를 다스린다는 것 — 감정의 기원을 들여다보다
정서적 능력을 기른다는 것은 감정을 없애는 일이 아니라 감정을 이해하고 다루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그중에서도 특히 ‘분노’—즉 화, 노여움, 짜증 등으로 나타나는 감정—을 가장 다루기 어려워했습니다.
그래서 제 정서적 성장의 출발점은 언제나 ‘화를 다스리는 능력’이었습니다.
제가 생각하는 정서적 능력이란, 감정을 잘 다스리는 힘입니다.
희로애락 네 가지 감정 중에서도 저에게 가장 어려웠던 것은 ‘로(怒)’, 즉 화와 분노, 노여움이었습니다.
그래서 정서적 능력을 높이기 위해 가장 먼저 해야 했던 일은 나의 정서적 특성을 들여다보는 것이었습니다.
정서적 특성은 크게 유전적인 기질과 후천적인 성격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하지만 실제로 이 둘을 명확히 구분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냥 통칭하여 ‘나의 정서적 특성’이라 부릅니다.
그 특성을 이해하려면, 기분이나 느낌처럼 변하는 것이 아니라 상황이 달라도 일관되게 반복되는 내면의 패턴을 살펴야 합니다.
저는 그중에서도 특히 ‘화를 다스리지 못했던 경험’을 돌아보며, 내면의 특성을 살폈습니다.
고등학교 시절, 수능 모의고사 수학 시험을 망쳤던 날이 기억납니다.
그때 저는 나름대로 수학에 흥미를 느끼고 열심히 공부하고 있었는데, 결과는 참담했습니다.
너무나 좌절감이 컸습니다.
쉬는 시간에 앞자리 친구가 제 표정을 보고 물었습니다.
“왜 얼굴이 안 좋아?”
“수학을 망쳤어.”
친구는 위로하듯 말했습니다.
“괜찮아, 나도 망쳤어.”
그런데 저는 그 순간 화가 났습니다.
그 친구는 수학을 늘 잘하는 친구였습니다.
‘나도 망쳤다’는 말이 오히려 나를 무시하는 말처럼 들렸습니다.
저는 순간적으로 “너가 망치면 나도 망치는 게 맞는 거냐!”라고 소리쳤고, 친구는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습니다.
시간이 지나고 돌이켜보니, 그 친구는 단지 위로하고 싶었던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타인에게 인정받고 싶은 나의 기질’이 자극되자 그 말을 무시로 인식한 것입니다.
결국 그때의 화는 친구 때문이 아니라,
타인의 인정이 나의 인정보다 앞서 있었던 나의 기질 때문이었습니다.
화를 다스리는 힘은 감정을 억누르는 데 있지 않습니다.
그 힘은 ‘왜 화가 나는가’를 이해하는 데서 비롯됩니다.
타인의 말이 아닌 나의 기질을 들여다볼 때, 감정은 비로소 다스릴 수 있는 대상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