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구원하는 힘

by 김작가

독일의 철학자 프리드리히 니체는 하루에 8시간씩 산책을 했다고 전해진다. 산책을 하며 생각하면서 불현듯 떠오르는 느낌들을 글로 썼고, 걷는 행위가 자신의 불안정한 마음을 구원했다고 말했다. 걷기는 그의 말처럼 정신이든 신체든 인간을 구원하기에 최고의 처방이라는 말에 동의한다.


대략 5년 전 공황장애로 추정되는 증상들이 찾아왔다. 이전의 쾌활함과, 자신감은 온 데 간 데 없고, 불안이 그 자리를 꿰찼다. 20년 가까이 운전하던 일은 두려웠고, 근거리 운전도 자신이 없었고 버스를 타는 일도 두려웠다. 몇 년을 운영하던 학원을 그만두고 매일 집 근처 공원을 걷다 보니 마음이 좀 다독여지는 것 같았다.


“여보, 나 산에 다니고 싶은데 같이 갈 수 있을까?”


산에 오르는 일은 공원 산책과는 비할 바가 아니지만 지금 하지 않으면 더 나빠질 것만 같은 일종의 신체의 생존적 알람이 울려댔다. 세상으로 향하는 문을 열려면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했는데, 그때 내 손을 잡아 준 사람은 남편이었다. 남편은 결혼 전에 산악회도 가입해서 산을 다닌 적이 있기에 나에 비하면 고수인 셈이다. 그가 주로 산행일정을 만들면 나는 함께 배낭을 싸고 그는 앞서고 나는 그의 뒤를 따랐다. 하지만 그의 걸음보다 훨씬 느린 나를 배려해 줬고, 나의 속도는 점차 빨라져 둘은 나란히 걷는 날이 많아졌다.


그렇게 봄,여름, 가을 그리고 겨울 네계절을 국립공원 위주로 올랐다. 매월 두 개의 봉우리를 오르겠다는 목표로 몸을 일으켜 산을 올랐고, 내려와서는 어김없이 다음 산을 계획했다. 이제와 말이지만 남편도 우리의 배낭의 무게보다 나를 생각하는 걱정으로 마음의 무게가 더 컸을 것이다. 내가 부지런히 산에 오르는 동안 수차례 땀이 났다 걷히고 나면 얼굴은 발그레지고 혈색이 좋아지면서 얼굴이 예뻐진다고 그는 말하며 나를 다독였다.


산과 삶을 발음해 보면 벌려지는 입 모양이 비슷하고, 산과 삶의 초성ㅅ은 마치 사람 인(人)의 모양을 하고 있다. 산의 능선을 오르내리는 행위의 과정을 경험해 보면 삶을 살아가는 것과 비슷함을 알게 된다. 정상에 오르는 가파른 길은 고되고 지루한 삶을, 정상에 오르면 마치 온 세계를 다 가진 듯한 성공적인 삶을, 내리막을 걷는 모습은 삶의 욕심을 내려놓는 것을 떠올리게 한다. 내려오는 것은 오르는 것 이상으로 무릎이 상할 수 있어 주의를 하듯이 잘 내려오는 삶 역시 필요하다. 평생에 걸쳐 함께하는 책임과 생존은 없어서는 안 될 배낭인 듯하다. 능선을 타다 보면 오르막도, 내리막도 있고, 지칠 때쯤 만나게 되는 고마운 평지가 있다. 완만한 길을 걸을 때 그 달콤함이 우리는 더 긴 여정을 가능케 한다. 인생이라는 길 위에서 토끼처럼 재빠르게, 거북이처럼 느리게, 각자의 보폭으로 나아간다.

걷기란, 두 발로 걸으며 지는 삶에 던지는 도전장과 같다. 여기서 지면 다 진다 생각하고 그저 다리를 뻗고, 팔을 흔드는 이 행위를 거듭한다. 아무리 힘들어도 끝내 나를 일으켜 걷다 보면 걸을 힘이 생겨난다.


뽀얗게 흰 눈을 덮어쓴 정상석. ‘대청봉’이라고 쓰인 글자가 눈에 덮어 희미하게 보일락 말락 한다. 점차 가까워질수록 휘몰아치는 바람은 나약한 인간과 오만한 인간을 후려치는 듯 거세다. 바람 앞에 두려운 마음으로 둘씩 팔짱을 끼고 서로를 붙들어 정상석을 향해 최대한 몸을 낮추어 한 걸음씩 전진한다. 사람들은 저마다 자신을 낮추어야 대자연과 연접할 수 있음을 알게 된다. 정상석 뒤로 보이는 무한과 태고의 깊이와 신비를 품은 듯한 절벽의 거대함에 입을 다물지 못한다. 해발 1700미터를 자랑하는 정상에 올라 야호, 를 외치려 했건만 다리가 자꾸 후들거린다. 사람마다 감당할 수 있는 크기의 기쁨도 슬픔도 감당할 양이 있나 싶다. 이제는 강한 바람이 더욱 세차게 나를 향해 용용 죽겠지, 하고 놀려대는 것 같다. 가늠할 수 없는 높이가 주는 두려움 앞에, 얼굴을 차갑게 때리는 바람 때문에 애써 오르고 난 성공의 희열이 넘쳐 흘려 눈물을 만들어낸다. 한겨울 정상의 강풍은 사람들을 오래 붙잡아두지 못했다.


급히 몸을 돌려 대피소로 이동했을 때는 정오가 가까웠다. 추위는 걷다 보니 괜찮아졌지만, 새벽밥 먹고 여러 시간을 걷고 나니 뱃속에선 허기가 우리의 발보다 먼저 도착했다. 등산객들의 쉼터는 그야말로 허기와 추위를 해소하고자 밀려든 인파로 북적였고 미리 자리를 잡은 사람들은 삼겹살, 김밥, 라면을 꺼내 조리하거나 먹고 있었다. 우리는 가방에서 꺼낸 것은 라면과 달걀이었다. 작은 휴대용 버너에서 푸른색 불꽃이 일고, 물이 끓는 동안 삶은 달걀을 꺼내 입으로 넣는다. 영하 20도의 추위에 단단하게 굳어 버려 차고 까끌거렸다. 끓는 물에 수프는 풀고 삶은 달걀을 넣고 거품이 후루룩 끓어오르면서 넘실대는 면들을 휘젓는다. 면을 나눠 담아 국물을 그 위에 자박하게 나눠 부으니 김이 오르는 모습은 이른 나른한 봄날 아지랑이가 피워 오르는 듯 온기를 품었다. 아픈 다리를 내려 쉴만한 곳을 찾았지만 의자가 없어 가져간 목욕탕 방석을 깔고 앉는다. 퍼뜩 한 젓가락씩 눈치 볼 새도 없이 입으로 말아 넣는다.


카, 좋다, 끝내준다.


하! 이제 살 것 같다.


여기저기서 각자의 언어로 탄성을 뱉어낸다. 뜨뜻한 국물이 식도를 타고 넘어가니 위장이 꿈틀거린다. 즉석밥을 라면에 말고 보니 밥알이 밴 국물에 탱글탱글 살아난다. 그렇게 국물까지 싹 비워내고서야 숟가락질이 멈추고 한숨 돌린다.


유년시절, 어머니는 바쁜 농사철을 대비해 새참으로 라면을 아버지께 끓여 드리곤 했다. 장에 다녀오시면서 라면 상자를 머리에 이고 40분은 걸어 집으로 오셔서는 라면 상자를 우리 키가 닿지 않는 곳에 올려놓으셨다. 다섯 남매와 할머니까지 대가족이라 아껴서 꺼내 새참을 준비하셨는데, 항상 사람 수보다 한 두 개 적게 끓이셨던 걸로 기억한다.


그때는 라면도 실컷 못 먹어봤다. 식구들이 너무 많아서.


어머니가 젊은 날 아끼며 부지런히 일궈온 밭과 논, 그리고 자식 다섯 남매를 생각하니 , 그 작은 어깨가 얼마나 무거웠을지 어렴풋이 가늠이 된다. 지금의 나와 비슷한 과거의 한 여성, 어머니의 손을 꼭 잡아드리고싶은마음 뿐이다.

인간은 누구나 공평한 허기가 채워지면, 서로를 다독일 손을 내밀고 싶고, 살아내고 싶은 욕구는 다시 밀물처럼 밀려오는 법이다. 그렇게 위장을 채우면 또 걸어갈 힘은 채워지고 나와 일행은 열두 시간 설악산 대장정을 가까스로 마무리했다. 여전히 몸과 마음은 일순간 연두부처럼 무참히 무너진다, 그럴때는 곧장 나를 일으켜 자연으로 나간다. 팔과 다리 를 통해 오장을 흔들어대는 걸로도 오늘 스스로 나를 구원해내고 있음을 자각한다. 마음 속으로 외친다, Just carry 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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